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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스무 살의 미소는 백일홍보다 짧다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인-잇] 스무 살의 미소는 백일홍보다 짧다
1월 1일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그 누구보다 기다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청운의 나이, 담배와 주류를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나이, 스무 살이죠.

대부분의 성인들이 보신각 인근에서, 거실 TV 앞에서 타종을 기다릴 때, 편의점 앞이나 번화가의 주점 입구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줄을 서 있는 풋풋한 친구들. 상담가로 직업을 바꾸게 된 이후에는 12월 31일이 되면 항상 그들의 '성인 첫 순간'을 목격하러 번화가에 나갑니다. 주점에 미리 들어가 입구 쪽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곤 하지요. 12시가 땡 하면 하하 호호 우당탕 깔깔 온갖 소리를 내며 몰려오는 그 '신입 어른이'들을 봅니다.

약간은 어설픈 패션과 화장이 뒤섞인 그 묘한 모습을 보며 나의 스무 살은 몇 년 전이었는지,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떠올리지요. 7년 전이었다가, 11년 전이었다가, 이젠 15년 전이 된, 꾸준히 멀어지는 스무 살의 기억과 비례해서 그들의 해사한 얼굴이 점점 더 예뻐 보이곤 했습니다.

"나는 희한하게 청소년보다, 딱 쟤네 또래 애들이 제일 풋풋하더라.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생동감이 있단 말이야. 저렇게 옷차림이 어설프고 일부러 욕을 내뱉는데도 희한하게 예뻐. 고3은 세상 다 산 어르신들 같은데, 쟤네는 진짜 아기들 같아 보여."

저의 혼잣말에 건너편에 앉은 스물일곱 살 후배가 말하더군요.
"좋~을 때잖아요. 수능은 쳤고, 발표는 아직 전부 나지 않았고. 학교는 안 가고."

"얼레? 너도 충분히 좋을 때거든?"
"아니죠, 형. 원래 짧게 피는 꽃이 예쁜 거야. 딱 백일홍 같은 거거든요. 나는 낙화여, 낙화."
"뭔 소리야? 왜 갑자기 시를 쓰고 계셔?"

"아니, 들어봐요. 저 순간은 엄청 예쁜데 지속시간도 엄청 짧을 수밖에 없지. 쟤넨 지금 공교육에서 막 출소한 수감자 같은 거니까요. 해방감은 완전 쩌는 상태인데, 아직 이다음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잖아. 그러니까 저렇게 표정이 해맑지. 서너 달만 지나도 저 표정 안 나와요."

오호라!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싶었습니다. 신년에는 밝디밝다가도, 꽃 필 무렵 3~4월이 되면 전 세대 중 가장 많은 고민을 짊어진 표정으로 상담 신청을 하는 드라마틱한 변화의 존재들이 바로 스무 살이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상담소에는 달마다 주된 방문 층이 다른데,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1~2월 설 연휴가 지나고 나면 퇴사를 고민하는 삼십 대들이 옵니다. 성과급도 받았고, 명절 친척들의 "회사 잘 다니냐?" 질문 공세도 버텨냈으니, 이젠 정말 털고 나갈 결심을 하고 싶은 거죠. 여름에는 하반기 공채를 앞둔 취업 준비생들이, 10~11월에는 수능의 압박에 짓눌린 열아홉 살 수험생들이 차례로 찾아옵니다. 그 일 년의 흐름 중, 스무 살들이 몰려오는 시기는 3월 중순에서 5월 중순까지이지요. 그들의 고민이 무엇일 거라 예상하시나요?

5~6년 전, 상담소 초창기에는 다니는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부모님 몰래 반수를 하고 싶다거나 편입을 준비하고 싶다 등등 처음 접한 '대학'에 대한 불만과 탈출 욕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을 기해 그 양상이 변하더군요. 더 나은 대학을 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건너뛰고, 그 너머의 고민을 미리 당겨서 하고 있는 모습으로 말이죠. 편입, 전과, 반수보다 취업과 사회 진출에 대한 고민으로 바로 넘어가 버리는 겁니다. 선배 세대들은 더 나은 학력으로 '버전업'하는 것이 취업에 더 유리할 거라고 믿은 반면, 지금의 스무 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겁니다.

2013년과 2017년의 재수·편입 희망자들 사연을 각 50개씩 무작위 선별해 살펴보면 그 변화 양상이 뚜렷합니다. 전자는 70%가 "이 학교에선 답이 없어 보여서", "선배들을 보니 취업이 아득해 보여서" 같은 '취업 경쟁력 부족'을 재수나 편입의 사유로 꼽은 반면, 후자는 "미련이 남아서", "자존감이 떨어져서" 등 '개인의 미해결 과제'로 현실을 인식하는 경향이 큽니다. 전체 고민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에서 12%로 감소했지요. 학벌 업그레이드가 취업 시장의 가장 큰 도구인 시기는 다소 지났다는 것을 스무 살 본인들도 인지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결국 대학 신입생의 시기를 '더 나은 학력'에 투자하는 것보다, 차라리 남들보다 더 빨리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준비하는 게 낫다는 입장으로 기울어지는 지금의 스무 살. 어쩌면 형 누나 세대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친구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난제가 발생합니다. 대학 3~4학년이 아닌, 스무 살 신입생 때부터 잠재적 취준생이 되면서 겪는 문제, 그것은 무엇일까요?

- 다음 편에 계속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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