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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 - 영덕 블루로드 B코스를 걷다 ③

[라이프]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 - 영덕 블루로드 B코스를 걷다 ③
▲ 가야 할 길은 바다를 에둘러 이어져 있다.

● 나의 머리는 발과 함께 움직이고,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잘 있거라, 도시여, 왕궁이여,
야망, 허영, 사랑 그리고 1년 전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온갖 야심 찬 모험에 대한 희망이여 잘 있거라.
이제 나는 탈출구를 찾아 나의 친구와 함께,
짐은 가볍지만 환희로 충만한 가슴을 안고 떠나노라.
화려한 계획을 포기한 채
오로지 여행의 행복만을 만끽하기 위해 길을 떠나노라."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길을 떠나는 누군가의 출사표다. 어쩌면 출사표라기보다 동물원을 박차고 정글로 나서는 사나운 맹수의 포효와도 닮아 있다.

그는 오랜 방랑 생활 끝에 어렵사리 정착을 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길에서 만난 방랑자를 따라 길을 나선 참이다. 안정적인 직업과 안락한 삶을 가차 없이 던져버리고, 뻔히 보이는 성공에 대한 희망과 기대마저도 포기한 채로 주저 없이 떠나기로 결심을 한 그는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에밀>과 <사회계약론>의 저자인 루소가 바로 그다.

루소의 첫 여행은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루소는 한니발이 거쳤던 길을 따라 산을 넘은 경험은 또래의 젊은이가 할 수 없었던 영광스러운 경험이었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루소로 하여금 평생 방랑자의 삶을 살게 한다.
길을 걸은 이들의 흔적들이 리본으로 매달려 있다.
그에게 있어 여행은 '어딘가에 이르기 위한 여행'이 아닌, 오로지 떠나는 기쁨, 즉 여행 자체가 목적인 그야말로 '여행을 위한 여행'이었다고 고백한다. 요즘 말로 '노매드(nomad)'의 전형이었던 셈이다.

그런 루소가 선택한 여행 방법은 도보여행.

루소는 도보여행 예찬론자였다. 그에게 있어 도보여행은 언제든 원할 때 출발했다가 원하는 곳에서 멈출 수 있고, 눈길을 유혹하는 모든 것을 바라보거나 구경할 수 있으며, 원할 땐 언제든 멈춰 서 관찰할 수도 있는 탐험의 방법이기도 했던 것이다.

강을 만나면 강을 따라 걷고, 숲을 만나면 숲이 건네는 이야기를 듣고, 또 그늘 아래서는 쉬기도 하고, 어쩌다 마을과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기도 했었다. 그러니 루소에게 도보여행은 단순히 여행을 넘어 '생생한' 문화체험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루소의 이러한 방랑적 삶은 귀족과 유명한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뿐 아니라, 농부나 상인, 여성 등 일반 기층 민중들과도 스스럼없이 함께 지내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당시로서는 급진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그의 사상과 철학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직접 눈으로 '보는' 능력은 '읽는' 능력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루소는 말한다.
그런 이유로, 루소는 책을 통한 문화 체험을 거부하고 직접 경험, 즉 '생생한' 문화 체험의 가치를 옹호한다. 직접 눈으로 '보는' 능력은 '읽는' 능력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던 것이다. 루소의 이런 노력 덕분으로, 1800년대,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보는' 교육으로서의 여행이 중요한 교육과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루소는 걷기야말로 사색과 성찰을 위한 진정한 기회였다고 말한다. "감히 말하지만 혼자 걸어서 여행할 때를 제외하고는 많이 생각해본 적도 없고, 열심히 살아본 적도 없으며, 스스로 존재한 적도, 나 자신을 넘어선 무엇이 되어본 적도 없다."고 그는 술회한다.

"나의 머리는 발과 함께 움직이고,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라는 루소에게서 우리는 또 걸어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된다.
길과 잇닿아 있는 바다는 하얀 포말로 부서지며 걷는 그들에게 굳이 아는 체를 한다.
● 영덕에는 대게가 산다.

길은 아직도 멀다. 그 길과 잇닿아 있는 바다는 하얀 포말로 부서지며 걷는 그들에게 굳이 아는 체를 하느라 저 홀로 분주하다.

