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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는 내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 혁신학교를 가까이 들여다보다 ①

[취재파일] 나는 내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영화 '스쿨 오브 락'을 보셨나요? 록 밴드에서 쫓겨난 한 남자가 우연히 초등학교 보조교사로 일하게 됐다가 학생들과 함께 음악 경연대회에 나가기까지 우여곡절을 겪는 내용입니다.

교사 역을 맡았던 배우 잭 블랙은 어느 날 아이들의 뛰어난 음악 재능을 알아채고 정규 수업에도 없는 '록 음악'을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하죠. 그는 학생들의 장점을 파악하고 보컬, 기타, 키보드, 코러스 등의 역할을 배정한 뒤 맞춤형 연습을 진행합니다. '록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공연 비디오들을 함께 보면서 토론 수업을 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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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아이들은 한 편의 공연을 완성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교사의 자율과 학생들의 참여가 훗날 엄청난 성과(?)를 낸다는 점에서 오늘날 혁신학교가 지향하는 가치와 사실상 같은 셈입니다. 창의성 교육을 통해 삶의 역량을 키우는 혁신학교의 이념이 영화 '스쿨 오브 락'에 그대로 녹아있는 겁니다.

현재 혁신학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정책을 통해 2009년 13개교에서 올해 약 1천500여 개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도입 10년째지만, 혁신학교에 대한 우려는 여전합니다.

이러한 우려가 학부모와 교육당국 간 갈등으로 번진 곳이 바로 서울 가락동의 헬리오시티죠. 서울시교육청이 내년 3월 단지 내에 개교하는 가락초와 해누리초·해누리중 세 곳을 '혁신학교'로 직권 지정하려 나서면서 갈등이 불거진 겁니다.
[취재파일] 나는 내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교육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는 혁신학교 갈등 사태를 취재하면서, 사태의 본질과는 별개로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내가 나중에 초등학교 학부모가 됐을 때 내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혁신학교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혁신학교 교육 성과와 관련한 연구자료 등을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취재했던 내용을 2편의 취재파일로 연재하겠습니다. 첫 번째 편은 혁신학교에 대한 쟁점들을 연구 자료와 전문가 취재를 통해 정리한 것이고, 두 번째 편은 실제로 혁신학교를 방문해 학부모와 교사, 학생을 취재했던 내용입니다.

● 혁신학교 다니면 기초학력이 떨어진다?

문·예·체 교육을 강조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기초 학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혁신학교를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물론 전혀 근거가 없는 우려는 아닙니다.

실제 일제고사로 치러진 마지막 학업성취도 평가인 2016년 당시 혁신학교 고교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전국 평균(4.5%)의 세 배 가까운 11.9%에 달했습니다. 학력 하락 폭도 컸습니다. 전국 고교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2015년에서 2016년 사이 평균 4.2%→4.5%로 소폭 늘었지만, 혁신학교는 7.9%→11.9%로 나타났죠.
[취재파일] 나는 내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맘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한 부정적인 입소문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혁신학교에 아이를 보냈더니 놀기만 하더라, 혁신 수업하느라 진도는 못 나갔다는 식의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황영남 미래교육자유포럼대표는 서울 영훈고 교장으로 재직 시절에 친분이 있었던 모 혁신고 교장의 애로사항을 전했습니다. 황 전 교장은 "외부에서 봤을 땐 혁신학교가 마치 있어 보이는 것 같지만, 내가 알던 혁신고 교장은 속앓이가 심했다"라며 "교실 분위기가 자유로운 반면 면학 분위기는 제대로 잡히지 않다 보니 현장에서 아이를 지도하는 데 많이 애를 먹는다"라고 말했습니다.

● "종단 연구 결과 혁신학교 우려 사실 아냐"

혁신학교의 기초학력이 떨어진다는 우려는 정말 사실일까요? 혁신학교 성과를 수년간 분석해왔던 김준엽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의 이야기는 좀 달랐습니다.

먼저 혁신학교의 기초학력 미달률이 전국 평균보다 높다는 비판에 대해 김 교수는 교육 여건이 취약한 지역에 혁신학교를 우선 지정하기 때문에 2016년 특정 시점의 평가로 혁신학교 성과 전체를 판단할 순 없다고 말했습니다.

혁신학교 중에는 농·산·어촌 등 교육 낙후지역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보니 애초에 기초학력이 전국 평균보다 낮게 나타날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학교가 어떻게 가르치느냐를 보거나 입학할 때의 학생들 수준이 어떤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미달률만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 여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면 ① 입학 시점의 성적과 졸업 시점을 종단적으로 비교해야 하며 ② 적절한 비교군을 설정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지적합니다. 비슷한 지역에서 비슷한 수준의 입학 자원이 들어간 혁신학교와 일반학교끼리 매칭 시켜 비교해야 올바르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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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방법론을 토대로 혁신학교의 성과를 분석한 연구가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혁신학교 성과 분석 -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 기반'입니다. 그중에서 혁신학교와 일반학교 간 기초학력 수준과 향상도를 비교한 결론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혁신학교 3년 연속 운영 효과 분석 결과로 중학교 3개년 모두 운영한 학교와 혁신학교를 전혀 도입하지 않은 학교 간 성취도의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 경기도 내 중학교의 '학교수준' 데이터를 활용해 혁신학교 도입 이후에 학업성취도의 변화를 추가 분석한 결과 과목에 따라 혁신학교 집단이 비교집단에 비해 학교 평균 변화율이 다소 높거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하면, 적어도 데이터만으로 봤을 때 혁신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기초학력이 일반학교보다 더 떨어질 거라는 가정은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김 교수는 "학업성취도 향상과 별개로 학생들의 학교 만족도나 교사와의 상호작용 등에서 혁신학교가 더 높게 나왔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전교조 선생님들이 이념 교육할까봐…"

학력 저하 우려 다음으로는 이념 편향적인 교육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혁신학교에 대체로 전교조 교사들이 많이 지원해서 오기 때문에 학부모 동의 없이 사상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6일 헬리오시티 예비 혁신학교 지정 반대 촛불집회에서 한 학부모 대표는 "교원 모집을 투명하게 시행해서 특정 성향의 교사들로 학교를 구성한다는 점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없도록 해야 한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교육부는 이런 우려를 해소하고자 혁신학교 재학 경험이 있는 학부모 34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교사들이 실제로 이념 교육을 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9%만이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했습니다. 혁신학교가 조직적으로 이념 편향 교육을 벌인다고 의심할 만한 정도의 수치는 아닌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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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봤을 땐 혁신학교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판단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는, 아주 지극히도 당연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통계라는 건 그 자체로 '평균의 함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모든 학교의 사정이 다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반학교여도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곳이 분명 있을 것이며, 반대로 혁신학교라 할지라도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운영되는 곳도 있을 겁니다. 게다가 교장의 리더십, 교사들의 역량, 면학 분위기, 지역의 경제·교육 수준 등 학교의 교육 성패를 가르는 변수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지금까지의 취재로는 서두에서 던진 '내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혁신학교를 찾아가서 좀 더 살아 있는 현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은 다음 편에 이어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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