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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① 승리는 왜 홍콩에 회사를 차렸나

'승리 게이트'는 자본과의 유착에서 출발했다

이른바 '승리 게이트'에서 공권력 유착 및 성범죄 의혹만큼이나 중요한 한 축은 바로 '자본과의 유착'입니다. 이번 사건과 연관된 많은 의혹과 비리 상당수가 돈에서 출발해 돈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승리 게이트 속 '자본과의 유착' 부분을 두 편의 취재파일에 걸쳐 파헤칩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2013)" id="i201305172"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90420/201305172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위대한 승츠비'라는 별명을, 승리는 그렇게나 좋아했다고 한다. 자신의 첫 솔로 정규 앨범 제목을 '위대한 승리(THE GREAT SEUNGRI)'로 짓는가 하면 직접 상표 출원까지 했다니 말 다 했다. 젊은 나이에 얻은 어마어마한 재력을 바탕으로 호화스런 파티를 즐기는 원작 소설 <위대한 개츠비> 속 주인공의 모습이, 승리의 눈에는 꽤나 괜찮아 보였던 것 같다.

소설 속 개츠비는 금주법(禁酒法)이 발효된 1920년대 미국에서 밀주 등 불법적인 사업을 벌여 벼락부자가 된 것으로 그려진다. 승리가 설마 이런 설정까지 감안했겠냐마는 공교롭게도 최근 버닝썬 사태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로 승리의 사업 과정에도 불법 의혹이 불거졌다. 실제 몇몇 사업에서 불법적인 정황이 속속 드러났고 사정 당국도 수사에 나섰다.

이와 함께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사업 하나가 승리 등이 홍콩에 세운 해외 투자법인 'BC홀딩스'다. 버닝썬 사태 초기부터 이 회사를 둘러싸고 여러 보도가 나왔다. 누가, 왜 세웠나 하는 물음부터 탈세 의혹까지 다양한 물음표가 쏟아졌다.

무엇보다 외식 사업이나 클럽은 그렇다 치고 홍콩에 해외법인을 세워 수백억 원의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이 사업을 과연 승리 혼자, 주도적으로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게 가장 근본적인 의문점이다. 나아가 이는 단순히 탈세나 다른 꼼수 의혹을 넘어 결국 자본, 혹은 자본을 매개로 한 다른 세력과의 연결고리를 보여줄 수도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 홍콩 사무실, 상주 직원 없지만…"투자금 100억 유치"

BC홀딩스는 지난 2016년 3월 30일 홍콩에 설립됐다. 승리(이승현)와 그의 동업자인 유인석 씨, 국내 컨설팅업체 대표인 류재욱 씨 등 세 명이 공동설립자로 참여했다. 초기 설립금으로 1홍콩달러짜리 주식 300주를 발행해 100주씩 나누었는데,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총 4만 5천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승리가 유인석 씨와 함께 설립한 유리홀딩스(각자의 이름에서 한글자씩을 따왔다)의 기업 포트폴리오에는 BC홀딩스가 아오리라멘 등과 함께 등재돼있다. 해외 자본을 유치해 국내 혹은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글로벌 투자 법인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홈페이지에는 지난 2017년, 무려 3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해 운용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다만 공동 설립자인 류재욱 대표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당초 300억 원을 목표로 했지만 2017년 5월 100억 원으로 1차 증자를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BC홀딩스
국내 일부 언론은 이 회사를 둘러싸고 페이퍼컴퍼니 의혹을 제기했다. 초기 설립자본금도 4만 5천원 정도로 너무 적고, 정체도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취재진도 홍콩 주소로 직접 찾아가 봤다. 홍콩 금융가의 중심지인 센트럴 거리에 위치한 해당 건물에는 BC홀딩스 대신, 법인 설립을 대행한 현지 한국계 세무법인이 입주해 있었다. 상주직원은 물론 간판이나 회사 존재를 인지할 만한 단서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 법인이 처음 설립된 이전 주소로 찾아가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관련기사 ▶ [끝까지 판다] '세무당국 추적' 승리의 수상한 홍콩 법인, 실체는?)

다만 이는 홍콩에서 흔히 통용되는 방식이긴 하다. 잘 알려졌다시피 홍콩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금융허브다. 잠시 뒤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꼭 조세 회피 목적이 아니더라도 해외 투자나 영업의 용이함을 위해 홍콩 현지에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이 경우 간사 회사(Secretary firm)라고 해서, 자격을 갖춘 현지의 법인 설립 대행업체에 주소지를 두고 행정, 세무 등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이런 형태로 홍콩에 설립되는 회사가 1년에 적어도 1만 개는 된다는 게 현지 업계의 이야기다.

설사 페이퍼컴퍼니라 해도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역시 홍콩법으로 이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종종 문제가 되는 것처럼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역외 탈세를 시도하는 식의 불법만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보통 이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워놓고 무언가 영업 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꾸며 돈을 보내고, 자금을 세탁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수년 전 효성그룹 총수가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불법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BC홀딩스 유대표
BC홀딩스의 공동설립자인 류재욱 네모파트너즈 대표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투자회사로서 실제 투자 검토 및 집행 등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회사이며, 우리은행 홍콩지점을 주거래 은행으로 하여 홍콩의 세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또 "BC홀딩스는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여서 한국기업에 투자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페이퍼컴퍼니는 불법 아냐…"무엇을 했느냐가 중요"

