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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자연 재조사 ③ - 총체적 부실 수사와 조선일보의 외압

총체적 부실 수사였다. 검찰 과거사위가 보도자료에서 밝힌 과거 검경의 수사 내용은 눈을 의심하게 할 부분들로 가득했다. 압수수색 미비와 부실, 수집된 증거 멸실, 의도가 의심되는 불기소 이유서 작성까지. 수사에 참여한 관계자들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 부실 수사가 모두 한 사건에서 벌어졌다.

故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한 의혹이 10년째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엔 '조선일보 방 사장'이 큰 역할을 했다. 문건에서 잠자리 요구의 대상으로 지목된 '조선일보 방 사장'의 실체는 과거 수사에서 규명되지 않았다. '사회 권력층의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故 장자연 사건의 의혹의 한 가운데 '조선일보 방 사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장자연 사건' 조선일보 외압 정황
● 과거사위 "'조선일보 방 사장' 규명 수사 미진"

검찰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를 보면, 과거 검경의 수사는 '조선일보 방 사장'에 대한 실체 규명이 아닌 회피에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경찰은 사건 당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단 한 달 치 밖에 확인하지 않았다. 방상훈 사장 비서진의 통화 내역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방 사장'일 가능성이 제기됐던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의 경우, 중식당에서 장자연 씨와 식사를 했다는 소속사 대표의 진술을 확보하고도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장자연 씨와의 연결고리를 확인했지만, '조선일보 방 사장' 규명을 위한 추가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당시 수사 검사의 수사 방향을 보면, '조선일보 방 사장' 규명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의혹까지 제기된다. 과거사위는 '수사 검사가 장자연 문건에 적힌 날짜가 아닌 소속사 대표 스케쥴표에 기재된 다른 날짜의 식사 자리에 치중해, 방상훈 당시 조선일보 사장과 문건 속 '조선일보 방 사장'은 무관하다고 판단하는 데 치중했다'고 평가했다.

또, 수사 검사는 진술을 번복해 신빙성이 의심되는 故 장자연 씨 소속사 대표의 진술을 추가 수사도 없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불기소 근거로 삼았다고 과거사위는 평가했다. 해당 수사 검사는 소속사 대표의 진술 중 일부만 발췌해 故 장자연 씨가 중식당에서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 아닌 다른 사람과 만난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기재했다고도 덧붙였다. 의도적으로 '조선일보 방 사장' 규명을 회피했던 게 아니었느냐는 취지다.

● 57분간의 압수수색, 누락된 주요 증거물

문건 속에 술 접대의 대상으로 거론된 '조선일보 방 사장의 아들'에 대한 수사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과거사위는 대검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 2008년 10월 한 유흥주점에서 故 장자연 씨와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사(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가 술자리에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추가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통화 내역 조회는 단 이틀 만 이뤄졌을 뿐이다.

이외에 수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압수수색 부실, 압수되거나 임의 제출된 중요 증거물의 누락 등 일반적인 검경 수사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하다. 경찰의 故 장자연 씨에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은 불과 57분밖에 이뤄지지 않았고, 다이어리와 핸드폰 일부 등 장자연 씨의 생전 행적을 추정할 수 있는 핵심 단서들은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됐다.

의혹 해결의 주요 단서가 될 증거물, 주요 수사 기록들은 사라졌다. 장자연 씨의 당시 1년 치 통화 내용은 수사 기록에 첨부되어 있지 않다. 장자연 씨가 사용했던 핸드폰과 컴퓨터의 포렌식 결과 역시 첨부되어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장자연 리스트' 실체를 밝히는 데 핵심 단서가 될 수도 있는 문건 소각 당시 장 씨 유족과 매니저 유 모 씨 등의 현장 녹음파일도 유족이 경찰에 제출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경찰이나 검사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다.
고 장자연 육성파일 공개
초동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부실하지만 확보된 증거물들이 제대로 보관됐더라면, '故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한 의혹은 1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상당 부분 해소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대체 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장 씨 사건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일까.