파도와 더불어 길을 걷노라면, 이 길의 이름을 하필이면 블루로드, '파란 길'이라고 지은 이유를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된다. 하늘을 봐도, 그 하늘을 닮은 바다를 봐도 온통 쪽빛 푸르름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푸르름이 짙고 또 짙어 무서움마저 들 지경이니, 파란 길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길은 파랗다 못해 시퍼런 바다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도 길은 멀기만 하다.
길을 따라 걷노라면, 오랜 세월 세찬 파도가 두들기고 마름질해 깎아놓은 기암괴석들이 바다와 어우러지고, 그 어울림은 그대로 멈춰 서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열리는 듯 숨이 저절로 막히는 절경이 된다. 그렇게 해안절벽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가노라면 어디선가 숨어 있던 야트막한 마을과 포구가 행인을 맞는다. 포구의 바다는 은빛 물비늘인 윤슬이 살랑대며 반짝이다가 또 아롱댄다.

길은 경정마을을 지나고, 뒤이어 대게 원조마을을 지나고, 차유 어촌체험마을까지 지나고 나면 죽도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인 말미산 '해안초소길'로 접어든다. 길 곳곳에 해안 초소가 여럿이다.
영덕대게 상징물
영덕의 대표 등대인 창포말등대를 떠받치고 있는 것도 대게다.
영덕은 대게의 고장이다. 오죽했으면 대게라는 보통명사 앞에 영덕이라는 지명이 붙어 영덕대게라는 고유명사가 되었겠는가. 영덕의 많은 상징물을 장식하는 캐릭터 역시 대게 일색이다. 영덕은 대게가 고장의 대표 선수이면서 그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덕에서는 대게 모양의 구조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영덕의 대표 등대인 창포말등대를 떠받치고 있는 것도 대게다.

그 유명한 대게의 고장에 왔지만, 아쉽게도 대게를 맛보지는 못했다. 이미 귀한 몸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지라, 그저 점심 식사를 위해 들른 식당 앞 어항에서 겨우 일면식만 나눌 수 있었다. 어항의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가수 신형원이 부른 노래 <유리벽>의 가사마냥 '내가 너의 손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었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나를 슬프게 하였'었다.

껌벅거리는 두 눈을 외면하고 돌아서 입맛만 다시는 나 역시 못할 짓이었지만, 어쩌랴. 실은 느긋하게 앉아 식사를 할 처지도 아니었지만, 생활인의 현실(?)이 그렇게 녹록지 않은 것임을... 여하튼, 그 덕에 나와 일면식을 나눈 대게는 얼마간이나마 더 생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마저도 보시라면 보시일 것이다.
- 영덕 블루로드 40
사지를 축 늘어뜨린 채 건조대 위에서 햇살을 쬐며 말라가는 오징어들이 서러우면서도 처연했다.
다만, 죽도산을 바라보며 걸어가던 도중에 만난 오징어들이야 마음만 먹으면 일면식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저 오징어들의 긴 행렬이 이루는 장관에 놀라울 따름이다. 사지를 축 늘어뜨린 채 건조대 위에서 햇살을 쬐며 말라가는 그들이 서러우면서도 처연했다. 어디선가 레퀴엠이 흘러나와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날은 왜 그렇게 맑고, 또 따스했던지...

경상도 사투리로 이처럼 반쯤 건조된 오징어를 '피데기'라고 부른다. 그들의 최종적인 운명이야 피데기로 끝날지, 아니면 마른오징어가 될 것인지를 알 수야 없지만, 오래지 않아 어느 시장 좌판에서 그들과 또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블루로드 다리 너머에 죽도산이 있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죽도산이 어느새 코앞이다. 죽도산을 가기 위해서는 '블루로드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다리는 흔들흔들 제 맘대로다. 장난기가 발동한 어떤 젊은 친구들은 제 딴에는 재미있으라고 다리의 난간을 붙잡고 흔든다. 그 덕에 다리 위의 사람들은 놀라 혼비백산이다. 문득 많은 사람들이 건너는 다리 위에서 예고 없는 장난은 자칫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건너시는 걸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시공을 한 건설 주체는 나름의 생각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위험해 보인다. 그리고 이곳에 흔들다리가 있어야 할 이유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블루로드 다리를 건너자, 왁자지껄하다.

영덕의 대표적인 관광지답게 많은 관광객들로 분주하다. 특히나 더욱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곳은 리어카를 개조한 수산물 쇼핑센터(?) 앞이다. 이 지역에서 나는 해산물이며, 여러 특산물들이 리어카 위 좌판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일부는 리어카 옆에도 세워져 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그런데 저건 뭐지?
- 영덕 블루로드 42
말린 물가자미가 오밀조밀하다.
말린 생선 수십 마리가 서로 어깨를 포갠 채로 신문지 크기의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마분지처럼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이거... 처음 보는 물건이다. 흥정에 바쁜 주인장에게 물어본즉슨, 물가자미라고 한다. 호기심이 생긴다. 가격도 만원 남짓이라 부담도 덜하고 한 꾸러미 사서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하지만, 어쩌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도보여행하는 신세이고 보니 이 물건을 어떻게 간수하고 다닌단 말인가.

