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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한국생활 적응에 필요했던 3가지

에밀 라우센 | 한국인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15년째 한국서 살고 있는 덴마크 남자

[인-잇] 한국생활 적응에 필요했던 3가지
"당신의 나라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는 대신 당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라."

존 에프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정말 많은 분들이 내게 어떻게 한국생활에 적응했는지 물어보시는데, 그때마다 나는 이 말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를 통해 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속한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행복해지고 있는가?'는 나에게 중요한 질문이다. 10대 때부터 이어진 긴 투병생활과 우울증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며, 나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은 덴마크와 많은 것이 다르고, 그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서바이벌'과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차근차근 한국생활에 적응했다. 덴마크인으로서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동시에 한국을 존중하기 위해 내 안에 필요한 변화들을 만들어나갔다.

이 글에서는 '내가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데 가장 필요했던 3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데 가장 중요했던 첫 번째는 언어이다. 나의 부모님은 어느 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그 나라 음식을 먹는 것으로 '존중'을 실천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나도 먹고 말하는 것부터 적응을 시작했다. 그중에서 어려운 건 당연히 말을 배우는 거였다.

나의 모국어는 덴마크어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미국인이라고 생각해서 영어로 말을 건넨다. 나도 영어를 외국어로 배운 사람이고 모르는 단어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하는데도 말이다. 한국말을 하고 싶어 하는 나와 영어를 쓰고 싶은 한국인들과의 대화는 늘 어긋났다. 이런 대화는 대부분 나는 "감사합니다", 그분들은 "땡큐"하며 싱겁게 끝났다.

나는 늘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한국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어학원과 어학 서적들이 큰 도움이 되지만, 결국은 한국 사람들과 함께 섞여 어울릴 때 한국어를 가장 효과적으로 잘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말을 안 써도 되는 환경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외국인들하고만 어울리는 '편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편한 생활이 그리워질 때마다 나는 내가 한국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떠올렸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한국의 문화를 더 많이 알고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내가 이곳 한국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내게 필요했던 건 '시간'에 대한 적응이었다. 어릴 적부터 시간과 약속을 정확하게 지키는 '덴마크 방식'을 철저히 교육받은 나는 '코리안 타임'을 경험하며 '멘붕'에 빠졌다.

덴마크 사람들은 신뢰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때문에 시간이나 약속이 틀어질 경우 관계도 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약속을 바꾸는 일이 수시로 일어났다. 처음엔 당일 약속을 갑자기 취소하거나 회의 시간을 미루거나 할 때 몹시 당황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융통성을 가지기 위해 나를 내려놔야 했던 순간들은 도를 닦는 시간 같았다.

하지만 거대한 도시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쉴 틈 없이 일한다. 변화가 빠르고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약속이나 일정의 변동이 생기기 쉬운 환경이라는 걸 이제는 이해한다. 무엇보다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나는 이 모든 상황 자체를 유연성을 배워나가는 기회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지금도 쉽지 않지만 그때마다 아내와 주변 친구들이 도움을 준다.
필자 에밀 라우센 (본인 제공)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데 필요했던 마지막 요소는 티모시 페리스(Timothy Ferriss)의 책 『나는 4시간만 일한다(The 4-Hour Workweek)』에 나온 내용과도 관련이 있다. 저자는 세상을 보는 방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데, 진정한 성공이란 당신이 어떠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받은 따뜻한 사랑과 정을 사회에 다시 돌려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주변 이웃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한겨울 구세군 자원봉사나 미혼모 시설에서 하는 아기 돌봄 봉사는 내게 한국생활에 잘 적응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보육원 출신 청소년들과 멘토를 맺어주는 '참나무 프로젝트(Oak Tree Project)'에 참여하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잘 적응하고 한국을 더 잘 알아갈 수 있도록 돕는 봉사 활동도 보람 있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런 활동을 통해 나는 한국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삶이란 참으로 모험과 같다. 행복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내가 매 순간 만들어나가야 하는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이 아닌 나의 가족과 내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위한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결국엔 그것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 이 원고는 인-잇 편집팀의 윤문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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