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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② 최다 피해자는 '성명불상'…나도 모르게 피해자 되는 불법촬영

판결문 432건을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

[마부작침] ② 최다 피해자는 '성명불상'…나도 모르게 피해자 되는 불법촬영
"인간의 영혼마저 빠르게 파괴할 수 있는 무서운 범죄"
"소위 '몰카'는 문명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짓"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안심할 수 없고, 편안하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야만"


지난해 6월 정부 합동으로 발표한 '불법촬영 범죄 근절을 위한 특별 메시지' 중 일부다. 이보다 아홉 달 전엔 몰카 판매를 규제하고 불법촬영과 유통 처벌을 강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을 정부는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법촬영 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2017년 한해 발생한 불법촬영 범죄 6,615건, 하루 18건 꼴이다. 지난 3월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고 그 결과물을 공유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던 유명 연예인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 표현대로 "우리 사회는 아직 야만" 상태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불법촬영'을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보려 했다. 2018년 한해 서울 5개 지방법원의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 432건을 수집해 상세히 분석했다. 대법원 판결문 열람제도를 활용, 성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14조 '카메라등이용촬영' 죄가 포함된 판결문을 찾은 뒤 불법촬영이 주된 범죄인 1심 판결문만 추려냈다. 성폭행이나 폭행, 절도 등 다른 강력범죄가 함께 적용된 사건은 불법촬영 범죄의 형량을 살펴보기엔 적합지 않다고 판단해 제외했다.

이를 통해 지난 1년 간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법원 판결은 적정했는지, 불법촬영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 짚어보려 한다.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라던 영화 <살인의 추억>의 대사처럼 "여기가 불법촬영의 왕국이야?"라는 탄식, 앞으로는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②최다 피해자는 '성명불상'... 나도 모르게 피해자 되는 불법촬영
[마부작침]
서울 동부지방법원의 지난해 2월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 피고인은 2017년 2월부터 7월 사이에 여성의 치마 속 등 신체 특정부위를 한 번에 1장부터 40장까지 사진 603장, 동영상 18개, 총 104회 불법촬영한 혐의로 붙잡혀 기소됐다. 판사는 벌금 500만 원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휴대전화 몰수를 선고했다.

판결문에는 각 범죄사실에 벌금형을 적용했으며 양형 이유로 "사건의 범행 횟수가 많은 점",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는 점, 초범인 점"을 고려했다고만 간략히 나와 있다. 첨부된 범죄일람표를 보면 104회 범행 중 103회는 '성명불상', 피해자 1명의 신원만 확인됐다. 이 여성과 합의를 했는지 아닌지는 판결문으론 알 수 없다.

1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범죄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나도 모르게 범죄 피해자가 되는 범죄, 이런 식으로 촬영한 영상을 유포하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범죄가 불법촬영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불법촬영'...특정 못해 처벌도 사각지대
[마부작침]
<마부작침>이 분석한 2018 불법촬영 판결문에서 '성명불상' 피해자가 포함된 사건 판결은 54.2%, 234건이다. 이중에 범행 횟수를 수치로 표시하지 않은 3건을 제외하면 범행 횟수는 평균 18.2회다. 전체 평균 12.5회보다 6회 가량 많다. 범죄 피해자가 파악된 사건 195건은(범행 횟수가 모호하게 적힌 3건 제외), 범행 횟수가 평균 5.7회다. '성명불상' 피해자가 있는 사건의 범행 횟수가 범죄 피해자가 파악된 사건의 범행 횟수보다 3배나 더 많다. 2회 이상, 5회 이상 범행 횟수 또한 '성명불상'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 월등하게 많다. 불특정 여성을 겨냥한 불법촬영 범죄의 특성을 보여준다.

불법촬영 범죄를 주로 단속하는 이경우 서울지하철경찰대 수사관은 "피해자는 (불법촬영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저희가 범인을 잡고 피해를 확인하려고 하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불쾌하게 생각하고 경악한다"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김영미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피해자가 수십 명, 수백 명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면 당연히 피해자 1명인 경우와 양형에 다르게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피해자는 여성...불법촬영 대상의 60.9%는 치마 속·다리
[마부작침]
피해자 성별이 언급된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여성뿐인 사건은 97.2%, 거의 전부다. 남성만 피해자인 사건은 2.0%, 여성-남성이 함께 범죄 피해를 당한 사건은 0.9%다. 여성-남성이 함께 피해를 본 3건은 락커룸이나 남녀공용화장실에 몰래 설치한 카메라에 남성·여성 피해자의 탈의와 용변 장면이 각각 촬영된 사건, 여관 창밖에서 성관계 장면을 불법 촬영한 사건이다.

