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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해피콜'에 좌절하는 청각장애인들

[취재파일] '해피콜'에 좌절하는 청각장애인들
▲ 청각장애인 김여수 씨

● 넘을 수 없는 '해피콜'이란 장벽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동시에 가진 26살 김여수 씨는 지난 4월 렌털 서비스로 건조기를 이용하려다 끝내 포기했습니다. 가격이 부담돼 비용을 조금씩 나눠낼 수 있는 렌털 서비스가 필요했던 건데, 전화상담 절차인 '해피콜'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인터넷 접수 뒤 휴대전화에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찍힌 뒤에야 김 씨는 '음성 통화'가 필수란 걸 알게 됐습니다.

"렌털 업체 SNS 상담원이 '계약 단계를 녹음해야 해서 전화 통화 없이 렌털은 어렵습니다'라는 얘기를 했어요."


가족이 대신 통화를 하면 계약할 수 있다고 다시 안내받았지만, 김 씨는 부모님과 아내 모두 청각장애인이라 이 방법도 쓸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홈쇼핑을 보다 사고 싶은 물건이 할인 가격으로 나오거나, 사은품과 함께 나올 때도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요즘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조금 더 싸고 사은품도 많이 있다는 건 알고 있는데, 전 농아인(청각장애인)이라 직접 매장에 방문하면 사은품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한두 기업의 문제는 아닙니다. 요즘 흔히 이용하는 공기청정기나 정수기 렌털을 취재진이 직접 문의해봤더니 음성통화는 필수였습니다. 청각장애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하면 가족 등 대리인이 통화를 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영상통화 등을 이용해 직접 본인 확인을 할 수 없냐는 질문엔 '회사 규정에 따라 불가능합니다'라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해피콜 상담원이 이것저것 문의를 확인차 해야 하고, 신용정보 조회도 들어가야 하거든요. 통화가 어려우신 상황이기 때문에 대리인이 통화를 옆에서 해주셔야 해요." - A 렌털 업체 전화 상담원


● "저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지"란 '비장애인 중심 시각' 벗어나야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들은 '렌털 서비스'만 문제인 것도, 단순히 '제보자만의 문제'인 것도 아니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해피콜뿐만 아니라 금융, 홈쇼핑, 통신회사 등에서도 여전히 음성으로 자기 확인을 요구하거나, 음성으로 모든 것들이 처리되기 때문에 청각장애인 한두 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 한국농아인협회 김수연 부장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청각장애인들은 음성 통화 대신 영상통화나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개인 확인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앱이나 영상전화를 통한 본인 확인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청각장애인들에게 그런 편의 제공을 하지 않는다면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인 차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노문영 변호사


전문가들은 영상 수화 통화로도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작은 기업들이 수어 통역사를 고용하고, 관련 서비스를 도입하는 데 비용 부담을 호소한다면 정부가 비용 일부를 보조해주더라도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겁니다.

취재진과의 인터뷰 직후, 김 씨는 우리 사회가 청각장애인에게 이 정도 불편은 당연히 감수하라고 요구해선 안 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습니다. 김 씨와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은 "당장 목숨이 걸린 일도 아닌데….", "장애가 있으니 그 정도 불편은 참아야지…."라는 비장애인 중심의 시선 또한 엄연한 '장애인 차별'임을 우리 사회가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끝으로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준 제보자의 제보 이유를 전해드립니다.

"둘째 아이를 낳았는데 농아인(청각장애인)이에요. 이 아이가 성인이 돼서 좀 더 나은 사회에서 살게 하고 싶습니다."


(이 기사는 김미숙 수어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 [8뉴스 리포트] "통화 못 하면 못 사요"…'해피콜'에 좌절하는 청각장애인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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