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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친문' 정치인이 부회장, 인권보다 인맥!

[취재파일] '친문' 정치인이 부회장, 인권보다 인맥!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4년간 성폭력을 당했다는 용기 있는 폭로 이후 국내 스포츠계에서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적 분노가 폭발하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입니다. 특히 국가대표는 물론 국내 선수들의 인권을 일선에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대한체육회는 자신들의 무사안일과 무능력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거센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기흥 회장도 각종 단체로부터 사퇴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 창립 99년 만에 최대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취재파일] '친문' 정치인이 부회장, 인권보다 인맥!
그럼 한국스포츠의 총본산이라는 대한체육회는 왜 이렇게 추락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저는 선수 인권보다 '인맥 구축'에 몰두한 게 화를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어제(15일) 열린 대한체육회 이사회에는 스포츠계에서 낯선 인물이 이기흥 회장 바로 옆에 앉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현재 대한체육회 부회장 5명 가운데 1명인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 서구갑 지역위원장입니다.
[취재파일] '친문' 정치인이 부회장, 인권보다 인맥!
김교흥 씨는 지난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했지만 이후 2008년(18대), 2012년(19대), 2016년(20대) 등 모두 3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잇따라 낙선했습니다. 지난해 4월 말에는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장 후보를 결정하는 당내 경선에서 현 박남춘 인천시장(더불어민주당)에 밀려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2008년부터 10년 이상 국회의원과 광역시장 등 공직선거에서 모두 고배를 마신 것입니다.

김교흥 씨는 지방선거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 뒤 약 2달 뒤인 2018년 7월 초 대한체육회 부회장이 됩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왜 4회 연속 낙선한 김교흥 씨를 부회장에 선임했을까요?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김교흥 부회장은 생활체육 분야를 전담하기 위해 영입했다. 인천광역시 서구 생활체육 야구연합회 고문(2010~2017), 인천광역시 서구 생활체육 배드민턴연합회 자문위원(2008~2017)을 맡아 생활체육과 관련한 현장경험을 축적했고 국회의원 및 국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함으로써 구조적으로 취약한 생활체육 예산 확보에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공식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국내 체육계의 생각은 다릅니다. 대한체육회의 고위인사는 SBS와 통화에서 이렇게 속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여권에서 과거 '친 노무현계' 중진의원이었던 A 씨를 체육회 부회장으로 추천했는데 이기흥 회장이 수용하지 않아 미운털이 박혔다. 대신 이기흥 회장이 선택한 사람이 바로 김교흥 씨다. 김교흥 씨는 사실 생활체육과 인연이 많지 않지만 '친 문재인계'인 데다 실세였던 임종석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용문고등학교 선배이다. 이런 사람이 부회장으로 있으면 대한체육회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게다가 김 씨가 국회 사무총장까지 역임해 생활체육 관련 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적임자로 생각했을 것이다."

정치인 출신이라고 해서 대한체육회 부회장이 되지 말라는 규정은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더불어민주당 서구갑 지역위원장으로 출마가 확실시되는 김교흥 씨가 내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면, 즉 현직 국회의원이 되면 대한체육회 규정상 부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부회장의 임기는 4년인데 김교흥 씨는 당선되면 결국 2년도 못하고 중도에서 사퇴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한체육회는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김교흥 씨를 선임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논리대로라면 김 씨가 국회의원에 당선돼 하차하면 또 힘 있는 정치인을 새로 부회장으로 영입해야 합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생활체육 예산 확보를 위해 생활체육과 크게 관련이 없는 김교흥 씨를 영입하는데 정성을 기울인 대한체육회가 정작 가장 중요한 선수 인권에는 등한했다는 사실입니다. 2018년 대한체육회 예산 3,200억 원 가운데 선수 인권 향상 사업비는 9억1,400만 원에 불과합니다. 비율로 따지면 고작 0.29%입니다. 심석희 선수가 4년 동안 성폭력을 당하는 기간에 대한체육회 내 선수 인권 보호 책임자는 5번이나 바뀌었습니다.( ▶ [취재파일][단독] 심석희 피해 기간에 체육회 책임자 5번이나 교체). 자신들이 만든 규정을 스스로 위반해가면서 성폭력 가해자를 사면해준 것도 대한체육회입니다.

대한체육회 수장인 이기흥 회장은 조계종 중앙신도회장도 역임하며 체육계와 종교계는 물론 정계, 관계, 재계에 광범위한 인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주위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마당발'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16년 10월 통합 대한체육회 초대 회장에 당선된 이기흥 회장은 선거에 도움을 준 인사를 대거 기용해 '보은 인사', '측근 인사', '특정 종교 인사' 논란에 휘말리며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대다수 체육인들은 대한체육회와 이 회장이 자신의 '인맥 구축'에 신경 쓰는 것의 10%만 선수 인권에 힘썼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습니다. 대오각성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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