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판결문을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의 민낯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9.05.07 09: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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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주: [마침]은 마부작침의 길고 긴 종합기사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심한 장문의 기사지만 링크 건너가지 않고 한 번에 읽고 싶어하는 독자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기사를 끝마친다는 의미도 담았습니다.

"인간의 영혼마저 빠르게 파괴할 수 있는 무서운 범죄"
"소위 '몰카'는 문명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짓"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안심할 수 없고, 편안하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야만"


지난해 6월 정부 합동으로 발표한 '불법촬영 범죄 근절을 위한 특별 메시지' 중 일부다. 이보다 아홉 달 전엔 몰카 판매를 규제하고 불법촬영과 유통 처벌을 강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을 정부는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법촬영 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2017년 한해 발생한 불법촬영 범죄만 6,615건, 하루 18건 꼴이다. 지난 3월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고 그 결과물을 공유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던 유명 연예인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 표현대로 "우리 사회는 아직 야만" 상태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불법촬영'을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보려 했다. 2018년 한해 서울 5개 지방법원의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 432건을 수집해 상세히 분석했다. 대법원 판결문 열람제도를 활용해, 성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14조 '카메라등이용촬영' 죄가 포함된 판결문을 찾은 뒤 '불법촬영'이 주된 범죄인 1심 판결문만 추려냈다. 성폭행이나 폭행, 절도 등 다른 강력범죄가 함께 적용된 사건은 불법촬영 범죄의 형량을 살펴보기에 적합지 않다고 판단해 제외했다.

이를 통해 지난 1년간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법원 판결은 적정했는지, 불법촬영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 짚어보려 한다.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라던 영화 <살인의 추억>의 대사처럼 "여기가 불법촬영의 왕국이야?"라는 탄식이 앞으로는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① 불법촬영 1장 죗값 7만9천 원...줄지 않는 '불촬' 범죄
[마부작침]지난해 2월 서울 동부지방법원에서 선고된 불법촬영 사건 판결이다. 피고인은 2017년 3월부터 6월 사이에 여성의 치마 속과 다리 부위, 뒷모습 등을 한 번에 1장부터 최대 200장까지 158회, 무려 5,796장을 불법촬영해 법정에 섰다. 이에 대해 판사는 벌금 400만 원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그리고 휴대전화 몰수를 선고했다.

판결문에 선고 이유는 상세히 나와 있지 않다. 다만 판사는 벌금형을 선택했다면서 "동종 전과 없고 자백, 반성하는 점, 인적사항이 확인된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 참작"이라고만 적었다. 첨부된 범죄일람표를 보면 158회 범행 중 157회까지 피해자는 모두 '성명불상'이다. 즉 휴대전화를 압수해 피고인이 불법촬영한 사진 증거는 확보했으나 누가 피해를 봤는지는 대부분 파악하지 못했다. 158번째, 50장을 촬영한 마지막 범행의 26세 여성 피해자만 인적사항이 확인됐다. 피고인과 합의한 건 이 피해자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넉 달 동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피해자 158명(추정)에 대해 158회에 걸쳐 사진 5,796장을 불법촬영한 피고인은, 그 죗값으로 400만 원을 납부했다. 불법촬영한 사진 1장에 벌금 690원을 낸 셈이다.

<마부작침>이 분석한 2018년 불법촬영 판결문 중 벌금형 선고(202건)만 놓고 단순 계산해보면 법원은 불법촬영물 하나에 벌금 7만 9,015원을 부과했다. (※ 사진·동영상 포함, 개별 장수 파악이 안 될 경우엔 범행횟수로 계산)

