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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31년 만의 선거제 개편…비례대표 확 늘고, 배분 방식 더 복잡해져

[취재파일] 31년 만의 선거제 개편…비례대표 확 늘고, 배분 방식 더 복잡해져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편안에 합의하였다. 선거제 개정이 이뤄지는 건 1987년 이후 31년 만이다. 가장 달라지는 건 지역구 : 비례 의원의 비율이다. 현재 국회의원 수는 지역구 의원 253석, 비례대표 47석, 모두 300석이다. 개편안은 일단 의원 수는 300석으로 고정하되, 지역구 225석 : 비례 75석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지역구 의원을 28석 줄이는 대신, 비례의원을 그 수만큼 늘리는 것이다.

이렇게 바꾸는 이유는 '정당 지지율을 최대한 국회의원 수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그 방식에 대해서는 '정당 지지율을 100% 의석수에 적용할 것이냐', '일부만 적용할 것이냐' 등등 정치권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였다. 그 가운데 지난 17일 여야 4당이 잠정 합의한 방식은 '연동률 50%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정당 득표율의 50%를 의석수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단어만 봐도 딱 드는 생각은 '어.렵.다.'이다. 실제 비례대표 의석 배분을 연동형과 현행 병립형 두 가지를 복합하도록 해 꽤 복잡해졌다. 말로만 설명하자면, 전국 정당 득표율에 따라 우선 의석수를 배분한 뒤 지역구 의석을 제외한 비례대표 의석은 정당 득표율의 절반만 인정해 1차 배분하고, 모든 정당이 이렇게 비례대표를 다 배분한 뒤 또 남은 의석을 정당 득표율대로 2차로 나누는 방식이다.

만약 A 정당이 1당으로서 정당 득표율을 40% 얻어다고 치자. 정당 득표율을 완전히 의석수에 반영하자면, A당은 300석의 40%, 120석을 가져가야 한다.
[취재파일] 31년 만의 선거제 개편…비례대표 확 늘고, 배분 방식 더 복잡해져
바뀐 선거제도 하에서 선거를 치른다고 가정해보자. A당이 지역구 의석 100석을 획득했다면, 정당득표율 대로 얻어야 하는 의석 120석에서 20석이 모자란다. 비례대표를 배분할 때, A당은 1차로 이 20석에 '연동률 50%'를 적용한 10석을 우선 가져간다. 이후 B, C, D당 등도 '연동률 50%'에 해당하는 비례대표를 가져가고, 남는 비례대표 의석(75-(A+B+C+D 연동형 비례대표 의석))을 다시 정당득표율 대로 나누게 된다.

만약 모든 당이 1차로 비례대표를 다 나누고 그래도 30석이 남았다면, A당은 2차로 30석의 40%인 12석을 더 가져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A당이 가져간 총 의석수(지역구 100+연동형 비례 10+병립형 비례 12)는 122석, 정당 득표율을 원칙적으로 적용했을 때 가져가야 하는 120석에 근사한 수치가 나오게 된다.
[취재파일] 31년 만의 선거제 개편…비례대표 확 늘고, 배분 방식 더 복잡해져
그런데 정치는 어떤 '경우의 수'도 가능한 곳이니, 극단적인 경우도 나올 수 있다. A당이 지역구에서 압승을 거둬 135석을 가져갔다고 해보자. 정당 득표율상 배분할 수 있는 전체 의석(120석)보다도 많은 숫자이다. 이럴 경우에는 정당득표율상 전체 의석수(120석) 빼기 지역구 의석수(135석)가 마이너스(-)가 되니, A당의 연동형 비례대표는 0석이 된다. 대신, 다른 당들이 '50% 연동률의 비례대표'를 배분받은 뒤 75석 가운데 남은 비례대표 의석에서 A당의 정당 득표율대로 다시 배분한 의석은 가져갈 수 있다.

