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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韓美 장군들의 말(言)…판이한 韓美의 민군 관계

28일, 전진구 사령관이 넬러 사령관에게 한국 이름이 적힌 족자를 전달하고 있다.
미국 해병대 사령관 로버트 넬러 대장이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오는 5월 사령관직에서 물러나게 돼서 이임 인사차 한국의 카운터 파트인 전진구 해병대 사령관, 박한기 합참의장을 만났습니다.

넬러 사령관은 박한기 의장으로부터 보국훈장 통일장을, 전진구 사령관으로부터는 한국 이름 '내일로(來日路)'를 받았습니다. 그의 한국 이름에는 한미 해병대가 '더 큰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는 의미가 담겼다고 해병대는 설명했습니다.

넬러 사령관의 외모는 참 다부집니다. 말과 행동도 그렇습니다. 군 통수권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행정부를 향해 직설을 날리기 일쑤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딱히 반박하지도 않습니다. 한국의 풍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드물지 않은 풍경입니다. 미 존스홉킨스대 엘리엇 코언 전략학 교수가 불평등한 대화(Unequal Dialogue)라고 정의하는 역동적 민군 관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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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러 사령관의 직언과 미국의 민군 관계

넬러 사령관은 지난 18, 19일 미 국방부 장관대행과 해군 장관에게 각각 메모를 보내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이 미국 국가 안보에 미치는 악영향을 강력하게 경고했다고 미국 정치 전문 매체 더힐이 보도했습니다. 넬러 사령관은 메모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예기치 않은 국경지대 병력 배치와 비상사태 선포에 따른 예산 전용으로 인해 5개국에서 계획된 군 훈련이 취소 또는 축소되고 시급한 군 기지 시설 보완이 연기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해병대는 고도의 전투에 대비해 엄중한 실전 훈련에 의존하고 있다",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주력하는 시점에 훈련 취소 및 축소가 이뤄지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정면 비판했습니다.

미 해병대의 훈련이 취소 또는 축소된 곳은 인도네시아와 스코틀랜드, 몽골, 호주 그리고 한국입니다. 다른 지역의 훈련 상황은 불분명하지만 한국에서 벌어진 일은 자명합니다. 한미 해병대가 쌍룡훈련이라는 연합훈련을 할 계획이었지만 현재 미 해병대가 불참한 상태에서 한국 해병대만 단독으로 훈련(3.28~4.5)하고 있습니다. "쌍룡(雙龍)훈련이 일룡(一龍)훈련 됐다"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는데 미국의 국경 장벽 건설과도 관련이 있다는 게 넬러 사령관의 메모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넬러 사령관은 작년 10월 한미 연합훈련 유예 조치에도 반발했습니다. 국방부 간담회에서 "한국에서 진행되는 훈련은 해병대의 준비 태세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한국에서 훈련할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넬러 사령관뿐 아닙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도 작년 9월 인준 청문회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으로 대비태세가 약화됐다"고 입바른 소리를 했습니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장군들이 전·평시를 막론하고 행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주장을 펼 때가 많습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문민 정치인이기 때문에 정치적 계산을 통해 군사 정책을 결정합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군사 정책은 장군들의 군사적 잣대로는 납득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미국 장군들은 넬러 사령관이나 에이브럼스 사령관처럼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합니다. 행정부는 그들의 의견을 듣고 정책을 수정할 때도 있고 고수하기도 합니다. 장군들은 행정부의 최종 결정에 복종합니다. 문민 절대 우위의 민군 관계인 불평등한 대화입니다.
28일 해병대사령부에서 넬러 사령관과 전진구 사령관이 의장행사를 하고 있다.
● 대화 없는 일방통행식 한국의 민군 관계

정경두 국방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서해수호의 날과 관련된 질의에 "서해상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충돌"이라고 대답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야당이 강하게 반발하더니 장관 해임과 지명 철회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불미스럽다'의 사전적 의미는 '아름답지 못하고 추잡한 데가 있다'입니다.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전은 추잡한 사건이 아닙니다. 북한의 도발에 해군과 해병대 장병들이 당당히 맞서고 숭고하게 희생한 일입니다.

정경두 장관은 전역한 민간인 신분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한국 민군 관계에서는 전문직업군 출신의 국방장관은 군인을 대표합니다. 따라서 국방장관의 말도 군을 대표합니다. "서해상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충돌" 발언이 잘못된 이유입니다. 아마 평상시 전문직업군으로서 그의 신념, 속마음과도 배치될 겁니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및 취소에 대한 군의 반응도 정경두 장관의 '서해 불미' 발언과 결이 비슷합니다. 군 지휘부 중 어디에서도 훈련 축소와 취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예비역 장성들이 모여서 훈련 취소를 성토하면 현역의 군 고위직들은 "잘못된 지식과 이념 때문"이라고 질타합니다.

한미 두 나라가 연합훈련을 안하면 동맹의 연합작전능력은 당연히 훼손됩니다. 다만 북한 비핵화를 유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규모와 내용을 조정하는 겁니다. 과도하게 줄이고 취소하면 대비태세가 흔들릴 수 있으니 넬러 사령관과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었습니다. 넬러와 에이브럼스는 잘못된 지식과 이념 때문에 연합훈련 축소를 우려했을까요?

"군이 청와대 권력의 눈치를 보며 행동한다", "인사권자 입안의 혀처럼 구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는 수군거림이 국방부 안팎에서 들립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평시 안보도 위태롭게 하는 잘못된 민군 관계, 왜곡된 문민 통제의 전형(典型)입니다. 안보 전문가인 군은 정부에 냉정하게 직언하고, 정부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최종 결정하고, 군은 묵묵히 따르는 민군 관계가 확립돼야 합니다. 정부가 독단적으로 안보 정책을 결정하고 군은 수동적으로 뒤따르며 결정된 정책을 뒷받침할 논리와 증거를 개발하는 식이면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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