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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유와 생계 사이…입수한 '카풀 중재안' 들여다보니

[취재파일] 공유와 생계 사이…입수한 '카풀 중재안' 들여다보니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 '카카오 카풀 반대'를 주장하며 분신한 최 모 씨의 분향소가 차려졌습니다. 택시업계의 결의는 비장합니다. 20일 택시기사 10만 명이 국회를 에워싸고 큰 집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 정도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여당에서도 각기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 수 명이 모여 태스크포스 팀을 짰습니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의 휴대전화엔 하루에도 수백 통씩 전화가 걸려옵니다. TF는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중재안을 바탕으로 사활을 걸고 투쟁하는 택시업계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SBS가 단독으로 입수한 국토부 중재안에 따르면 택시업계 종사자는 약 27만 2천 명입니다. 법인사업장만 1천7백 개에, 개인기사는 16만 4천 명, 법인택시 종사자는 10만 8천 명에 이릅니다. 국토부는 교통 전 분야를 포괄해 법 제도를 개편하고, 연구 개발 추진방향을 제시하는 전략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카풀 플랫폼에 대해 1년간 시범사업을 실시한다는 방침입니다. 이 1년간은 하루 운행 건수를 2회로 제한합니다. 정식 서비스 전부터 우려를 낳고 있는 운전자 신원과 관련한 부분에선 카풀 크루 역시 범죄경력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넣을 계획입니다.

현행법상(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등) 특정 사업자에게만 운전자의 범죄경력조회 권한이 주어지는데, 그간 카카오 카풀을 주관하는 카카오 모빌리티는 이 특정 업종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경력조회, 운전면허 유효 검사가 불가능했습니다. 국토부는 여객자동차법 개정을 통해 카풀 플랫폼 사업자에게도 이 권한을 부여하는 식으로 시범운영 기간 중 재직증명서와 사업자 등록증을 활용한 신원조회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종전까지 '더 이상 본 서비스 개시를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카카오 측도 택시기사 최 모 씨 분신 이후 정식 개시 연기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무작위로 선정한 사용자들의 시범 운영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본격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었던 카카오가 조만간 일정 연기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카풀을 허용하는 대신 정부가 택시업계에 내놓은 방안은 이렇습니다. 그간 택시비는 법으로 정해진 기본요금에서 운행 거리에 따라 추가 금액을 합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택시 사업이 시작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택시 서비스의 기본 형태는 천편일률적이었습니다.

국토부는 먼저 요금제를 잘게 쪼개겠다는 방침입니다. 관람 안내 특화 택시, 어르신 돌봄 특화 택시 등 택시 사업으로 가능한 여러 가지 길을 열어두고, 생활 밀착형 서비스에 따른 차등 요금제를 적용하겠다는 겁니다. 또 여러 차량 공유 서비스에서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모바일을 이용한 앱 미터기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러 유통기업들이 그러하듯, 요금 할인이나 쿠폰제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택시 업계들이 서로 경쟁하며 고유 브랜드를 마련할 수 있는 갖가지 규제도 풀어주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 대안은 순전히 택시 브랜드를 점유하고 운영할 수 있는 '사업자'에게만 유의미합니다. 실제 차를 끌고 다니며 태울 수 있는 손님에 따라 그날 일당을 챙길 수 있는 현업 택시기사들에겐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 있죠. 이를 의식해선지 국토부는 하나 더 제안합니다. 실제 근무한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해서 기본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그간 택시업계의 고질병으로 지적됐던 것 중 하나가 과도한 근로 시간입니다. 올 한 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52시간 근로제'도 택시기사들에겐 별천지 이야기입니다. 많은 택시 회사 소속 기사들이 실제로 운행한 시간보다 턱없이 적은 근로시간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바로 택시발전법상 노사 합의에 따른 근로시간만 인정하도록 돼 있는 소정 근로시간제도 때문입니다.

