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軍 해작헬기사업 원점으로…美 공문 한통에 중단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9.01.20 10: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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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록히드마틴의 해상작전헬기 MH-60R '시호크'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돼 협상이 개시됐어야 했습니다.
두 차례의 공개경쟁입찰이 모두 유찰돼 유일하게 응찰했던 한 업체를 대상으로 수의계약 검토 단계로 접어든 때가 작년 11월이었으니 두 달이 지난 현재 시점에는 본협상이 시작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방사청은 돌연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을 중단했고 원점 재검토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가격이 안 맞는다며 '사업 불참'을 공식 통보했던 미국 측이 2번째 유찰이 되는 순간에 맞춰 FMS(해외무기판매) 방식으로 록히드마틴의 MH-60R 기종을 판매하겠다는 공문(P&A·Price and Availability)을 보낸 뒤 생긴 일입니다. 방사청은 유일하게 공개경쟁입찰에 참여했던 유럽 레오나르도의 AW-159, 일명 와일드 캣의 수의계약을 검토하는 수순이었는데 미국 정부의 공문 한 통에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는 2차 해상작전헬기를 국내 개발하느냐 해외 도입하느냐, 또 해외 도입한다면 상업구매방식이냐 FMS 방식이냐를 놓고 사업타당성 검토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전력화 시기는 멀찍이 연기됐습니다. 미국은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에 관심이 있었으면 당당하게 공개경쟁입찰에 참여했어야지, 밥상 다 차려놓으니까 뒤늦게 와서 상을 엎는 몽니를 부리고 있습니다. 방사청은 그런 미국을 타박하기는커녕 서둘러 새로 밥상을 차렸습니다. 해군은 헬기 없는 반쪽짜리 신형 호위함을 띄우게 생겼습니다. 비정상적입니다.
유럽 레오나르도의 해상작전 헬기 AW-159 '와일드캣'● 기막힌 타이밍의 美 공문 도착, 그리고 사업 중단

방사청은 추가로 차기 해상작전헬기 12대를 도입하는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의 1차 공고를 작년 6월 18일 게시했습니다. AW-159의 레오나르도만 응찰해서 유찰되자 방사청은 10월 31일 사업을 재공고 했습니다. 역시 레오나르도만 나왔고 11월 14일 또 유찰됐습니다.

방사청은 AW-159의 레오나르도만이 아니라 NH-90의 NH인더스트리와 MH-60R의 미국 록히드마틴에 사업 참여를 타진했었습니다. 하지만 NH인더스트리는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록히드마틴은 "MH-60R의 가격이 높아 사업비를 맞출 수 없다"며 아예 사업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NH인더스트리와 록히드마틴은 사업을 포기한 겁니다.

방위사업 관련 규정에 따라 공개경쟁입찰에 1개 업체만 참여해서 2회 유찰되면 단독 참여 업체와 수의계약을 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드의 AW-159는 기왕 1차 사업을 통해 8대가 도입됐기 때문에 2차로 12대를 들여도 후속 군수지원, 정비, 조종사 교육 등에 별도 투자가 필요 없어서 수의계약이 유력했습니다.

또 AW-159는 무장으로 LIG 넥스원의 청상어라는 국산 어뢰를 채택해서 국산무기 수요도 부가적으로 생기고 사업비 9천5백억 원의 절반에 달하는 절충교역 혜택도 챙길 수 있었습니다. 절충교역의 핵심은 해상작전헬기 기술이전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2차 사업이 두 번째로 유찰된 11월 14일 바로 그날, 기다렸다는 듯 미국 정부의 P&A 공문이 방사청으로 날아들었습니다. 록히드마틴의 MH-60R을 FMS 방식으로 도입하라며 대충의 가격과 성능을 기재한 서류입니다. FMS(해외무기판매)도 일종의 수의계약입니다. 미국이 자국 무기를 수혜적 차원으로 해외에 판매하는 대신 가격은 미국 정부가 알아서 정하는 식입니다. 절충교역은 없습니다.

록히드마틴은 공개경쟁입찰 때는 사업 불참을 선언하더니 두 번 유찰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레오나르도가 떠오르는 순간 막무가내로 들이닥쳐 "그동안 과정은 모두 무효"라고 억지 부리는 모양새입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무기 갑질을 많이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힘으로 사업 빼앗아 가겠다는 심보로 말문이 막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 방사청 "사업 중단하고 원점 재검토"

미국의 무례에 방사청은 '사업 중단 및 원점 재검토'로 화답했습니다. 방사청 핵심 관계자는 "록히드마틴이 가격을 낮춰서 P&A를 보내왔다"며 "상황이 변했으니까 원점에서 재검토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눈치 보기, 미국 무기의 검은 커넥션 작동 여부에 대해서 물었더니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해상작전헬기 전력화 지연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방사청에는 없고 소요군인 해군에서만 나오고 있습니다.

시호크라고 불리는 MH-60R이 좋은 해상작전헬기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좀 비싼 편입니다. 9천5백억 원 한도에서 12대를 도입하는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에 맞출 수 없어서 록히드마틴은 공개경쟁입찰에 아예 불참했던 겁니다. 우리 정부가 사업비를 넉넉히 책정해주면 좋으련만 여유가 없었는지 증액은 없었습니다.

또 해상작전헬기가 앉을 차기 호위함이 큰 배가 아니라서 대형 헬기인 MH-60R은 차기 호위함 이착륙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상작전헬기를 앉히기 위해 배를 뜯어고쳐야 하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후속군수지원, 정비, 조종사 교육도 새로 준비해야 합니다. 돈이 얼마가 들든 좋은 헬기 들이면 전력 강화되는 일이니 감내할 수 있지만 남의 나라 절차를 무시하는 미국의 전횡과 방사청의 저자세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노골적으로 MH-60R을 지지하며 AW-159를 공격하는, 힘센 자들이 있었습니다. 와일드 캣 즉 AW-159가 비리 헬기이기 때문에 2차 사업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와일드 캣 비리 의혹은 작년 고등법원과 대법원 판결을 거치며 부실 수사, 누명이었던 것으로 거듭 확인됐습니다. 지난 정부 방산비리 합수단의 무리한 기소로 숱한 현역 장교들이 억울한 옥살이 하며 돈도 명예도 세월도 다 잃은 뒤에야 무죄 석방됐습니다. 1차 사업을 통해 들어온 와일드 캣 8대는 해군 조종사들의 호평을 받으며 제 임무를 십분 수행하고 있습니다.

록히드마틴의 이번 작전 뒤에 숨겨진 의도가 궁금합니다. 방사청의 호응과 의사결정의 내막이 궁금합니다. 공개경쟁을 통해 좋은 무기 사고팔기 위한 선의만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미국의 끼어들기와 방사청의 사업 중단, 그리고 원점 재검토라는 유례없는 과정은 경쟁 없는 MH-60R 수의계약 시나리오의 시작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