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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사일도 아니고, 공격용도 아니고…쏟아지는 궤변들

'미사일이냐, 아니냐' 논란의 중심, 北 단거리 발사체
애초에 본 걸 본 대로 말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북한이 공개한 발사체 형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발표해도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 협상 테이블을 떠나지 않습니다. 지금 같은 남남갈등도 없었습니다.

군은 북한이 지난 4일 쏜 물체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지만 항명할 수 없어 꿀 먹은 벙어리가 됐습니다. 정답은 분명한데 억지로 피해 다니려니까 정부 여당은 낯 뜨거운 궤변들만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 북한이 쏜 건 '방어용' 지대지 발사체?

먼저 국정원입니다. 국정원 김상균 제2차장은 그제(6일)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에게 "이번 발사는 대외 압박의 성격은 있지만 비핵화 협상의 판은 깨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는 이어 "지대지라는 사실만으로 공격용인지 방어용인지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닙니다. 지대지는 100% 공격용입니다. 지대지 '방어용' 발사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김 차장은 "북한은 방어적인 성격의 통상적인 훈련임을 강조했다"고도 말했습니다. 방어적 또는 공격적 훈련의 구분은 지극히 상대적입니다. 방어적 훈련이라고 아무리 강변한들 상대국에게는 위협적인 공격 훈련일 뿐입니다. 한미연합훈련도 방어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공격 훈련으로 인식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국정원은 북한이 발사체를 쏜 당일에도 "미사일이 아닌 듯하다"며 치명적인 오판을 했습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북한 단거리 발사체 하나를 가지고 연거푸 정보 실패를 저질렀습니다.

● 비행고도 60km 이하는 미사일이 아니다?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어제 국방부 고위직의 보고를 받은 뒤 기자들을 만났습니다. 북한 발사체가 비행거리 240km, 비행고도 20~60km인 점을 거론하며 "이걸 보면 중거리, 단거리 미사일이 아니란 것이 판명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 위원장 주장과 달리 비행거리 즉 사거리 200km 미만, 비행고도 60km 미만의 단거리 미사일은 숱하게 많습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한국 최초의 전술급 유도미사일 KTSSM(Korea Tactical Surface-to-Surface Missile)의 사거리가 150km 정도입니다. 북한의 대표적인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KN-02 독사의 사거리도 120km로 알려졌습니다.

안 위원장은 또 "이것이 전략무기였다면 김락겸 전략군 사령관이 참석한 상태에서 발사했을 텐데, 박정천 포병국장이 대신 참석했다"며 "그래서 전략무기가 아니라 전술무기를 시험하는 단계가 아닌가 분석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군 편제에서 전략군 사령부는 스커드부터 화성-15형까지 즉 준중거리부터 ICBM까지의 핵 미사일을 운용합니다. 포병국은 KN-02 개량형과 방사포, 자주포 등 비핵(非核) 미사일과 각종 포를 운용합니다. 4일 북한은 포병국의 KN-02 개량형을 쐈기 때문에 박정천 포병국장이 참관한 겁니다.

남의 부대 일에 김락겸이 구경 올 수도 있었겠지만 오지 않는 게 더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김락겸이 현장에 없었다고 해서 4일 발사체의 무게가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김락겸은 안 왔지만 김정은이 왔습니다.

안 위원장은 4일 발사를 "도발이라기보다는 타격 훈련"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발사체를 쏘아 올린 북한이 "일상적인 타격 훈련이다"라고 항변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국방위원장이 할 말은 아닙니다.
北 미사일의 모델인 러시아의 단거리 미사일 '이스칸데르'
● 군을 탓할 수는 없다

어제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김준락 합참 공보실장은 "지난해 열병식에서 공개된 무기체계와 유사한 형태, 외형적으로 유사한 형태라고만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8일 북한 건군절 열병식에 등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KN-02 개량형, 일명 북한판 이스칸데르와 4일 발사체의 외형이 유사하다는 말입니다.

그는 이어 "그래서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형상은 비슷하니까 세부적인 제원까지 들춰보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4일 사거리와 고도 모두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특징입니다. 발사체 내부까지 들여다보면 완벽히 알 수 있겠지만 냉전시대 미국도 소련의 미사일을 그렇게까지 보지는 못했습니다.

정부 여당이 발사체라고 하는 상황에서 군이 미사일이라고 발표하면 항명 그 자체입니다. 군은 지금 상황에서 미사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문민(文民) 우위가 원칙인 민주국가의 민군(民軍) 관계에서 문민 정부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도(指鹿爲馬) 군은 마땅히 말이 맞다고 말해야 합니다. 책임은 오롯이 문민 정부의 몫입니다.

● 이제 와서 출구전략?

국회 국방위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어제 한 방송에 출연해서 북한이 쏜 발사체는 "미사일이 맞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제제재를 논의할 정도의 전략적 도발은 아니"라며 "여기서 논란을 계속하는 것보다 그냥 발사체로 퉁치고 넘어가자는 의도, 결국은 묵인 전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정도인 것 같습니다.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KN-02 개량형, 즉 북한판 이스칸데르를 쐈습니다. 명백한 도발이지만 비핵화 협상의 판을 깰 정도의 중대 도발로 보기에는 다소 약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도 반발하지 않았겠지요. 정부 여당이 이런 정도로 4일 발사를 규정했다면 지금 같은 혼란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김종대 의원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문정인 안보특보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 의원의 발언이 정부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소모적인 분란을 끝내려는 노력의 시작이라면 환영할 만한 데 많이 늦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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