●불법촬영 1년에 6천 건...벌금·집행유예 비율은 87.5%
[마부작침]성폭력범죄 특례법의 '카메라등이용촬영' 죄, 즉 불법촬영 범죄 발생이 1년에 1천 건을 넘어선 건 2010년부터고, 전체 성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이상이 된 건 2012년부터다. 아이폰이 국내 출시되고 삼성 갤럭시S가 나오면서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비슷하다. 2008년 585건이던 불법촬영 범죄는 가파르게 증가해 '워터파크 탈의실 몰카' 사건이 발생했던 2015년 7,730건으로 정점을 찍었고 2016년엔 잠시 주춤했다가 2017년 6,615건으로 다시 늘었다. 하루 18.1건씩 발생하는 수준이다. 불법촬영 범죄는 접수되면 대개 검거로 이어져 2017년 검거율 96.2%를 기록했다. 하지만 검사가 사건의 재판을 청구하는 기소 비율은 2010년 74.1%에서 점점 떨어져 2017년엔 34.8%, 발생한 범죄의 3분의 1 정도만 기소되고 있다.
[마부작침]<마부작침>이 분석한 2018년 불법촬영 사건 판결에서 가장 많이 선고된 건 벌금형으로 전체의 46.8%였다. 평균 벌금액수는 392만 1,782원이었다. 다음으로 많은 건 징역형을 선고하되 형의 집행을 유예한 집행유예로 40.7%다. 집행유예 선고에서는 징역 7.3월에 22.2월 집행유예가 평균이었다. 다음은 집행유예 없는 징역형, 실형으로 10.0%다. 실형의 평균 형량은 9.8월이었다. 형의 선고가 없는 선고유예는 2.1%였으며, 무죄는 0.5%였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2011년 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서울 관할 법원에서 선고한 '카메라등이용촬영' 죄 1심 판결문 1,540건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17년 1월~ 12월 역시 동일 법원에서 선고한 동일 범죄 판결문 360건을 분석한 바 있다. <마부작침>의 2018년 분석과 비교해보면 70%가 넘었던 벌금형 비중이 40%대까지 줄어들었고 대신 형의 집행유예 선고가 40%를 넘길 정도로 늘어났다. 실형 선고는 이전보다 비중이 다소 커졌으나 2017년에 비해 조금 감소했다.

●초범이라는데 범행 횟수 15회...10명 중 4명은 5회 이상 찍었다
[마부작침]2018년 불법촬영 판결문에 명시된 범행 횟수는 평균 12.5회다. 최소 1회부터 최대 492회까지 제각각이다. 범행 횟수 2회 이상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 58.9%에 이르고, 5회 이상을 따져보면 41.8%다. 불법촬영 사건 피고인 10명 중 4명은 5번 이상 범행했다는 것이다. 여성변호사회와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와 비교해보면 범행 2회 이상과 5회 이상이 모두 늘어났다. 범죄 발생 자체도 늘었지만 적발된 범행마다 횟수도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마부작침]불법촬영 판결문은 사건 자체가 복잡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대부분 비실명으로 처리돼 있어 상세한 정보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다만 상당수 판결문에 적힌 양형 이유를 통해 판사가 선고에 고려한 가중, 감경 요소를 살펴볼 수 있다. '초범, 혹은 형사처벌 전력 없음'이라는 이유가 양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명시된 판결문은 272건, 여기 나온 '초범'의 범행 횟수는 평균 15.0회다. 초범이라는 점이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됐는데 범행 횟수를 보면 전체 평균인 12.5회보다 2.5회 더 많이 범행한 것이다. 2회 이상과 5회 이상 범행 횟수도 초범이 오히려 더 많다. 불법촬영 범죄는 묘한 특성이 있어서 다른 범죄와 달리 검거되고 나면 그간 범행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수년에 걸쳐 적발될 때까지 수백 회 범행했는데도 "잡힌 건 처음"이라는 이유로 초범으로 규정되고 이에 따라 감경까지 받는다.

현장에서 불법촬영 범죄를 주로 단속하는 이경우 서울지하철경찰대 수사관은 "불법촬영한 사진이 1장인 사람은 많지 않고 대부분 2장, 3장... 많게는 100회, 300회, 400회. 기간으로 치면 1년, 2년, 3년 이렇게 찍어온 사람들도 있다"면서 "검거는 처음이라도 계속 촬영해온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불법촬영 죄는 기존 범죄와 굉장히 다른 특성이 있는데도 이전 방식대로 초범이라며 경미하게 처벌하고 계도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며 "검찰이나 법원에서 불법촬영 자체의 중대성, 피해가 크다는 데 대한 동의가 좀 부족하지 않냐는 분석도 나온다"고 말했다.

