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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0%에도 가는 차·3%에도 서는 차…헷갈리는 전기차 배터리 표시

[취재파일] 0%에도 가는 차·3%에도 서는 차…헷갈리는 전기차 배터리 표시
A 씨는 전기차 차주입니다. 업무 탓에 차를 자주 몹니다. 추운 겨울, 하루는 회사까지 차를 몰고 왔더니 주행 가능 거리가 20여 km밖에 남지 않은 걸 확인했습니다. '미리 충전해 둘걸.' 하는 생각에 아차 싶었지만 아직 여유가 있어 가까운 충전소를 검색했습니다.

충전소까지는 7km. 충분하겠다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충전소를 목전에 두고 언덕을 오르던 차가 갑자기 뒤로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계기판은 아직 9km 더 갈 수 있다고 알려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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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왜 안 나가나 싶어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았습니다. 그래도 차는 밀렸습니다. 뒤따르던 동료 차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핸들을 꺾어 벽을 들이받았습니다.

● 제조사 "전기차, 내연기관차와 달라…운전 능숙했어야"

제조사는 전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낮아질 때 출력이 낮아지도록 설정하는 건 전기차의 특성이라고 설명합니다. 운전자가 사고 때 당황하지 않고 브레이크를 밟았거나 능숙한 운전으로 뒤따르던 차를 옆으로 피했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얘기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마 비슷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한 뒤 '전기차는 이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구나.' 알게 된 운전자들도 있었을 듯합니다.

하지만 A 씨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운전 경력 20년이었지만 능숙하지는 못했고, 전기차는 처음이었습니다.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 차가 뒤로 밀리면, 당황해서 머릿속이 하얘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배터리가 그렇게 낮아질 때까지 둔 적이 거의 없어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고 A 씨는 설명했습니다.
전기차 피해
● 다른 제조사들은 어떨까?

다른 전기차들도 같은 조건일까 싶었습니다. 여기저기 물었습니다. 전기차는 원래 그렇다고 말하기 전에 이런 운전자들을 배려하는 장치를 마련해둔 제조사들도 있었습니다.

BMW 전기차 계기판은 보이는 그대로 믿어도 문제가 안 생깁니다. 전체 배터리 전력에서 15% 정도를 따로 떼어 두고 운전자에게는 표시하지 않습니다. 나머지 85% 정도의 전력을 전체 전력으로 계산해 그중 얼마가 남았는지를 운전자에게 알립니다.

때문에 계기판에 배터리가 0% 남았다고 표시되더라도 실제로는 15% 정도의 전력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배터리 0%가 되면 운전자는 차를 세우게 될 테지만, 그래도 얼마 간은 더 달릴 수 있다는 게 제조사 설명입니다. 배터리 잔량 표시를 그대로 믿고 달려도 갑자기 서는 일은 안 생기게 됩니다.

닛산과 르노 삼성 전기차는 배터리가 5% 아래로 내려가면 주행 가능 거리가 아예 표시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으니, 차를 세우고 충전하게끔 유도합니다.

이런 제조사들은 전기차 특성을 잘 모르는 운전자도 불편을 겪지 않게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전기차 주행거리 표시가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고 저전력 때 차가 가다 설 수 있다고 해도, 불필요한 오해와 불편을 없앨 방법이 없지는 않은 듯합니다.
주행 거리 남았는데 서버린 전기차 사고
● 늘어나는 전기차…차량 특성에 맞는 시스템 갖춰져야

국토부에 따르면 전기차가 우리나라에 보급되기 시작한 건 2010년부터입니다. 2015년 5천712대였던 자동차 등록 대수는 매해 2배씩 늘다가 지난해 5만 5천756대가 됐습니다.

비싼 전기차의 보급이 이렇게 가파르게 느는 데는 보조금 역할이 큽니다. 지자체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구입 시 1천만 원 이상 보조받을 수 있습니다. 값싼 유지비도 장점입니다. 배터리 충전 비용은 내연기관차 기름값의 20%도 안 된다는 것이 전기차 차주들의 공통된 경험담입니다. 전기차 차주들은 보조금이 줄어드는 추세라 지금이 살 '타이밍'인 데다 오래 탈수록 '가성비'를 챙길 수 있다고도 덧붙입니다.

전기차의 이런 장점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소비층은 넓어지고 있습니다. 차에 관심이 많고 차를 잘 알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게도 내연기관차의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만 타던 차에서 누구나 사봄 직한 차로 확산되는 단계입니다.

A 씨의 사례를 다시 생각합니다. 전기차는 원래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텐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갈 수 없는 차가 더 갈 수 있다고 잘못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A 씨 같은 사람도 사고를 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더 먼저 듭니다.

정부는 올해도 4만 대 이상의 전기차를 보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전기차가 더 많이 보급되려면 A 씨 같은 사람들도 불편 없이 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할 겁니다. 헷갈리는 배터리 표시 특성에 대해 상세히 알리거나, 아예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 [8뉴스 리포트] 더 달릴 수 있다더니 '끼익'…갑자기 멈춘 전기차에 사고 (201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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