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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동남아 '대세' 된 승차 공유 업체 그랩…우리와 뭐가 다를까?

[취재파일] 동남아 '대세' 된 승차 공유 업체 그랩…우리와 뭐가 다를까?
승차 공유 서비스와 택시 업계 사이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버가 도입된 이후 미국에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워졌다며 택시 기사들이 잇따라 숨지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여러 나라에서 택시 업계와 그랩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 승차 공유, 택시의 현재와 미래에 걸친 위협

국내 택시 업계의 반발은 자연스럽습니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대가로 운임을 받는다는 서비스의 본질은 승차 공유와 택시가 똑같습니다. 택시를 타려던 사람이 승차 공유를 이용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택시를 타려는 사람은 늘지 않았는데, 승차 공유라는 경쟁 상대가 시장에 들어오면 '파이'를 나눠줘야 합니다. 손님을 빼앗기는 당장의 위협이 되는 셈입니다.

택시 면허 가격은 더 큰 문제입니다. 개인택시 면허는 지역별로 총량제에 따라 발급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추가 발급이 안 되는 상황이라, 개인택시 면허를 얻으려면 택시기사에게 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면허 개수가 제한돼 있다 보니 비쌀 때는 1억 원을 웃돌기도 했다고 합니다. 비싸게 샀던 면허는 은퇴할 때 되팔게 됩니다. 택시 기사에게는 퇴직금 격인 목돈입니다. 그런데 카카오 카풀 서비스 논의가 시작된 뒤로 택시 면허 가격이 2~3천만 원 정도 떨어졌다고 택시 업계는 하소연합니다. 승차 공유가 본격화되면 미래의 '퇴직금'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택시 기사들은 느끼고 있습니다.
박찬근 취파용 (사진='그랩(Grab)' 홈페이지)
● 싱가포르는 뭐가 달랐을까?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사정이 조금 달랐습니다. 그랩이 처음 도입됐을 때 싱가포르 택시기사들은 승객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승차 공유 서비스를 도입할 때 택시기사들에게도 그랩의 호출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서였습니다. 콜센터를 통해 이따금씩 호출을 받았던 이전보다 호출 건수가 급증했습니다. 승차 공유 서비스가 시장에 들어오면서 줄어들었던 승객 수를 다시 만회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택시기사의 퇴직금 격인 택시 면허와 관련된 문제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택시 면허가 300싱가포르달러, 한화 25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양도는 불가능합니다. 개인에게 귀속되는 면허이기 때문에 가격이 형성될 수 없습니다. 처음 싱가포르 택시 기사들에게 "택시 면허가 얼마에 거래되냐"고 물었을 때 갸우뚱하던 표정을 기억합니다. "한국에서는 1종 보통 운전면허가 얼마에 거래되냐"는 물음과 비슷하게 느껴졌을 듯합니다. 싱가포르 택시 기사들에게 택시 면허증은 단지 택시 영업을 하기에 적합하다는 자격 증명일 뿐입니다.
박찬근 취파용
우리가 참고할 만한 것도 있습니다. 싱가포르 당국은 승차 공유에도 면허제를 도입했습니다. 아무나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한 셈입니다. 이미 택시 면허를 가지고 있는 기사들은 따로 면허를 딸 필요 없이 승차 공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운전자에게는 기존 택시 기사와 비슷한 수준의 제한을 두고, 기존 택시 기사에게는 면허 적용의 범위를 확대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누구나 승차 공유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택시 기사들의 '자산'인 면허 가격이 떨어질 것이란 인식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상생은 불가능합니다. 싱가포르 사례를 참고할 만한 이유입니다. 우리 역시 승차 공유 운전자의 공급이 급격히 늘지 않도록 조절하는 동시에, 택시 면허 가격이 조정될 때 단계적으로 보상하는 등의 방법을 마련한다면 상생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 신산업 내 독점 문제도 미리 대비해야

싱가포르에서는 조금 다른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창업 7년밖에 안 된 스타트업 그랩이, 동남아에서 승차 공유 산업의 '공룡'으로 불릴 만큼 몸집을 키우면서 생긴 일입니다. 현재 그랩의 싱가포르 시장 점유율은 80%나 됩니다. 혼자 시장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입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동남아시아는 그랩과 우버의 경쟁 무대였습니다. 동남아시아 토종 기업과 세계 1위 해외 기업이 6억 4천만 명 규모의 동남아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1년 내내 할인 행사를 벌였고 서비스 경쟁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그랩이 우버의 동남아 사업을 합병했습니다. 동남아 승차 공유 시장의 압도적인 1위 업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합병 이후 그랩은 달라졌습니다. 할인 행사는 대폭 줄었고 요금은 올랐습니다. 택시처럼 기본요금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승객들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낌새를 챈 싱가포르의 소비자 경쟁 위원회는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소비자 경쟁 위원회는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와 비슷한 일을 하는 조직입니다. 위원회 조사 결과 그랩이 시장 점유율을 80% 정도 차지하게 되면서 요금을 10~15%정도 올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간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었습니다.

승차 공유 산업이 시작된 이후를 내다보는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효과가 큰 플랫폼 사업의 특성상 한 기업이 시장 안에서 독점적 지위를 얻어 남용하기 쉽습니다. 승차 공유 산업 초기부터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방안들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솔솔 나오는 이유입니다. 승차 공유가 막아도 거스를 수 없는 물줄기라면 물길을 잘 터놓을 방법을 고민할 때입니다.

(사진='그랩(Grab)'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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