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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다문화 정책 : 순수(純粹)로부터의 해방

대한민국과 난민, 솔루션 저널리즘 ⑤편

저널리즘의 본령은 감시와 비판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친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무관심과 냉소를 불러 민주주의를 되레 침식시킬 수 있습니다. 비판을 넘어 대안을 찾는 '솔루션 저널리즘'은 이 지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언론이 흔히 즐겨 쓰는 '법 개정', '처벌 강화', '지원 확대' 같은 표제어가 꼭 솔루션일 필요는 없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의 핵심은 정확한 현실 인식과 변화를 위한 상상력입니다. 데이터를 통해 상상력을 동원하고 여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을 기록하는 일련의 작업이 그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면에서 솔루션 저널리즘과 데이터 저널리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데이터 없이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고, 적확한 솔루션도 어렵습니다. 솔루션에는 데이터의 조력이 필요합니다.

언제부턴가 솔루션 저널리즘에 기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솔루션이 어려운 주제로 모험을 해보려고 합니다. 예멘 난민 논란으로 촉발된 이방인에 대한 혐오 문제입니다. 워낙 반감이 거세 기자로서 꽤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난민 문제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해법이 무엇인지 곱씹어보려 합니다. 솔루션의 밑천은 데이터에 있는 만큼, 데이터 분석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① 난민의 사회학 : 낯선 자에 대한 공포
② 98년생 김철수 : 블루칼라의 반란
③ 게이와 이방인 : 관용의 경제학
④ 이방인의 변호권 : 이자스민의 추억
⑤ 순수(純粹)로부터의 해방

서울 이태원 거리의 모습
● 소통이 반감을 줄인다

하버드대 정치심리학자 라이언 에노스의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아직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에노스는 미국 사회에서 불법 이민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는 히스패닉에 대한 백인들의 인식 변화를 실험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먼저, 미국 보스턴 외곽에 살면서 히스패닉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백인 그룹을 섭외했습니다. 실험의 객관성을 위해 표본으로 삼은 백인 그룹의 경제 수준과 정치 성향, 출근 습관 등을 구체적으로 조사했습니다. 불법 이민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그룹이 실험에 참여하게 했고,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규정한 사람은 실험에서 배제시켰습니다. 아무래도 보수주의자들은 시작부터 히스패닉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후 멕시코 출신 히스패닉 2명을 통근 열차에 2주 동안 동승시켰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히스패닉은 평범한 의상을 입었고, 기차 안에서 그냥 서 있게 했습니다. 간간히 서로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건 허용했습니다.

2주 후, 실험에 참가한 백인들에게 생각이 변했는지 물었습니다. 생각은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이들은 불법 이민자 문제는 심각하다며, 미국 정부가 멕시코 이민자 수를 줄여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불법 체류 이민자를 합법화시키는 데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고, 스페인어에 대한 반감도 커졌습니다. 온건한 입장을 보였던 백인들조차, 단 몇 분간 히스패닉과 동승한 것만으로도 관용적인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결과였습니다.

실험에 대한 의미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유명한 신경 정신학자인 로버트 새폴스키가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했던 평가로 갈음하겠습니다. 국내에는 '스트레스'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실험 결과는 매우 놀랍다. (실험에 참여한) 교외 통근자들은 이민의 경제적 효과나 이민을 주제로 한 열띤 토론에 참여한 뒤 생각을 달리한 게 아니었다. 실험은 단순히 주어진 사회 환경 속에서 생각이 부드럽게 변했다는 걸 보여준다. '미국'과 '그들'을 대비시키는 무의식의 힘. 솔직히 매우 우울한 결과다.
- 월스트리트 저널, 로버트 새폴스키 <An Experiment Shows Bias Against Strangers on a Train>, 2014년 8월 7일 자

실험에 참여한 백인들은 논리적 이유 때문에 생각을 바꾼 게 아니었습니다. 불법 이민자들 때문에 우리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연설을 들은 것도, 그들 때문에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는 실증적 통계를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이미지가 자신들의 눈에 구체화되면서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우리와 '다른' 인종이, 우리와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그런 불편함은 자연히 "우리와 그들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란 의구심, 나아가 공포를 낳았고, 멕시코 이민자를 줄여야 하며 불법 체류 이민자를 합법화시키는 데 반대하는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사회가 예멘 난민을 처음으로 맞닥뜨렸을 때의 공포와 상당한 유사성이 있어 보입니다.
[취재파일] 다문화 정책 : 순수(純粹)로부터의 해방
하지만, 이 실험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실험의 결론은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에노스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이방인과의 접촉이 불편함을 낳는다"가 아니라 "이방인과의 접촉이 처음엔 불편하더라도, 계속되면 불편함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에노스는 히스패닉과 3일간 접촉한 사람과 10일간 접촉했던 백인들의 차이를 다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히스패닉과 3일간 동승했던 사람은 이민에 대한 반감이 가장 컸지만, 10일 동안 접촉한 사람은 그 정도가 약해졌습니다. 즉, 이런 접촉이 계속 반복된다면 히스패닉 이민자에 대한 생각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가정도 가능했습니다. 에노스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히스패닉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거나 소통을 하게 된다면, 애당초 가졌던 그들에 대한 적개심, 상대를 기피하려는 충동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는 이민자들을 포섭하는 공공 정책 입안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사회 내부의 결속을 위한 목적을 위해서는 상호 소통과 친근함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 라이언 에노스 등 <The Causal Effect of Prolonged Intergroup Contact on Exclusionary Attitudes: A Test Using Public Transportation in Homogenous Communities 1>, 미국 국립 과학아카데미, 2014년, 32쪽

에노스의 실험은 비록 우리가 싫어하는 대상이라도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접촉한다면 그 반감이 사그라질 수 있음을, 결국 국가의 정책이 이런 방향으로 잡혀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의 다문화 정책

에노스가 제안한 '소통과 친근함'을 높이는 정책은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가 큽니다. 한국 역시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면서 다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졌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정부도 꽤 적극적인 다문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정책은 예산입니다. 과연 정부가 올해 다문화 예산을 어떻게 배정해놨는지 알아봤습니다. 다문화 정책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를 비롯해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2019년도 다문화 정책 예산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봤습니다. 연초라 세부사업별 예산 편성은 여전히 진행 중이란 점을 부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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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여성가족부의 '다문화 가족 지원' 예산입니다. 481억 원이 배정됐습니다. 말 그대로 다문화 가족들이 우리 사회에 빨리 적응할 수 있게 사회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는 취지입니다.