● 과거사위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수사 외압 행사 확인"

검찰 과거사위는 과거 경찰 수사 당시 조선일보의 외압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대검 진상조사단의 조사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과거 수사 당시 급박하게 움직인 걸로 보인다. 경영기획실장을 중심으로 대책반까지 만들어 수사에 대처한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과거사위가 밝힌, 조선일보의 수사 외압은 노골적이었다. 2009년 경찰 수사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었던 이 모 씨는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을 찾아갔다. 당시 어떤 말이 오갔는지 강 전 청장과 이 모 씨의 진술 취지는 엇갈리지만, 강 전 청장은 이 모 씨가 방상훈 사장에 대한 조사를 막으려고 했다고 조사단에 진술했다.

2009년 당시 경찰 수사의 총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조현오 전 경기경찰청장의 진술은 더 구체적이다. 이 전 부장이 자신을 찾아와 방상훈 사장을 조사하지 말라고 하면서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퇴출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 조선일보하고 한 번 붙자는 겁니까"라고 자신을 협박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전 부장은 조현오 전 경기경찰청장을 만난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과 경기경찰청 형사과장을 만났다고 인정하는 이 전 부장이 조현오 전 경기청장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점, 조현오 씨의 진술이 구체적인 점 등을 근거로 이 전 부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공시 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지만, 이 전 부장에게 조선일보라는 단체의 위력을 보여 조현오 경기청장을 협박했다며 '특수 협박'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과거사위는 결론 내렸다.

● 이유, 동기에 대한 설명이 없는 총체적 부실 수사

검경의 총체적 수사 부실, 조선일보의 수사 외압. 과거사위가 사실이라고 결론 내린 이 두 가지는 보도자료 상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두 사실을 이어 보면, '조선일보의 외압으로 인해 검경의 수사가 부실해졌던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 합리적인 의심이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자료 누락 등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외압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한두 번이라면 실수라고 할 수 있겠지만, 故 장자연 씨 사건처럼 자료 누락 등이 수없이 확인된다면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찰 과거사위의 발표에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총체적 부실 수사의 이유 즉, 의도에 대한 설명이 없다. 대검 진상조사단의 제한된 역량이 총체적 부실 수사의 이유를 규명하는데 제대로 투입되지 못 했다는 의미다. '특수 강간 의혹'처럼 당사자나 목격자가 없어 규명이 쉽지 않은 의혹에 집중하기보다,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수사 부실의 이유를 규명하는데 조사단의 역량이 집중됐다면 좀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검찰 과거사위가 사실이라고 인정한 조선일보 외압 부분에 국한하더라도, 상식선에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과거사위는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 수사의 부실도 여럿 확인했지만, 조선일보의 수사 외압은 경찰 단계에서만 행해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사위가 밝힌 것처럼, 대책반까지 만든 조선일보가 검찰 단계에서는 전혀 대응을 하지 않았을까. 상식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장자연 사건 과거사위
● 소속사 대표의 위증 혐의 수사…총체적 부실 수사의 이유 밝힐 수 있을까

총체적 수사 부실, 조선일보의 수사 외압. 검찰 과거사위 발표에 따르면, 이 두 가지는 연결 고리가 끊겨 있다. 그 결과, 검경의 총체적 수사 부실은 원인은 없고, 결과만 있는 기이한 상황으로 남게 됐다. 13개월의 조사 결과라고 하기엔 참담한 수준이다.

하지만, 총체적 부실 수사의 원인 규명이 과거사위의 활동 종료로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검찰 과거사위는 故 장자연 씨의 소속사 대표였던 김 모 씨의 위증 혐의에 대해 수사를 권고했고,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김 씨의 혐의는 조선일보와 연관되어 있다. 과거 이종걸 의원의 명예훼손 재판에서 조선일보 사주 일가와의 친분에 대해 허위 진술을 했다는 혐의다. 왜 김 씨가 허위 진술을 했는지, 즉 허위 진술의 동기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면 총체적 부실 수사의 이유도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검찰 수사의 과오를 확인하기 위해 출범한 검찰 과거사위와 대검 진상조사단이 마무리하지 못한 과제를 검찰이 맡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지만, 검찰이 의미 있는 수사 결과를 내놓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자신과 관련된 수사가 왜 망가졌던 것인지를 밝히는 건, 10년간 '장자연'이란 이름을 놓아주지 못한 우리 사회가 故 장자연 씨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 [취재파일] 장자연 재조사 ① - '장자연 리스트'란 무엇인가?
▶ [취재파일] 장자연 재조사 ② - '특수강간 의혹'과 수사 개시 검토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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