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아스라하게 펼쳐져 있다.
● 섬에서 섬을 발견하다
대봉(150m)의 전망대에 서자, 세상의 풍경이 달라져버렸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멋진 풍광 앞에서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이곳 선유도엘 온 것이고, 또 산을 오른다는 작은 수고스러움이나마 감수한 것이 아니겠는가. 한편으론 비록 명목뿐인 인솔 대장이었지만 굳이 이곳을 고집한 보람 내지 성취감까지 덤으로 얻는다.
땀깨나 흘리며 투덜대던 일행들 역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 눈앞에 펼쳐진 다도해의 장관 앞에서 감동 어린 눈빛으로 고군산의 수많은 섬들과, 그 섬들이 그려내는 섬과 바다의 조화를 눈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눈만이 아니다. 스마트폰 역시 열일을 하느라 찰칵찰칵... 전망대에 때 아닌 메아리가 넘쳐난다.
숲 안에서는 숲을 보지 못하고, 섬 안에서도 섬을 보지 못한다더니, 실제 그랬다. 섬 안에 있을 때는 그 섬마저도 바다와 잇닿은 또 다른 땅의 모습일 뿐 섬을 알지 못하였으나, 산 위에 올라 조금은 떨어져 대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 앞에서 섬은 섬이 되었고, 또한 섬은 동경과 외로움이라는 주제어를 품고 있는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도 된다.
동경이 그렇고 그리움이 그러하듯, 무언가를 기다리고 또 마음에 담는다는 것은 언제나 외로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고군산군도를 기어이 육지와 연결시킨 그 첫 장본인인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현수교인 단등교는 차로 무심히 건널 때는 서울의 한강을 가로지르는 여느 다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다리를 떠나 멀리서 바라보자 과연 점과 점을, 섬과 섬을 굳건히 연결해주고 있는 맞잡은 두 손이었음도 알게 한다.
일행들은 이 멋진 풍경 앞에서 손이 아닌 어깨를 걸고 그들만의 추억을 간직한다. 더러는 오늘이 초면이었음에도 격의 없이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고 한 곳을 바라보며 꽁치~ 한치~ 멸치~(*바닷가에서는 김치~가 아니란다) 미소 띤 얼굴로 여러 컷의 사진을 남긴다. 그렇게 또 인연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나고, 그 누군가에게 마음 한 자락을 내어주는 일이 아니던가. 길 위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은 늘 그렇듯 또 우리의 인연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여정에는 알 수 없는 풍성함이 있다. 여유롭고 너그러운 사람들이 갖는 향기가 느껴진다. 좋은 것은 굳이 맛보지 않아도, 또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그 무엇이 있지 않던가.
가끔은 대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대상과 동화됨을 느낄 때가 있다. 굳이 말이 없어도 옅은 미소 띤 얼굴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그 대상은 내게로, 마음으로 오는 것이다. 사람도, 풍경도, 어떤 삶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내려가는 길이 아쉽다. 또 어쩌면 짧은 여정이 아쉬운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등창이 나 고생하는 며느리를 두고 시어머니는 가난한 살림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까치무릇을 상처에 짓이겨 발라주었더니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해서 산자고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설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만으로는 이름값이 과하다는 생각이 약간(?) 든다. 하지만 어쩌랴! 굳이 이 이름을 지은 이유야 지은이만이 알 것이다. 여행자는 다만 알려진 것 말고도, 다른 훌륭한 미담이 더 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따름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장 그르니에는 그의 저작인 <섬>에서, 섬에 가면 또 하나의 섬인 홀로 서 있는 한 사람을 만난다고 했었다. 문득 멈춰 서 바라보는 섬과 바다는 아득하고 고요했다. 바다를 사이에 둔 적당한 간격 안에서 그들은 평화로웠고, 또 아늑했다. 그렇게 고요와 평화 안에서 또 하나의 섬으로 홀로 서 있는 한 사람은 스스로 섬이면서, 고군산의 섬들이 그렇듯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섬은 외롭지만 외롭지 않았고, 홀로인 듯 보이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다만 홀로 서 있는 것일 뿐... 결국 섬도 사람도 홀로 서야 하는 존재였음을 어슴푸레 깨닫는다.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詩 <홀로서기>) 홀로 설 수 있을 때, 그때라야 우리는 세상을,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닫히고 열린 공간의 오목한 곳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섬은 누군가에게는 감상의 대상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꿈을 키우고, 바다와 더불어 그들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다시 어디로 가야 하나? 나름 마음먹고 먼 길을 달려온 터라 하나라도 더 보고, 한 발자국이라도 더 걷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으나 시간이 허락하질 않는다. 아쉬운 것은 대장봉 할매바위 아래까지 갔지만, 오를 수는 없었다. 늦은 시간 탓에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서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여정을 마치고 군산으로 가는 차창 너머로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노을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아마도 머지않은 때에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삶은 사람들과의 부대낌의 연속으로 채워진 긴 여행일 것이다. 살갑게 체온을 나누고 정다운 말을 나누고, 더러는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을 하면서도, 인연은 인연이라서, 삶은 또 그 인연 안에서 풍요로워지고 있음을, 섬들의 바다가 여행자에게 들려주는 가르침이다.
* 선유도 선착장~군산시정 관광안내소~선유도 해수욕장(명사십리)~선유 3구 마을~대봉 전망대~몽돌해변~군산시정 안내소~초분공분~장자대교~대장도~장자마을~장자대교~군산시정 관광안내소~선유도 선착장
* 거리(소요시간) : 14km(5시간) / 문의 : 군산시 관광진흥과 (063-454-3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