영덕 하면 대게이거니 했는데, 의외로 물가자미도 이곳의 내로라하는 특산물이라고 한다. 작고 부드러운 놈인지라 뼈째 먹는 물가자미회는 이 지역에서나 맛볼 수 있는 일미라고 한다. 아쉽게도 물가자미는 4월에서 6월 사이가 가장 맛있는 때라고 한다. 2월의 지금은 말린 물가자미를 취향 따라 요리해 먹는 것 말고는 달리 접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죽도산은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섬이었다고 한다.
● 죽도산은 섬이었다.

물가자미와 작별을 고하고 돌아서자, 길은 죽도산(竹島山)을 오르라 한다. 죽도산은 초입부터 그 이름에 걸맞게 시누대라 불리는 작은 대나무가 도보여행자를 맞는다.

죽도산은 지금이야 섬이라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죽도(竹島)라는 이름의 섬이었다고 한다. 섬이 드문 동해이니만큼 나름 의미 있는 섬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의 필요에 의해 육지와 연결되었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더구나 고려 말에는 이곳이 왜구들의 소굴이었다니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이곳 죽도는 일본 사람들에 의해 적잖이 상처를 받은 곳이었던 것이다. 섬이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전략적 필요에 의해 죽도는 일본에 의해 유린되고, 동해에서는 드문 섬이라는 지위까지 잃게 된 것이다. 죽도가 섬이었다면,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축산항에서 바라본 죽도산
저 멀리 풍력단지의 풍차들이 맴을 돌고 있다.
죽도산의 정상은 고작(?) 해발 80m밖에 되지 않지만, 가는 길은 의외로 고되다. '그까이꺼!'를 외치던 사람들조차도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그래도 올라보면 안다. 왜 이곳을 올라야 하는지를... 정상 전망대에 서면 정면으로는 한없이 펼쳐진 동해 바다가 푸른빛으로 넘실대고, 서쪽으로는 말미산이, 그 옆으로는 축산항이 가만히 엎디어 있으며, 남쪽 끝에는 풍력단지의 풍차들이 맴을 돌고 있다.

● 내 행동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 자유다

멀리 바다를 바라본다. 깊은 심연의 바다를.... 어쩌면 우수가 깃들어 있는 듯도 보이고, 저 망망대해의 건너 어디쯤에는 노스탤지어가 숨어 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 이제 이 바다 앞에서 오늘의 여정은 끝이 난다.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노라니 문득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내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 준단 말인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 또한 여럿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규정하는 대로 살아, 그렇게 성공이라는 것을 쟁취하는 삶이 스스로를 위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작 내가 하고팠던 그 무엇을 하며 넉넉하지는 않을지라도 조금은 더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인지... 선택의 각자의 몫이다.
내 행동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유다.
나 역시 어느 것이 나은 삶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나의 경우는 막연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내가 나를 위해 사는 삶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만 할 뿐이다. 그 짐작의 실현이 비록 초라할지 모르지만,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내 행동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유이자, 정작 바라던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또 짐작만 할 뿐이다.

아마도 내가 나를 위해 사는 삶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내 안'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노스탤지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세계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힘 안에서, 내 힘으로만 찾아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도산 정상에서 바라본 축산항
이어령 선생은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답고도 슬픈 것이고, 그것은 하나의 부조리'라고 했었다. 희망과 절망, 권태와 기대가 교차하는... 기다림.

해원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수한 그리움과 그 그리움이 잉태하는 기다림을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그 속에는 나를 위한 삶도, 그리운 사람도 더불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또, 삶을 기다린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답고도 슬픈 것이고, 그것은 하나의 부조리다.
● 가는 길

- 자가용
해맞이공원이나 풍력발전단지 내에 주차 가능.
축산항에서 해맞이공원으로 돌아오는 방법은 농어촌버스 이용, 오보 해수욕장이나 대탄항 하차

● 먹거리

영덕대게는 12~5월이 제철. 6~11월은 금어기이므로 냉동 대게를 먹을 수 있음. 여름 별미를 찾는다면 물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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