②최다 피해자는 '성명불상'... 나도 모르게 피해자 되는 불법촬영
[마부작침]서울 동부지방법원의 지난해 2월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 피고인은 2017년 2월부터 7월 사이에 여성의 치마 속 등 신체 특정부위를 한 번에 1장부터 40장까지 사진 603장, 동영상 18개, 총 104회 불법촬영한 혐의로 붙잡혀 기소됐다. 판사는 벌금 500만 원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휴대전화 몰수를 선고했다.

판결문에는 각 범죄사실에 벌금형을 적용했으며 양형 이유로 "사건의 범행 횟수가 많은 점",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는 점, 초범인 점"을 고려했다고만 간략히 나와 있다. 첨부된 범죄일람표를 보면 104회 범행 중 103회는 '성명불상', 피해자 1명의 신원만 확인됐다. 이 여성과 합의를 했는지 아닌지는 판결문으론 알 수 없다.

1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범죄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나도 모르게 범죄 피해자가 되는 범죄, 이런 식으로 촬영한 영상을 유포하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범죄가 불법촬영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불법촬영'...특정 못해 처벌도 사각지대
[마부작침]<마부작침>이 분석한 2018 불법촬영 판결문에서 '성명불상' 피해자가 포함된 사건 판결은 54.2%, 234건이다. 이중에 범행 횟수를 수치로 표시하지 않은 3건을 제외하면 범행 횟수는 평균 18.2회다. 전체 평균 12.5회보다 6회 가량 많다. 범죄 피해자가 파악된 사건 195건은(범행 횟수가 모호하게 적힌 3건 제외), 범행 횟수가 평균 5.7회다. '성명불상' 피해자가 있는 사건의 범행 횟수가 범죄 피해자가 파악된 사건의 범행 횟수보다 3배나 더 많다. 2회 이상, 5회 이상 범행 횟수 또한 '성명불상'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 월등하게 많다. 불특정 여성을 겨냥한 불법촬영 범죄의 특성을 보여준다.

불법촬영 범죄를 주로 단속하는 이경우 서울지하철경찰대 수사관은 "피해자는 (불법촬영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저희가 범인을 잡고 피해를 확인하려고 하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불쾌하게 생각하고 경악한다"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김영미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피해자가 수십 명, 수백 명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면 당연히 피해자 1명인 경우와 양형에 다르게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피해자는 여성...불법촬영 대상의 60.9%는 치마 속·다리
[마부작침]피해자 성별이 언급된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여성뿐인 사건은 97.2%, 거의 전부다. 남성만 피해자인 사건은 2.0%, 여성-남성이 함께 범죄 피해를 당한 사건은 0.9%다. 여성-남성이 함께 피해를 본 3건은 락커룸이나 남녀공용화장실에 몰래 설치한 카메라에 남성·여성 피해자의 탈의와 용변 장면이 각각 촬영된 사건, 여관 창밖에서 성관계 장면을 불법 촬영한 사건이다.

불법촬영한 대상을 보면 치마 속·다리·허벅지 등 신체부위가 263건(60.9%)으로 가장 많았다. 나체나 탈의 등 옷을 벗고 있거나 벗는 장면이 89건(20.6%), 용변 장면이 81건(18.8%)이었다. 성관계 관련 불법촬영도 46건(10.6%)으로 적지 않았다. (중복 포함) 여성정책연구원의 2017년 분석과 비교하면 87%를 차지했던 신체부위가 줄어든 대신 다른 대상 촬영은 모두 늘었다.