불법촬영한 대상을 보면 치마 속·다리·허벅지 등 신체부위가 263건(60.9%)으로 가장 많았다. 나체나 탈의 등 옷을 벗고 있거나 벗는 장면이 89건(20.6%), 용변 장면이 81건(18.8%)이었다. 성관계 관련 불법촬영도 46건(10.6%)으로 적지 않았다. (중복 포함) 여성정책연구원의 2017년 분석과 비교하면 87%를 차지했던 신체부위가 줄어든 대신 다른 대상 촬영은 모두 늘었다.

●처벌 강화했다지만…불법촬영물 '유포' 10%
[마부작침]
불법촬영 범죄에서 우선은 촬영이 문제지만, 피해를 크게 확산시키는 건 유포 행위다. 가수 승리와 정준영 등 일부 연예인들은 불법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단체채팅방을 통해 유포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마부작침>이 분석한 2018 불법촬영 판결문에서 불법촬영과 함께 유포까지 한 사건은 43건, 무죄 2건을 제외한 430건의 10%에 해당한다. 이중에 62.8%, 27건은 단체채팅방이나 인터넷 사이트 등 다수가 볼 수 있는 곳에 불법촬영물을 퍼뜨렸다.

불법촬영과 함께 유포까지 한 사건인 43건의 선고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건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53.5%, 23건이었다. 다음은 벌금형 30.2%, 13건. 징역형 실형은 16.3%, 7건이다. 전체 판결문에 비하면 20% 정도 평균 형량이 높긴 하나 "인간의 영혼마저 파괴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단죄로 적정했는지는 의문이다. 피해자의 나체 사진을 피해자의 어머니, 혹은 아들에게 보내거나 20명이 있는 단체채팅방에 유포했는데 벌금형에 그친 경우도 있다.

국회는 지난해 말 '성폭력범죄에 관한 특례법' 14조를 개정해 불법촬영 죄 처벌을 강화했다. 불법촬영물 유포의 경우, 영리 목적으로 유포했다면 벌금형 없이 징역형으로만 처벌하도록 했다. 이렇게 법이 바뀌기 전이긴 하나 2018년 불법촬영 판결문에서 영리 목적으로 유포했다고 판단된 사건은 거의 없었다.

●"점점 대담해지는 양상"… '화장실' '용변' 촬영 증가세

지난해 4월 선고된 서울 중앙지방법원의 한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은 2015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2년 간 지하철·버스정류장·화장실 등에서 여성의 다리·허벅지·용변 보는 모습 등을 59회에 걸쳐 불법촬영해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에 처해졌다. 특히 검거될 당시엔 여자화장실에 1시간 넘게 머물면서 용변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파악됐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주로 지하철 등에서 여성의 신체부위를 노리다 2017년에는 화장실에 침입해 용변 장면을 불법촬영했다. 판결문에는 "범행이 점점 대담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마부작침]

판결문 기준으로 볼 때 용변 장면에 대한 불법촬영은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전체 사건의 18.8%(81건)를 차지했다. 불법촬영이 적발돼 재판까지 받은 사건에 한해서 그렇다. 이중 범행도구로 휴대전화 외에 몰래카메라류(볼펜형, USB형, 그 외 소형카메라)를 사용한 사건은 6건, 나머지는 모두 화장실에 침입해 휴대전화로 옆칸 피해자를 촬영했다.

대부분 피해자는 여성이나 용변 장면 촬영을 당한 남성 피해자도 있다. 서울 서부지방법원은 2017년 6월~9월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남자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모습을 22회에 걸쳐 휴대전화로 촬영한 피고인에 대해 지난해 2월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이 피고인은 같은 범죄를 2번 저질렀던 전력이 있고 특히 이번 판결의 범행 기간인 2017년 8월에 벌금형 처분을 받으면서도 계속 범행했는데 또 다시 벌금형으로 넘어갔다. 남성만 피해자인 사건 7건 중 3건이 화장실 불법촬영이었다.

화장실 혹은 용변 장면 불법촬영이 왜 늘고 있는 것일까. 한 판결문에서 언급했듯 "범행이 점점 더 대담해지는 양상"을 반영한 것, 불법촬영범들이 더욱 자극적인 범행대상을 찾는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화장실 몰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정부는 지난해 6월 공중화장실 5만 곳에 '몰카'가 설치됐는지 상시 점검하고 민간 화장실까지 점검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휴대전화를 사용한 범행을 막겠다며 아예 화장실 하단부를 막아버리는 '안심스크린' 설치를 늘려가고 있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김학휘 기자 (hwi@sbs.co.kr)
안혜민 기자·분석가 (hyeminan@sbs.co.kr)
조애리 디자이너·개발자 (dofl5576@gmail.com)
인턴: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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