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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뱀이 먼저일까, 도마뱀이 먼저일까?

이정모 | '청소년을 위한 과학관' 서울시립과학관의 초대 관장

[인-잇] 뱀이 먼저일까, 도마뱀이 먼저일까?
쥐, 소, 호랑이, 토끼,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눈치챘겠지만 열두 띠 동물 가운데 상상의 동물인 용을 뺀 목록이다. 아마 옛사람들에게 가장 흔한 동물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당연히 고양이가 어딘가에는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열두 띠 동물 가운데 실제로 존재하는 열한 동물 중 아홉 종류는 모두 포유류다. 조류와 파충류는 한 가지뿐이고 개구리 같은 양서류는 아예 없다. 하긴 누가 "나는 개구리 띠야"라고 말하고 싶겠는가.

그런데 이 땅에 존재하는 동물의 종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지구에 현재 살고 있는 포유동물은 5,400종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조류는 무려 1만 400종이나 되고, 파충류도 7,900종이 넘는다.

파충류 가운데 거북은 약 300종, 악어는 23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뱀과 도마뱀이다. 7,600종에 달한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3,400여 종이 뱀이다. 그러니까 뱀은 이 험악한 세상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한 척추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뱀에게는 어떤 장점이 있기에 지구에 이토록 적응을 잘한 것일까? 보통 사람들은 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게 바로 뱀에게는 장점이 되었다. 뱀은 기다랗고 유연하다. 유연한 몸으로 먹잇감의 혈관을 조여 심장마비를 일으켜 잡아먹는다. (숨통을 막아 질식사를 시키는 게 아니다.)

턱뼈는 다른 동물처럼 두 개가 아니라 네 개로 되어 있고 인대로 느슨하게 붙어 있어서 자기 몸보다 네 배 이상 커다란 먹이도 삼킬 수 있도록 늘어난다. 또 갈비뼈와 가슴뼈가 붙어 있지 않아서 큰 먹이를 삼켜도 몸통을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기다란 내장은 어떤 먹이도 소화할 수 있다.

뱀 특유의 사냥법이 가능한 데는 다리가 없다는 게 큰 역할을 한다. 만약에 다리가 있다면 좁은 틈에 숨어서 먹이를 기다릴 수도 없고 재빨리 먹이를 감는 데도 거치적거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뱀은 진화 과정에서 다리가 안 생긴 것일까, 있던 다리가 없어진 것일까? 그러니까 뱀에서 도마뱀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도마뱀에서 뱀이 나온 것일까? 이것을 알려면 진화 과정에서 등장하는 척추동물의 순서를 살펴봐야 한다.

척추동물은 바다에서 처음 생겨났다. 물고기가 바로 그것이다. 물고기는 다리가 없는 대신 지느러미가 있다. 그런데 고생대 데본기(약 4억 1천만~3억 5,500만 년 전)와 석탄기(3억 5,500만~2억 9,500만 년 전)에 걸쳐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어떤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이상한 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다리로 변하고 육지와 민물에서 살 수 있는 양서류로 진화한 것이다. 획기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참으로 오래 걸리기는 했다.

어쨌든 척추동물은 육상에 진출할 때부터 이미 다리 네 개를 가지고 있었다. 파충류는 양서류에서 진화한다. 그리고 뱀은 파충류에 속한다. 그렇다면 뱀은 처음부터 다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있던 다리가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다리 달린 뱀이라고?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도마뱀이다. 화석과 골격을 통한 비교해부학 연구와 유전자를 통한 분자생물학 연구 모두 '뱀은 도마뱀에서 진화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도마뱀이 다리를 잃고 뱀이 되었을까?

두 가지 가설이 있다. 첫째는 육지에서 생활하던 도마뱀이 해양생물이 되었는데, 바다에서는 다리가 필요 없어 퇴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리 없이 매끈해진 뱀이 다시 육상으로 진출했다. 그럴싸하다. 지금도 바다뱀이 있다. 또 고래의 조상도 거의 늑대 같은 모습이었는데 바다에 진출하다 보니 다리가 퇴화되고 지느러미가 생긴 것 아닌가. 그런데 이 바다뱀은 1,500~2,000만 년 전에 육상에서 바다로 진출한 것이다.

둘째 가설은 지렁이처럼 굴을 파고 살다 보니 다리를 잃고 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코가 뭉툭한 뱀의 두개골과 짧은 꼬리 모양에서 왔다. 과학자들은 두개골의 모습으로 서식지를 추정하는 모델을 개발했는데, 수백 종의 도마뱀과 뱀의 두개골을 비교해보니 초창기 뱀의 서식지는 구멍 속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처음에는 구멍 속에 살다가 점차 초원과 숲으로 서식지를 확장했고 나중에는 사막으로, 급기야 바다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뱀은 도마뱀에서 왔다. 다리가 사라지고 몸은 길어지고 얼굴이 뭉툭해졌다. 변한 외모는 땅에 구멍을 파기에는 좋았지만,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원인이 됐다. 하지만 뱀은 잘못이 없다. 모든 변화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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