●처벌 강화했다지만…불법촬영물 '유포' 10%
[마부작침]불법촬영 범죄에서 우선은 촬영이 문제지만, 피해를 크게 확산시키는 건 유포 행위다. 가수 승리와 정준영 등 일부 연예인들은 불법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단체채팅방을 통해 유포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마부작침>이 분석한 2018 불법촬영 판결문에서 불법촬영과 함께 유포까지 한 사건은 43건, 무죄 2건을 제외한 430건의 10%에 해당한다. 이중에 62.8%, 27건은 단체채팅방이나 인터넷 사이트 등 다수가 볼 수 있는 곳에 불법촬영물을 퍼뜨렸다.

불법촬영과 함께 유포까지 한 사건인 43건의 선고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건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53.5%, 23건이었다. 다음은 벌금형 30.2%, 13건. 징역형 실형은 16.3%, 7건이다. 전체 판결문에 비하면 20% 정도 평균 형량이 높긴 하나 "인간의 영혼마저 파괴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단죄로 적정했는지는 의문이다. 피해자의 나체 사진을 피해자의 어머니, 혹은 아들에게 보내거나 20명이 있는 단체채팅방에 유포했는데 벌금형에 그친 경우도 있다.

국회는 지난해 말 '성폭력범죄에 관한 특례법' 14조를 개정해 불법촬영 죄 처벌을 강화했다. 불법촬영물 유포의 경우, 영리 목적으로 유포했다면 벌금형 없이 징역형으로만 처벌하도록 했다. 이렇게 법이 바뀌기 전이긴 하나 2018년 불법촬영 판결문에서 영리 목적으로 유포했다고 판단된 사건은 거의 없었다.

●"점점 대담해지는 양상"… '화장실' '용변' 촬영 증가세

지난해 4월 선고된 서울 중앙지방법원의 한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은 2015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2년 간 지하철·버스정류장·화장실 등에서 여성의 다리·허벅지·용변 보는 모습 등을 59회에 걸쳐 불법촬영해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에 처해졌다. 특히 검거될 당시엔 여자화장실에 1시간 넘게 머물면서 용변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파악됐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주로 지하철 등에서 여성의 신체부위를 노리다 2017년에는 화장실에 침입해 용변 장면을 불법촬영했다. 판결문에는 "범행이 점점 대담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마부작침]판결문 기준으로 볼 때 용변 장면에 대한 불법촬영은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전체 사건의 18.8%(81건)를 차지했다. 불법촬영이 적발돼 재판까지 받은 사건에 한해서 그렇다. 이중 범행도구로 휴대전화 외에 몰래카메라류(볼펜형, USB형, 그 외 소형카메라)를 사용한 사건은 6건, 나머지는 모두 화장실에 침입해 휴대전화로 옆칸 피해자를 촬영했다.

대부분 피해자는 여성이나 용변 장면 촬영을 당한 남성 피해자도 있다. 서울 서부지방법원은 2017년 6월~9월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남자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모습을 22회에 걸쳐 휴대전화로 촬영한 피고인에 대해 지난해 2월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이 피고인은 같은 범죄를 2번 저질렀던 전력이 있고 특히 이번 판결의 범행 기간인 2017년 8월에 벌금형 처분을 받으면서도 계속 범행했는데 또 다시 벌금형으로 넘어갔다. 남성만 피해자인 사건 7건 중 3건이 화장실 불법촬영이었다.

화장실 혹은 용변 장면 불법촬영이 왜 늘고 있는 것일까. 한 판결문에서 언급했듯 "범행이 점점 더 대담해지는 양상"을 반영한 것, 불법촬영범들이 더욱 자극적인 범행대상을 찾는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화장실 몰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정부는 지난해 6월 공중화장실 5만 곳에 '몰카'가 설치됐는지 상시 점검하고 민간 화장실까지 점검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휴대전화를 사용한 범행을 막겠다며 아예 화장실 하단부를 막아버리는 '안심스크린' 설치를 늘려가고 있다.