이는 법인 택시회사 소속 기사들에게 적용하는 '사납금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법인 소속 택시기사들은 매일 회사와 미리 약속한 금액을 납부해야 합니다. 해당 금액을 제외하곤 모든 수익을 기사가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제도를 악용해 계약상 기본급은 적게 설정해두고, 현실적으로 그의 몇 배는 더 일해야 벌 수 있는 사납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많은 시간을 무임금 노동에 시달리게 되는데, 더구나 사납금을 채우지 못할 땐 기본급에서 공제까지 합니다. 이런 구조 탓에 사납금이라도 벌어야 겨우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 보니 곡예 운전을 하거나 탑승 거부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국토부는 법 개정을 통해 소정 근로시간제를 적용하지 않고, 운행 기록 장치 등을 통해 실제 근무시간을 책정해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또 월급제 정착을 위한 사납금 관행을 더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년에 두 차례 사납금 관리 행태를 전수 조사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정작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자율성, 형평성 등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택시기사들의 안정된 노후를 위해 면허값을 현행 전액 일률 지급하고 있는 방식을 변경해 연금 형태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현재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개인택시 면허에 10년 연금을 도입하면 연 500억 원의 추가 예산이 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사실 이번에 국토부가 '중재안'으로 내놓은 것들은 택시기사들에게 모두 반가운 정책들입니다. 택시기사 김재주 씨는 불합리한 사납금 제도 폐지를 주장하며 겨울, 여름을 지나 다시 올겨울을 맞이할 동안 전북 전주시의 한 조명탑에 의지해 현재도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택시기사들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모두 환영받는 안건들이고, 그간에도 꾸준히 대책으로 거론돼 왔던 것들이지만, 이 대안들이 카풀 서비스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택시업계가 공멸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정책적 혜택은 오히려 선결돼야 하는 조건이지, 카풀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여당 관계자는 기자에게 "택시업계에 대한 지원을 전폭적으로 늘릴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택시기사들에게 이 대안들은 새롭지 않습니다. 중요하지만, 생업을 잃을 수도 있는 지금 상황에선 그걸 상쇄할 만큼의 대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년 상반기 발표될 로드맵의 핵심 내용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버스 온라인 좌석 예약제, 스마트시티 카 셰어링 규제 완화 등도 이미 수년 전부터 나왔던 정책들입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법 개정 요소가 상당하다는 것도 불신을 자초하는 이유입니다. 정식 개시일은 당장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향후 논박을 통해 치열한 검토 과정을 거쳐 개정되어야 하는 요소들이 대부분입니다. 정부가 중재안으로 내놓은 면면을 본 택시업계 관계자는 "당장 지금 닥친 난관만 모면하려는 것 같다"고도 말했습니다.

가장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있는 '출퇴근 시간' 정의에 대해서도 중재안은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다. 현행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81조에 따르면 자가용을 유상으로 운송용으로 제공하거나 임대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1994년 예외 조항이 추가됐습니다. 출퇴근 때는 승용차를 함께 타는 경우가 가능하다는 내용입니다.

택시업계는 원래 법률을 들어 카풀이 불법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차량 공유 플랫폼 사업자는 이 예외조항을 들어 '출퇴근 시간은 모두에게 다를 수 있다'는 근거로 논박하고 있습니다. 이 아리송한 법 조항이 이번 사태의 최대 쟁점인데, 중재안엔 사실상 이 이슈를 다루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12일 0시 무렵 서울에선 또 다른 유서 형식의 메모가 발견됐습니다. 자신을 전직 택시기사로 소개한 작성자는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며 극단적 선택을 할 것임을 암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인근 CCTV를 돌려보며 작성자 수색에 나선 경찰이 어제저녁 작성자를 찾아냈고 다행히 또 다른 비극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일반 소비자들의 편익과 공유경제의 득과 실, 그리고 수많은 택시기사들의 생계를 두루 고려한 현명한 대안이 모색돼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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