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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68 : 위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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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삶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을 저버릴 수 있을 뿐이지요. 어떤 유형의 삶이든 우리에게 뭔가를 가져다줍니다. 마오쩌둥은 '좋은 일이 나쁜 일로 변할 수 있지만,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항상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하는 편이었지요."

위화는 동시대 중국 작가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위화 원작 <허삼관 매혈기>는 우리나라에서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한 장이모 감독의 <인생>도 위화의 작품을 영화화한 겁니다. 이 두 장편소설은 위화의 작품들 중에 가장 많이 읽히는 대표작이기도 하죠.

지난달(11월)에 출간된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은 위화가 그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했단 특강이나 좌담을 모은 책입니다. 20세기에 했던 얘기부터 두 달 전인 바로 지난 10월의 특강까지 수십 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위화라는 소설가가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해 왔는지, 책 표지에도 쓰여 있는 것처럼 '그의 읽기, 쓰기 그리고 사람으로 살기'가 본인의 말로 가득 담겨 있습니다.

위화의 책을 재밌게 읽은 분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위화를 잘 모르시는 분들께도 감히 말씀드리자면, '인간 정신의 기적'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그리고 문득문득 치솟는 감동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중국에서 위화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주목되는 동시대 예술가들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는 것 자체가 '사람의 기적'이기 떄문입니다. 위화는 보통 '명문'을 써내는 사람들에게 기대되는 것과 완전히 동떨어지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책다운 책조차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1960년생. 문화대혁명과 청소년기가 고스란히 겹칩니다.

문화대혁명은 간단히 말하자면 중국 공산당이 1966년부터 1976년까지, 그때까지의 중국 문명을 모조리 부정하고 오직 공산당과 마오쩌둥 어록만을 남겨놓았던 시기입니다. 책을 불태웠고, 특히 문화예술가들을 철저히 탄압했습니다. 이렇게 10년 동안 문명을 파괴한 상처와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검열의 DNA'가 뿌리내리게 된 것 하나만 생각해도, 그 무서운 영향의 크기를 차마 헤아리기 어렵죠.

위화는 거대한 퇴보의 시대에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퇴보로부터 맹렬히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젊은이들, 작가들, 편집자들과 함께 중국의 현대 문화를 다시 일궈왔습니다. 어른이 되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세계적인 고전들을 찾아 읽고, 생각하고, 쓰고, 문학을 재발견해왔습니다. 바로 그런 과정이 이 책들에 여러모로 담겨 있습니다.

"<마오쩌둥 선집>의 주해를 다 읽고 나자 또다시 읽을 것이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대자보가 있는 곳을 찾아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대자보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문혁이 후기로 접어들면서 대자보에는 커다란 글자로 잔뜩 쓰여 있는 혁명 문구 외에 색정적인 사건을 묘사한 글이 올라왔거든요. 예컨대 아무개랑 아무개가 간통을 했다는 등의 얘기들이었습니다. 저는 나란히 길게 나붙어 있는 대자보에서 열심히 '간통'이라는 단어를 찾은 다음, 그 내용을 진지하게 읽어내려갔습니다. 물론 내용은 아주 짧았고 성적인 묘사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간통 이야기가 있었지요. 당시 매일 학교가 파해 집으로 돌아갈 때면 저는 먼저 대자보를 훑으면서 새로운 간통 이야기가 올라왔는지 살펴보곤 했습니다."