그러니까 승리의 홍콩 회사가 페이퍼컴퍼니냐 아니냐는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일단 불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콩 현지 한국인 회계사들은 다만 "실제 이 회사에서 무엇을 했는지, 어떤 형태의 영업이 이루어졌고 자금이 어떻게 오갔는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지 사정에 밝은 회계 및 투자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하면 홍콩에 회사를 세우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첫째, 해외 투자 유치 및 영업에 편리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홍콩은 아시아의 금융 허브일뿐더러 한자 및 영어가 통용되기 때문에 언어가 다른 파트너끼리 사업하기에도 부담이 적다. 특히 투자 파트너가 중국이나 베트남 등 정부의 입김이 세고 상대적으로 시장 자본주의가 덜 퍼져있는 국가에 소속돼 있을 경우는 더 이점이 생긴다. 분쟁이 생기더라도 홍콩을 중개지로 활용하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려졌다시피 BC홀딩스의 주요 투자자 가운데 한 명은 베트남 재벌 2세로 알려진 도호앙민(Do, Hoang Minh)이다. 승리 측이 베트남 등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자 했다면, 홍콩에 법인을 설립하는 게 여러모로 필요했다는 얘기다. 도호앙민 측은 승리 단톡방 보도가 불거지고 며칠 뒤인 3월 14일 BC홀딩스 이사직을 사임했지만, 여전히 16.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두 번째 이유는 이른바 '절세'를 위해서다. 홍콩 현지 회계사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홍콩 법인을 통해 해외 투자를 받은 경우 투자금의 일부를 '차입금'으로 장부에 잡아놓는다. 추후 수익이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차입금을 상환하는데, 홍콩 제도상 이 과정에서 세금이 거의 발생하지 않거나 매우 적게 발생한다. 보기에 따라 꼼수로 보일 수 있지만 홍콩에서는 아주 보편적인 절세 방법이라는 게 현지 회계사의 이야기다.

또 다른 국내 투자 전문가에 따르면 BC홀딩스를 통해 투자된 돈이 국내에 들어올 때도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해외 자금을 국내에 들여오면 '외자 유치'가 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세제 혜택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돈이 승리 등의 국내 사업에 쓰이게 되는 경우에도 추가적인 이득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페이퍼컴퍼니가 불법이 아닌 것처럼, 위 내용도 모두 불법은 아니라고 조언했다. 보기에 따라 꼼수로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홍콩에서는 워낙 보편적으로 이뤄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 과정에서 없는 일이 있는 일처럼 부풀려지거나 또 다른 꼼수가 쓰였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은 법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이뤄진다고 전했다.
BC홀딩스 2

● "전문가 아니면 하기 힘든 구조"

중요한 점은 이런 승리의 홍콩 회사가, 그들이 구상하고 필요로 한 사업에 최적화된 형태라는 점이다. BC홀딩스에는 수십억 대의 일본 및 베트남계 자본이 들어가 있다. 이런 해외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오기에도 용이하고, 국내로 자금을 들여오는 경우에도 혜택을 볼 수 있다. 우리 과세당국의 시야에서 멀리 벗어나 있기 때문에 운신의 폭도 넓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됐다는 이야기다. 홍콩에 회사를 차린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런 구조는 전문 지식을 갖추고 업계의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가 아니라면 설계하고 실행하기 힘든 내용이다. 물론 관련 자격과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게 과연 유리홀딩스의 공동대표인 승리와 유인석 씨 두 사람이었을지는 의문스럽다. 많은 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컨설팅회사를 거쳤던 유 씨의 경력 등을 감안하더라도 이 두 사람이 사업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결국 연예인은 유명세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반대로 경제력을 가진 자본 세력은 돈을 미끼로 연예인이 가진 유명세를 활용해 또 다른 목표를 추구하려 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제기한다. 기자가 만난 한 투자업계 전문가는 특히 BC홀딩스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사업 형태가 "일반적인 형태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의견을 밝혔다. 법인 설립의 형태나 구성, 과정을 봤을 때 "투자 회사의 지상 목적인 이윤 추구나 수익 극대화보다는 어떤 다른 전략적 목표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내용은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이는 최근 드러난 클럽 버닝썬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온갖 탈법의 온상이라는 의혹에 휩싸인 클럽 버닝썬의 최대 주주는 '탄광 재벌'로 불리는 전원산업이었다. 전원산업이 버닝썬 측에 상식 밖의 헐값 임대료 등 각종 특혜를 제공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측의 관계와 배경에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일반적인 임대차 관계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석탄으로 돈을 벌어 호텔 사업까지 진출한 중견 기업이 무엇을 위해 버닝썬을 키웠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전모가 밝혀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게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 본질은 '자본과의 유착'

이런 배경을 놓고 보면 '버닝썬 게이트'로 대표되는 일련의 사태는 단순히 연예인들의 일탈이 아니라, 보다 높은 층위의 다양한 욕망이 서로 얽히고 때로는 치열하게 부딪히는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분에 가깝다. 이 사태가 사건사고라는 우연한 균열을 통해 드러났다는 것을 감안하면, 표면으로 드러난 사실 자체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현재 국세청이 조사에 나섰지만 결과가 시원치 않을 거란 전망도 많다. 고도로 숙련되 자본 세력이 움직였다면, 위 홍콩 사업에서 언급한 것처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영리하게 움직였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무엇을 위해 움직였고 돈이 어떻게 오갔는지는 앞으로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처벌과 제재 여부를 떠나,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이뤄졌고 또 이뤄지는지 시민들이 알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공권력과의 유착을 넘어 구조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자본과의 유착이다. 공권력과의 유착도 결국 자본을 매개로 이뤄지며, 모든 기저에는 결국 '돈'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개인의 품성과 비행보다는 이 '돈의 맛'에서 파생된 욕망의 구조를 파악하는 게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처방이 될 것이다.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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