③ '불법촬영' 판결 방정식을 풀어라! 벌금 300만원? 집행유예 2년?
[마부작침]● 가장 흔한 '불촬' 범죄: "지하철에서 여성 신체부위를 2~9회 촬영"

<마부작침>은 2018년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의 선고 형량이 적정했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살펴봤다. 그 중 첫 번째는 불법촬영 사건 432개 중 범행 횟수나 장소, 방식 등 최대한 유사한 사건을 모아본 뒤 그 사건들의 판결이 비슷하게 내려졌는지, 혹은 차이가 컸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여기 사건 23건, 판결문 23건이 있다. 공통점은 지하철 역사 혹은 전동차 안에서 연령이 확인되지 않은 여성의 다리 등 신체부위를 휴대전화로 2~9회 불법촬영했다는 것. 2018년 불법촬영 판결문 중 가장 흔한 유형의 사건이다. 선고된 형의 종류와 형량. 비슷했을까, 아니면 달랐을까.

23건 중 17건은 벌금형(150만 원~ 700만 원), 6건은 징역형 집행유예(징역 6월은 공통, 집행유예 기간은 1건만 1년, 나머지 5건은 2년) 선고를 받았다. 실형 선고는 없었다. (※ 판결 방정식 처음 보기에서 ①실형을 선택했다면 당신의 답은 실제 판결과 거리가 멀다. ②집행유예를 택했더라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을 골랐다면 현실과는 달랐다.) 물론 동종 전과 유무나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 죄질 등에 따라 판결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마부작침]*전에도 불법촬영으로 적발됐다면...

피고인 A.
2018년 7월 2주 동안 휴대전화로 6회에 걸쳐 성명불상 여성의 신체부위를 불법촬영했다. A는 2015년에도 같은 범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번 적발 두 달 전엔 여성 대학원생 기숙사에 침입, 속옷을 발견하고 자위행위해 벌금형 처분을 받았다. 결과는 벌금 700만 원.

피고인 B.
2017년 9월 휴대전화로 전동차 안에 앉아 있는 성명불상 여성과, 계단을 올라가는 역시 성명불상 여성의 허벅지 부분을 2회 불법촬영했다. 같은 범죄로 인한 벌금형 전력이 있었다. 결과는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피고인 C.
2018년 4월 29일~5월 1일 휴대전화로 5차례 성명불상 여성의 다리 부위를 불법촬영했다. 같은 범죄로 사흘 전인 4월 26일 약식기소된 상태였는데 범행을 이어갔다. 결과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처벌받은 전력이 없으면...

피고인 D.
2017년 10월, 성명불상 여성의 다리 등 뒷모습을 2차례 불법촬영해 기소됐는데 판사는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을 감안한다며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피고인 E.
2018년 6월 휴대전화로 성명불상 여성의 치마 속 다리 부위 등을 9회 불법촬영했다. 판사는 죄질이 좋지 않으나 초범이고 재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선고 결과가 이러했다. 2018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 중에서 가장 흔한 유형의 유사 사건을 골라봤는데도 결과는 꽤 달랐다. 한 마디로 예측하기 어려웠다. 판결이라는 게 워낙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라서였을까.

● 벌금형 중 최다 '300만 원', 집행유예 중 최다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선고 형량이 적정했는지 분석해보려는 두 번째 시도, 같은 금액의 벌금형·같은 형량의 집행유예가 나온 사건들을 비교해보는 방식이다. 벌금액수가 같고, 같은 징역형에 집행유예 기간까지 같다면 그 피고인들이 저지른 범행은 비슷한 수준 아닐까 하는 게 우리의 가설이었다. [마부작침]*방정식의 답이 벌금 300만 원인 경우

<마부작침>이 분석한 2018년 불법촬영 판결에서 가장 비중이 큰 벌금형(46.8%, 202건). 그 벌금형에서 판사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벌금액수는 300만 원이었다.(27.7%, 56건) 벌금형 판결 4건 중 1건은 벌금 300만 원이었다.

