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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혁신학교의 '실체'가 없다고요?

-나는 내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③

[취재파일] 혁신학교의 '실체'가 없다고요?
"혁신학교는 남의 아이가 가면 정말 괜찮아요. 하지만, 내 아이는 절대 가면 안 되는 학교예요."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누군가가 혁신학교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혁신학교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불신이 여전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촌철살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당수 학부모들은 현 입시 제도와 경쟁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혁신학교는 결국, 어디까지나 '실험'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죠.

어느새 혁신학교를 주제로 세 번째 연재 순서가 왔습니다. 예고했던 대로 이번에는 혁신학교의 그늘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혁신학교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장점을 강조한 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반대로 단점이나 부작용을 지적한 분들도 못지않게 많았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려는 그늘 중에는 혁신학교를 불신하는 분위기의 배경도 포함돼 있습니다. 기자수첩에 적었던 내용들 중 핵심이 되는 몇 가지를 추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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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의 실체가 없다?…"교육 성과도 자화자찬"

먼저 혁신학교의 실체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구글 등에서 '혁신학교의 철학'이라고 검색해보면 혁신학교의 이념과 철학을 설명하는 각종 자료와 논문을 볼 수 있습니다. 필자가 그중 몇몇 자료를 읽어봤는데 한 줄 요약하면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탈산업화, 정보화 사회로 고도화하면서 그에 따라 교육 방식도 달라져야 하며 학교에서 자발성과 창의성, 공공성 등의 덕목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출처 = 경기도 혁신학교 정보센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실제 혁신학교에서는 각종 현장체험과 토론, 문·예·체 수업 등을 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혁신학교를 비판하는 진영은 혁신학교의 가치가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일반학교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라고 반박합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혁신학교의 수업 방식도 일반학교가 흉내 낼 수 없는 게 아니라는 거죠. 혁신학교처럼 예산 지원이 충분히 이뤄진다면 교사의 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겁니다.

일각에선 혁신학교 교사마다 자신의 신념과 주관에 따라 천차만별의 수업을 가르치는 현실은, 오히려 그 자체로 '실체'가 불분명하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관련해 전 영훈고 교장인 황영남 미래교육자유포럼 대표는 "10년 동안 연구 시범하는 학교가 어디 있느냐. 그런 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없다"라며 혁신학교의 '실체 없음'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혁신학교의 '혁신' 성과를 가늠할 평가 방법이 없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됩니다.

2017년부터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전수평가에서 표집평가로 바뀌면서 혁신학교의 교육 성과를 일반학교와 비교할 수 있는 잣대는 사라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진보 교육감들은 단순히 기초학력 만으로 혁신학교를 평가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학력 저하 논란을 일축하고 있습니다.

대신 학생 만족도라든가 수업 참여도, 학생-교사와의 관계 등 주관적이고 정성적인 평가 항목을 내세우며 혁신학교의 교육 성과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황 대표는 "성과에 대해 찬반이 많다는 것은 일반화할 가치가 생산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성과가 정말로 있다면 당장 혁신학교에 대한 연구시범을 중단하고 모든 학교에 똑같이 적용해 보급해야 한다"라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성과가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체 논란과 더불어 예산 지원의 형평성 논란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혁신학교를 비판하는 진영은 똑같이 낸 세금을 왜 혁신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혁신학교는 일반학교보다 지금도 연 5~6천만 원 예산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학교가 아니라, 단지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학교일 뿐인데 말이죠. 교원단체 중 하나인 서울교총은 "혁신학교에만 막대한 예산을 쏟고, 인사자율권을 보장하는 등 행정적 혜택 또한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은 일반학교 죽이기를 가속화하겠다는 취지"라며 비판한 바 있습니다.
● "비민주적인 혁신학교 지정 절차, 개선 필요"

"혁신학교가 좋고 싫고의 호불호는 자유다. 하지만, 그런 호불호를 강제하는 건 폭력이다."

서울 가락동 헬리오시티에 입주를 앞둔 학부모가 필자에게 해줬던 말입니다. 최근 한 달간 서울시교육청이 헬리오시티 내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는 문제를 두고 그 절차가 민주적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거셌습니다.

서울특별시 혁신학교 조례 제3조 1항은 "교육감은 서울특별시 내 초·중·고등학교에 혁신학교를 지정·운영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조례를 근거로 일방적으로 혁신학교를 지정했다가 예비 학부모들의 반발을 샀던 겁니다.

특히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학생과 학부모도 엄연히 교육의 주체임을 강조해왔는데, 정작 학부모 의사를 묻지 않은 채 혁신학교 지정을 강행한다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받았습니다. 교육청과 학부모 간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조 교육감이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지금 순간에도 혁신학교 지정 절차의 비민주성이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닙니다.

기존 학교를 혁신학교로 바꾸는 절차에도 갈등 가능성은 여전히 내포돼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의 '혁신학교 운영규정 기본계획'은 교원 혹은 학부모의 50% 이상 찬성을 혁신학교 전환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교사나 학부모 어느 한쪽이 과반수 이상 찬성하면 혁신학교로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교사는 싫은데 학부모가 과반수 찬성하거나 학부모는 싫은데 교사가 원하면 혁신학교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교육 주체들의 의사에 반해 혁신학교 지정은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헬리오시티 학부모들은 교사와 학부모 양쪽 모두가 과반수 이상 찬성해야만 혁신학교로 바꿀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학부모 반발에 부딪힌 조희연 교육감은 헬레오시티 내 학교 3곳을 '예비혁신학교'로 개교하고 1년 뒤 학부모 의사를 묻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혁신학교일수록 '워킹맘'은 소외

진보 교육 시민단체의 학부모는 혁신학교일수록 워킹맘이 더 소외된다는 우려도 했습니다. 혁신학교는 공동체 교육을 중시하다 보니 학부모들의 참여를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학내에서 다양한 학부모 모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각종 체험학습 등으로 학부모가 자녀의 교육 준비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일반학교보다 많을 때도 있습니다.

그는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들은 혁신학교의 참여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긴다"라며 "혁신학교 취지는 좋지만, 학부모의 교육열은 어딜 가나 똑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편을 포함해 필자는 혁신학교를 주제로 총 세 편의 취재파일을 연재했습니다. 학력 저하 우려에 대한 조사부터 혁신학교 학생과 학부모 인터뷰까지 다양하게 알아봤습니다.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보니 앞서 두 편의 취재파일에는 정말로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 참여한 네티즌들의 성별과 연령대를 보니 '학부모'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댓글 내용을 보니 포털 간에 뚜렷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네이버에서는 혁신학교를 비판하는 의견이 주를 이뤘던 반면, 다음에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뚜렷했습니다.

둘 다 아이 행복을 바란다는 점에선 같았습니다. 다만, 그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혁신학교가 실험으로 그칠지, 우리 사회에 희망이 될지는 결국, 교육 주체들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 [취재파일] 나는 내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 [취재파일] 혁신초교 6학년 정세희 양에게 물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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