위의 경우처럼 각 당이 모두 비례대표를 배분받고 30석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A당은 30석의 40%인 12석을 가져가게 된다. 이 경우, A당의 총 의석수는 지역구 135석, 병립형 비례 12석으로 147석을 얻게 된다. 배분 과정에서 소수점이 나와서 만약 1~2석 비례대표가 늘어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데, 그 때는 법에 소수점 처리 방법을 명시해 의석수 증가는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취재파일] 31년 만의 선거제 개편…비례대표 확 늘고, 배분 방식 더 복잡해져
만약 2016년 20대 총선을 이 방식대로 치렀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20대 총선의 당선인 결과는 아래와 같다.
[취재파일] 31년 만의 선거제 개편…비례대표 확 늘고, 배분 방식 더 복잡해져
이걸, 225 : 75 비율로 먼저 조정한 뒤, 비례대표에 '50% 연동률을 적용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해 보았다. (정당득표율 3% 이하는 의석할당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무소속 등 기타 정당은 제외한다.이 내용은 개편안에도 포함이 되어 있다.)
[취재파일] 31년 만의 선거제 개편…비례대표 확 늘고, 배분 방식 더 복잡해져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수는 10석 이상 줄어드는 반면, 국민의당은 1.5배 이상, 정의당은 2배 이상 의석수가 늘어나는 결과가 나온다. 결국 거대양당의 의석수는 감소하고, 소수 야당들의 의석수가 대폭 늘어나게 된다.
국회 의석
여기에, 각 당의 비례대표 추천에 있어서도 당원과 대의원을 포함한 선거인단 투표로 명부를 확정하도록 하였다. 당원의 민심을 좀 더 반영해 그동안 비례대표 명단에 크게 작용했던 당 대표나 공천심사위원장의 입김을 줄여보겠다는 의도이다. 투명성과 민주성을 한껏 끌어올리겠다는 취지이다.

비례대표 순번은 기존대로 1, 3, 5... 홀수번은 여성을 배정해 여성 대표성을 유지하도록 하였고 2, 4, 6번 순번은 당에서 결정하게 하였다. 이번 개편안에서는 석패율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지역구에서 떨어진 후보를 비례대표로서의 '재부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A당이 비례 2번 후보에 '호남, 석패' 이런 식으로 배정하면, 호남 권역의 지역구 선거에서 떨어진 후보가 비례 2번으로 원내에 입성할 수 있게 된다.

애초 야당들이 주장했던 '100% 연동형'이 아니더라도, 비례성과 대표성이 대폭 강화하는 효과에, 투명성과 민주성을 강화한 제도, 이게 바로 개편안에 합의한 여야 4당의 주장이다. 실제로 20대 총선에서 당시 국민의당은 26.7%의 정당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전체 의석수는 그 절반도 안되는 12.6%를 차지했다. 그동안 25~30%의 정당 지지율을 얻고도, 45~50%의 의석수를 가져갔던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위의 결과에서도 나타나지만, 이런 변화는 '양당제'보다 '다당제'를 강화해줄 수 있다. 일부에서는 '지금은 지역구 의석도 내지 못하는 소수정당들이 난립해 정치권의 대화와 타협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윤태곤 정치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양당 구도였을 때 선진적이고 대화나 타협이 잘 됐습니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88년 13대 총선 때를 보십쇼. 1여 3야의 구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대화와 타협이 더 잘됐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제적으로 봐도 양당제 국가와 4~5개 당이 있는 국가를 비교해보면, 전자가 후자보다 낫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선거제 개편을 통해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선거제도에서는 특정 정당의 지역구 의원에게 표를 준 뒤,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지지하는 정당에 표를 준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지역구에서는 찍지 않았지만, 한 정당에 몰아주는 걸 피하기 위해서 또는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표가 몰리는 걸 막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소수 당 중 한 곳을 찍는 성향이 있었다. 이른바 보조적인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이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이 되면, 지역구와 정당득표가 점점 일치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지역구 후보 가운데 지지정당에서 '마음에 드는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면, 오히려 정당 득표에서 지지정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표'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통과만 된다면 내년 총선부터 시행하게 될 개편 선거제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우선 이번 개편안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극심하다. 한국당은 "정의당을 교섭단체 만들어 주는 '권력야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야 합의로 '부드러운 처리'가 어려운 상황인지라, 민주당과 야 4당은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올리려는 협상 중이다.

하지만, 지역구 수를 줄이는 선거제 자체는 물론, 선거법과 함께 패키지로 패스트트랙에 올리려는 검찰개혁법안 등에 대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내부의 이견도 만만치 않다. 국회의원도 헷갈린다는 복잡한 제도라는 선거제 개편안, 의원과 정당들의 치밀한 셈법 속에 어떤 식으로 마무리 될 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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