먼저 범행 횟수. 벌금 300만 원 사건의 범행 횟수는 1회부터 54회까지 있었다. 평균 4.8회였다. (※벌금 300만 원 사건 중에는 범행 횟수 492회로 분류된 사건이 1건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피고인이 여성 피해자 1명만을 따라다니며 사진 촬영했기에 '성명불상' 피해자가 수십, 수백 명인 사건과는 다르게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부 이견이 나왔다. 그래서 이 사건과, 범행 횟수를 '수회'라고 표시해 정확한 수치를 알기 어려운 1건은 벌금형 사건의 평균을 따질 때 제외했다.)

다음은 동종 범행 전력. 같은 범죄로 적발된 전력이 있는 사건이 3건이었다. 모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사건들이었고 이번에 적발된 범행 횟수 자체는 한 자리 수로 많지 않았다. 이들 범행 전력이 있던 피고인 3명은 벌금형 선고를 받고 한숨 돌렸겠지만 '초범'이면서 같은 한 자리 수 범행을 하고도 같은 액수의 벌금을 내야 했던 44건의 피고인들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조금 '억울'해 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외에 '초범' 판결문 중에서 6건은 화장실에 침입해 용변 장면을 불법촬영했고, 2건은 탈의실 혹은 화장실에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불법촬영하는 등 계획적인 범행을 저질렀다. 다른 초범보다 죄질이 불량했으나 역시 벌금형에 벌금액수의 차이도 없었다.

*방정식의 답이 집행유예 2년인 경우

<마부작침>이 분석한 2018년 불법촬영 판결에서 벌금형 다음으로 비중이 큰 집행유예(40.7%, 176건). 가장 많이 선고된 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37.5%, 66건)이다. 범행 횟수는 1회~171회, 평균 9.5회로 벌금형보다 많다.

범행 횟수 차이도 꽤 크지만, 여기에는 같은 범죄로 적발된 전력이 있는 사건이 18건 있었다. 약식기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범행을 재개한 사건, 선고유예와 벌금형을 2회 이상 받은 사건도 있었지만 그런 전력이 없는 48건과 마찬가지로 징역 6월에 2년 간 형 집행을 유예받았다. 초범인데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같은 결과를 받아든 피고인들이 역시 '억울'해 할 일일까.

헌법 103조는 법관의 양심과 독립에 관한 조항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양형은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적정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불법촬영 범죄의 양형, 적정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나.

김영미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처음에 걸리면 기소유예, 또 걸리면 벌금이나 집행유예, 또 걸려도 한 번은 집행유예, 또 걸렸다 하면 그제서야 실형. 이런 식으로 법원이 선처해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가해자들이 '불법촬영해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끝나네'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재범의 경우 더 가중해서 양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유형의 범죄 '불법촬영'...양형기준 조속히 마련해야

법원이 형사재판에서 유죄인 피고인이 받게 될 형벌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이 '양형'(量刑)이다. 판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형량 차이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법원은 '양형 기준'을 정한다. 판사는 합리적 사유 없이 양형 기준을 위반할 수 없기에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양형 기준은 양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성범죄의 경우 강간과 강제추행에 대한 양형기준이 마련돼 있으나 불법촬영 범죄는 별도의 양형기준이 없다. <마부작침> 분석에서 확인된 것처럼 비슷한 정도의 범행이라도 때로는 너무 가벼운 처벌만 받는 등 양형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말 출범한 대법원 제7기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가 올해 안에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만들기로 한 건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기도 하다.

김현아 변호사는 재작년 발표한 논문에서 "피해자의 수가 많거나, 촬영기간이 상당한 기간에 걸쳐 있거나, 동종범죄전력이 있는 경우에는 상습성의 발현으로 보아 상응하는 양형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카메라등이용촬영죄 처벌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2017)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강간이나 강제추행 같은 경우도 양형기준이 생긴 뒤 법정형은 안 바뀌었는데도 형량이 상승했다. 불법촬영도 양형기준이 마련되면 지금보다 형량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김학휘 기자 (hwi@sbs.co.kr)
안혜민 기자·분석가 (hyeminan@sbs.co.kr)
조애리 디자이너·개발자 (dofl5576@gmail.com)
인턴: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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