교육부 다문화 예산은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67.5억 원이 배정된 대학생 멘토링 사업은 대학생과 다문화 학생을 1:1로 연결해 다문화 학생의 기초학습과 학교적응을 지원해주는 겁니다. 대학생에게는 근로 장학금을 지급합니다. 다문화 정책학교, 교육센터 역시 다문화 학생을 도와주는 기관입니다. 기본적인 교육과 함께 한국어 학급이 운영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가운데는 이주민들의 모임을 지원해주는 게 22억 원이 잡혀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 내실화 예산도 5.5억 원이 배정됐습니다.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상황 속에서 다문화 가정을 위한 지원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예산 대부분이 '지원'에 몰려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의 예산 이름도 '다문화 가족 지원' 예산, 이들이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돈입니다. 이들이 한국어 교육을 받고, 우리 문화를 배우는 데 대부분의 예산을 쓰고 있다는 겁니다.

즉, 정부의 2019년도 다문화 예산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온연히 한국인으로 만들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어를 잘 배우게 할지,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의 엄마와 아빠, 대한민국의 며느리와 사위로 만들지에 관련된 예산입니다.
[취재파일] 다문화 정책 : 순수(純粹)로부터의 해방
지난해 예멘 난민 사태는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쏟아부었던 수많은 예산이 무용지물이 됐다는 걸 방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과 어떻게 살아가는지 배운 적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와 이방인의 공존을 고민한 예산은, 그나마 문체부의 '문화시설 다문화 프로그램' 4.2억 원 정도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다른 나라 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인 '다문화 꾸러미' 운영비용입니다. 이걸 제외하면 다문화 예산은 외국인 출신들, 더 정확히는, 가난한 외국인 출신 이방인을 조력해주는 사실상의 '복지' 예산에 가깝습니다. 외국 나가서 외화 많이 벌어오는 게 애국이라고 독려하는 우리 사회에서, '공존'에 대한 투자가 이토록 부실하다는 건 의아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의 다문화 정책은 '복지' 그 이상의 지점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방인과의 공존과 소통을 학습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이런 철학이 이방인에 대한 반감과 공포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솔루션일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여성가족부보다는 교육부와 문체부가 중심에 서서 다문화 정책 예산을 짜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 순수(純粹)로부터의 해방

최근 미국 이민을 준비하는 한 포털사이트 카페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이민을 고려하고 있는데 인종 차별이 걱정이다."

산호세에서 살고 있다는 한 이민자가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인종차별이 덜한 곳이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국인들은 이곳에서도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을 차별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례를 일반화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방인과 공존하고 학습할 기회가 여실히 부족했으며, 국가가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다는 걸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이방인이 익숙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그들에 대한 공포에 쉽게 노출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제 정부의 시선은, 이방인에 대한 지원 그 이상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방인과의 공존에 미숙했던 토박이, 우리 자신에게 돌려야 합니다.
난민 반대 (사진=연합뉴스)
이방인에 대한 반감은 불과 2~3년 새 빠른 속도로 누증됐습니다. 지난해 제주 예멘 난민 사태는 그런 반감이 얼마나 극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기자의 미천한 혜안으로는 그 감정이 일시적 이상치는 아니라고 진단합니다. 어쩌면 우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만큼 그 위력이 클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른 이데올로기가 소홀했던 관용을 선점함으로써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타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관용을 침식한다는 건 우리 민주주의의 축이 흔들릴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실제 미국과 유럽은 이런 반감이 제도화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독일의 대안당(AfD) 등은 이런 반감에 편승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이곳의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위기론'은 세계적으로 꽤 중요한 담론이 됐지만, 우리 사회는 상대적으로 이런 고민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 문제에 비판적인 학계나 언론 역시, 이방인 혐오 문제를 '이상 현상' 정도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이방인에 대한 반감의 문제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민주주의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에 앞서 대비가 필요합니다.

단일 민족국가인 우리에게 민족적 동질성과 순수성은 익숙한 말입니다. 이제 이런 표현에서 자유로워져야 함을 깨닫습니다.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수성과 순수하지 않은 것을 인정해 선뜻 내 것으로 만드는 대담함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이 인구절벽에 시름하고 있다면, 또한 청년들에게 해외 취업을 독려하고 있다면, 그래서 우리가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면, 역으로 우리 역시 이방인을 선뜻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부는 정책의 전제부터 고민해봐야 합니다.

<혐오사회>의 저자인 독일의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의 '순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찬미'로 연재로 갈음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순수하지 않은 것과 다른 것을 옹호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순수함과 단순함의 페티시즘에 사로잡힌 증오하는 자와 광신주의자가 가장 거슬려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순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옹호는 공허한 약속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다원적이어야 한다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포용적 공존에 필요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투자에도 진지하게 나서야 한다.
- 카롤린 엠케, <혐오사회>, 정지인 옮김, 다산초당, 2017년, 219쪽.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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