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김용균 씨 외에 33명이 더 있었다"…하청 사망자 34명, 원청 0명
기계음만이 들렸을 텅 빈 새벽 공장에서 김 씨는 홀로 외롭게 숨졌습니다. 그랬던 김 씨의 마지막 가는 길에 뒤늦게나마 여러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빈소로 이어지는 장례식장 복도에는 정부 관계자와 정치권 인사들이 보내온 화환도 빼곡합니다.
이제 남은 건 '과거로부터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입니다. SBS는 김 씨의 안타까운 사고를 계기로 다른 하청 노동자들의 과거 사망 사고를 되짚어 보는 뉴스를 그제(6일) 보도했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좌진의 도움을 받아 김 씨가 숨진 서부발전을 비롯한 각 기관을 대상으로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해보니 놀라웠습니다. 5년 동안 숨진 발전소 근로자 34명 가운데 하청업체 소속은 34명. 원청업체 소속 지원 가운데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5년간 숨진 발전소 사망자가 전부 하청업체 소속이었던 겁니다.
482건의 사고 가운데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 내역 34건을 하나씩 살펴봤습니다. '해체 공사 도중에 미고정된 작업 발판이 뒤집히면서 떨어져 사망', '구명줄 설치작업 중 추락', '현장 점검 중 VBF 롤러와 빔 사이 협착 사망' 등 고 김용균 씨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김 씨가 숨진 발전소를 운영하는 서부발전에서 일어난 사고 중에는 지난 2014년 일어난 '공사 도중 생수로 오인한 유독물 음용으로 인한 사망 사고'도 있었습니다. 겨울철 냉각수가 얼지 않도록 넣는 화학물 액체인 부동제를 물인 줄 알고 잘못 마셔 숨진 사고입니다. 부동제를 생수로 착각할 정도로 혼잡한 작업 현장이었다는 반증입니다. 황당하고도 안타까운 사고입니다.
몇 글자의 활자로 사고 당시 정황을 모두 알기는 불가능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사고 사례가 눈에 띄었습니다. 34건 사망 사고 가운데 한 사고의 내용이 상세히 담긴 이 자료의 이름은 '재해조사 의견서'입니다. 산업재해 예방을 목적으로 안전시설을 관리 감독하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 2017년 11월 조사를 벌여 만든 일종의 사망 사고 경위 보고서입니다. 숨진 이는 당시 44살이었던 정비 노동자 정 모 씨. 김용균 씨가 숨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김 씨 사고가 일어나기 약 1년 전 숨진 하청 노동자입니다. 정확히는 서부발전의 하청업체 A가 재하청을 준 B업체 소속 직원입니다. 하청에 또 그 아래 하청 소속인 겁니다.
● 점심시간에 쫓기듯 찾아든 참변…"발전소 측은 119도 부르지 않았다"
관리 감독관도 없던 점심시간에 왜 정 씨가 무리해서 작업을 해야 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립니다. 재해조사 의견서에는 "50톤짜리 지상 크레인이 오후 2시에 다른 장소로 이동할 예정이었던 이유가 고려됐던 걸로 판단된다"고 적시돼있습니다. 즉 다음 작업까지 시간이 빠듯해 정 씨가 쫓기든 점심시간에 일을 했다는 겁니다. 서부발전 측은 SBS와 통화에서 "근로자들에게 점심시간에 무리하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정 씨가 숨졌을 때가 점심시간이라 관리 감독관이 자리를 비운 것도 문제없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사고 당시 발전소에서 근무했던 근로자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원청업체가 일을 시키지 않으면 하청 업체 근로자들이 그렇게까지 나서서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작업 기한을 설정하고 진행 속도를 관리하는 건 모두 원청업체라는 겁니다. 정 씨가 점심시간에 작업을 한 게 본인의 자율적인 결정일 리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숨진 정 씨 역시 입사 한 달이 안 된 상태였습니다. 재해조사 의견서에는 정 씨가 위험 상황에 대한 사전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정 씨가 숨진 직후 119 신고가 없었다는 동료 근로자의 증언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 직후 정 씨를 당시 발전소 내에 있던 차량에 태워 병원으로 옮겼지만 구급차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동 중에 응급조치를 받지 못했고 결국 사망을 막지 못했다는 주장입니다. 서부발전 측은 이에 대해 당시 119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근처 병원까지 거리가 멀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내부에 응급 요원을 배치해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 하청 노동자 '죽음의 외주화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정 씨가 숨진 뒤 약 1년 뒤 고 김용균 씨는 불과 2시간에 불과한 반쪽짜리 안전교육만 받고 일하다 숨졌습니다. 관리 감독관도 없는 상태에서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사망 4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김 씨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1년 전 정 씨가 숨졌을 때 지적됐던 문제점들이 해결됐더라면 어땠을까요. 정 씨 사고가 일어난 2017년 고용노동부는 1년 동안 5차례나 안전점검을 벌였습니다. 정 씨 사망사고 직후에는 사흘 동안 특별안전감독도 진행했습니다. 모두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대책은 허울뿐이었고 실행은 전무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러 김용균 씨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고 가족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아픔을 겪게 됐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은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발전소 예열기 안에서 숨진 44살 정 모 씨와 컨베이어 벨트에서 숨진 24살 김용균 씨 사고가 근로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밀알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 직후 투쟁을 벌여 온 발전비정규직연대회 이태성 간사는 "발전소에 있는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의 외주화'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1년 뒤에 고 김용균 님과 같은 사건이 다시 재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SBS와 인터뷰에서 회고했습니다. 정 씨가 숨졌을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 근로자도 사고 당일의 참담함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만을 그저 바랄 뿐입니다.
(사진=SBS 8뉴스 캡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