곱씹을수록 사실 참 끔찍한 이야기를 이렇게 너스레를 떨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쉽고 재미있게 해버립니다. 울고 웃으면서, 그 거대한 부조리에 난도질 당해온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위화의 걸작들을 응축하는 특징들입니다. 입말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이렇게 성장한 위화가 앞뒤가 수십 장씩 뜯겨나간 금서(세계문학 걸작들)을 어렵게 구해 열심히 읽다가 그 재밌는 얘기들의 결말을 알 수 없는 게 너무 힘들어 밤마다 상상을 거듭했던 게 결국 소설가로서 자신의 상상력을 키웠다면서 "결국 삶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을 저버릴 수 있을 뿐이지요. 어떤 유형의 삶이든 우리에게 뭔가를 가져다줍니다."라고 말할 때의 그 무게감은 참으로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1987년 <수확> 제5호에 <4월 3일 사건>을 발표한 뒤에 저는 샤오위안민으로부터 두툼한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당시 제 작품의 책임편집자가 바로 샤오위안민이었지요. 그녀는 편지에서 <1986년>이 다음 호에 발표될 예정이라고 하면서 단지 작품에 묘사된 여러 부분이 지나치게 잔인한 것 같아 발표되면 적지 않은 비판에 부딪칠까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일이 생기면 저에게 아주 불리할 것 같아 전체적인 스타일에 손상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주 약간 삭제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하더군요. 읽어보니 삭제된 부분은 정말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처럼 진지한 편집자를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원문을 편지지에 쓴 다음, 수정한 부분을 그 밑에 다시 썼습니다. 그때는 컴퓨터가 없었고 타자기 같은 것도 없었지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원문을 한 단락, 한 단락 전부 손으로 쓰고서 제게 수정에 동의하는지를 물은 것입니다. 저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샤오위안민은 상당히 높은 직급의 편집자였고 유명한 소설을 다수 편집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저처럼 갓 무명 딱지를 벗은 작가를 이처럼 존중하는 데 저로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저는 기꺼이 동의하면서 발표될 수만 있다면 전부 삭제해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편집자의 이처럼 진지한 태도는 <수확>의 전통이었습니다. 바진이 남긴 전통이었지요"


위화 뿐만 아니라,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의 많은 젊은이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행복하게, 자신들의 문명을 되살리는데 그야말로 '한 몸을 바쳤는가'도 이렇게 넌지시 드러납니다. "발표될 수만 있다면 전부 삭제해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해학과 그 뒤에 숨은 결기로, '문화대혁명 이후의 중국 문화계'라는 미증유의 시기를 함께 헤쳐나간 자신의 문학 동료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 그리고 자랑스러움도 이 책 여러 곳에서 묻어납니다.

"저녁에 그 친구 집에서 자면서 저는 계속 <카프카 소설선>을 제게 양보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가 끝까지 양보하지 않자 저는 말했지요. 자네는 항저우에 사니까 나중에 또 이 책을 살 기회가 있겠지만 나는 하이옌에 살기 떄문에 이런 책을 살 기회가 없단 말이야. 그러자 그 친구는 나중에 서점에서 이런 책을 또 발견하게 되면 저를 위해 꼭 한 권 사놓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전쟁과 평화> 얘기를 하면서 한 번 기회를 놓친 뒤로 다시는 서점에서 그 책을 만날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하이옌의 서점에 그 책이 아직 한 세트 남아있으니 <카프카 소설선>을 제게 양보하면 하이옌으로 돌아가 <전쟁과 평화>를 사다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그 제안에 동의했지요. 이렇게 해서 저는 <카프카 소설선>을 가지고 하이옌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미 겨울이라 저는 이불 속에 들어가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시골 의사>를 읽었지요. 그날 밤, 저는 완전히 잠을 잊었습니다. 소설 속에 말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는 셈이었습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았지만 대단히 합리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 불면의 밤이 제게 앞으로 어떻게 소설을 써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자유롭게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십팔 세에 집을 나서 먼 길을 가다>를 썼습니다. 비평가들은 보통 이 단편이 저의 출세작이라고 생각하지요. 카프카는 저의 두 번째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제게 기교를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글쓰기라는 것이 아주 자유로운 일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주었지요. 글이란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글쓰기는 해방되었고, 그 뒤로는 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었습니다. 저의 글쓰기에는 두려운 일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게 올바르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할 필요도 없었지요. 문학의 세계에는 옳고 그른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단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입장과 관점에서 옳고 그른지를 가릴 뿐입니다."


어른이 되어 어린아이처럼 세계 문학 탐방을 시작한 위화가 자신의 문학을 확립해 나간 이야기도 참 재밌습니다. 그렇게 재발견한 문학, 또 저널리즘의 본질에 대해서 가장 쉬운 말, 태평한 말투로 남겨놓은 그야말로 주옥같은 강연들이 이 책에 담겼습니다.

문학을 재발견해 온 중국인 중 한 명인 위화는 어째서 문학이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개성과 역사로부터 유리될 수 없으며 유리돼선 안 되는지 조용히 웅변합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개성과 역사'라는 특수성에 대한 고민을 이 세상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문학'이라는 것을 일생에 걸쳐 깨달은 사람의 말을 찬찬히 들어보는 즐거움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입니다.

이번 주말엔 아직 읽어보지 않은 위화의 작품을 한 권 더 '발견하는 기쁨'을 누려볼까 합니다.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도, 북적북적과 함께, 그리고 저마다 선택하신 책 한 권과 함께 하는 행복한 주말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출판사 푸른숲의 낭독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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