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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바보가 아닙니다"…마음 열게 한 '무심한 배려'

'원생' 대신 찾게 된 이름

[SBS 스페셜] 우리, 같이 살까요? ②

탈시설 부부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법은 무엇일까?

17일 방송된 SBS 스페셜에서는 '우리, 같이 살까요?'라는 부제로 특별한 한 부부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각각 보육 시설과 장애인 시설을 거쳐 30년간 시설에서 지냈던 이상분(41) 유정우(39) 부부는 갓 사회로 나온 탈(脫)시설을 한 이들이다. 나이는 중년이지만 사회에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유정우 씨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작은 케이크를 준비했다. 처음으로 케이크를 사 본 정우 씨는 초를 몇 개로 해야 할지도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정우 씨는 두 살 연상의 이상분 씨와 3년 전 밸런타인데이에 결혼을 했다.

정우 씨는 시설에서 스무 살 무렵 우연히 상분 씨를 만났고,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 시설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상분 씨를 위로하며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은 15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졌다.

정우 씨는 상분 씨에 대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은 상분 씨다. 다른 사람하고 비교도 안 될 정도다"라며 애정을 표현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른이 넘어 시설에서 나와 몇 해 뒤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부모님이 없던 이들의 곁에 시설의 센터장들이 도움을 주어 무사히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은 지적장애를 갖고 태어나 가족과 헤어져 한 보육원에서 자랐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 강원도의 한 장애인 시설로 이동했다. 이는 두 사람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정우 씨는 "제가 아기 때는 말도 못 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사람들 다니는 길 가운데 전봇대에 두고 엄마는 저쪽으로 가고, 아빠는 저쪽으로 갔다. 그 뒤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난 보육원으로 가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정우 씨는 지적장애로 인한 돌발행동을 했고 이는 그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우 씨는 부모님을 찾기 위해 DNA 조회까지 했지만 부모님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상분 씨와 결혼을 하며 새로운 가족들이 생겼다.

상분 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시설에 맡겨졌고, 동생은 다른 시설로 그리고 상분 씨는 장애인 시설로 옮겨졌다. 상분 씨의 동생은 "언니가 거기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는데 거기서 나오고 싶어 했다. 거기 있을 때 이야기는 잘 이야기를 안 한다. 상처가 큰 거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정우 씨는 "나이를 먹으면 보육원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미니 버스 같은 걸 타고 좋은 데 간다고 해서 어딘가로 갔다. 그런데 도착을 했는데 안 좋았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정우 씨와 상분 씨가 옮겨진 시설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불량 시설이었다. 해당 시설은 난방비를 빼돌리는 등 비리를 저지르고 이들을 학대하고 인권 유린을 했다.

이에 정우 씨는 "시설에서 일을 정말 많이 했다. 황소를 키웠다. 하루는 친구가 황소 뿔에 맞아서 다쳤다"라며 "밥을 식판에 주면 말을 안 한다. 짬밥 통이라는 데 넣어서 주고 그걸 안 먹으면 때린다고 했다"라고 증언했다. 또한 상분 씨는 "많이 맞았고 무서웠다. 그리고 수면제도 먹였다. 일어나려고 하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시설에서는 자살한 이들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두 사람은 자신의 삶을 위해 시설을 나왔고 자립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꿈도 생겼다. 상분 씨는 시를 쓰는 게 좋았고, 정우 씨는 노래하는 게 좋았다. 노래자랑에도 나갔던 정우 씨는 "행복하다. 내가 노래를 하면 신나게 손뼉 쳐주고 호응을 해줬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시설 밖은 녹록지 않았다. 정우 씨는 "용산역 뒷골목을 걸어가고 있는데 남학생 셋이 날 불러서 나한테 안 좋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체험홈으로 왔다"라고 두려웠던 날을 떠올렸다. 이에 당시 체험홈 관계자는 "그 일이 있고 정우 씨가 다시 장애인 시설로 돌아가겠다고 말을 하더라"라고 말을 해 그의 두려움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게 했다.

두 사람의 주변 사람들은 "밖에만 나가도 시선이 좋지 않다. 불쌍하다는 시선이다"라며 "한 번은 지하철에 서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상분 씨한테 넌 바보라며 심한 욕을 했다. 이에 상분 씨가 '저는 장애인입니다. 바보가 아닙니다'라고 분명히 얘기했다더라"라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두 사람은 현재 각각 복지기관에서 일하며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이에 상분 씨는 "시설에서는 모두 원생으로 불렸다. 그런데 나는 밖에 나왔어.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면서 이상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라며 이제는 직접 결정한 하루를 살아갔다.

시설을 나오자마자 축구 동호회를 찾은 정우 씨는 장애가 없는 이들과 처음으로 어울리기 시작했다. 상분 씨는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 구슬 공예를 배우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두 사람은 생애 처음 1박 2일 강릉으로 자유여행을 떠났다. 이들은 보호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서른이 넘도록 혼자서 해본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도전을 하기로 했다. 낯선 곳이라 더 힘들고 서툴지만 이들은 두 사람만의 여행을 이어갔다.

길을 잃기도 하고 도움도 받으며 그렇게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무사히 둘만의 추억을 쌓았다.

이에 부부는 여행 중 커피의 쓴맛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두 사람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는 시설에서 나와서 자립을 준비해서 잘살고 있다. 그래서 시설에 있는 모든 장애인 분들이 시설 밖으로 나와서 자유롭게 잘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작은 소망을 전했다.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수없이 물어물어 찾아가야 할 긴 여정이다. 그 여정에 주변 이들이 한 발 더 다가가서 한 마디 더 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 이 세상에 혼자 힘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조금 이해하고 도와주면 충분히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SBS funE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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