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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철창 속 사육 곰도 곰이다

[취재파일] 철창 속 사육 곰도 곰이다
좁은 철창에 갇혀 살던 곰 세 마리가 농가 밖으로 나왔다. 강원도 동해 한 농가 사육장에서 태어나고 자라던 곰들이다. 2014년 1월 10일 생, 만 4세인 수컷 두 마리, 암컷 한 마리다. 웅담 채취용으로 사육되던 곰 후손이다. 언젠가 이 새끼 곰도 부모 곰과 같이 웅담 채취 목적으로 도축될 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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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던 곰 세 마리의 운명이 바뀌었다. 녹색연합과 시민들이 힘을 합쳐 농가로부터 곰을 구출했다. 돈을 주고 곰을 사 철창 속에서 빼내 온 것이다. 사육 곰 구출을 위한 모금 캠페인이 지난 9월 27일 시작됐다. 당초 3개월을 잡았지만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한 달을 앞당겨 지난달 21일 목표금액을 달성했다. 3천639명이 기꺼이 지갑을 열었고, 4천 158만 5천 원을 모았다. 시민들은 곰 세 마리에게 '반이','달이','곰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곰 가슴에는 반달모양의 흰털무늬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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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첫추위가 시작된 지난 7일 아침, 사육농가로부터 구출한 곰을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무진동 차량을 이용해 옮겼다. 청주 동물원 진료사육팀장(수의사)이 동행했다. 곰은 1주 전 혈액검사 등 건강검진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단지 배가 홀쭉할 만큼 마른 상태였다.

수컷 두 마리는 청주 동물원, 암컷 한 마리는 전주 동물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한 달가량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 훈련을 거쳐 동물원에 살던 다른 곰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청주 동물원에는 지리산에 풀어놓았지만 야생에 적응하지 못하고 회수된 반달곰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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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곰 사육이 시작된 것은 1981년이다. 산림청이 농가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증식과 재수출용으로 곰 수입을 허가했다. 하지만 웅담 채취가 동물학대 논란을 일으키면서 1985년 수입이 금지됐다. 그 뒤 1993년 멸종위기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 CITES(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auna and Flora)에 가입함으로써 수출도 막혔다. 산림청이 맡고 있던 야생조수 관리업무는 1999년 환경부로 이관됐다. 이때부터 사육 곰도 환경부로 넘어왔다.

러시아, 연해주 등에서 400여 마리 이상 수입된 사육 곰은 2000년대 중반 1천 400마리까지 증식됐다. 환경부는 농가와 협의를 통해 웅담 채취용 사육 곰의 증식을 억제하기 위해 중성화 수술을 시작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년간 중성화 수술을 한 곰은 967마리에 이른다. 농가에는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곰 한 마리당 420만 원씩 지원했다. 앞서 환경부는 곰이 태어난 지 10년이 되면 웅담을 채취할 목적으로 도축할 수 있도록 도축연한을 단축했다.

중국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약제용 웅담 거래는 합법이다. 10년 이상 된 곰을 도축해 웅담을 꺼내도 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사육 곰은 32농가에 540마리다. 이 가운데 10년이 넘어 도축이 가능한 곰은 444마리다. 이번에 구출된 곰 세 마리와 비슷한 또래인 5년 미만 개체 수는 41마리다. 사육 곰의 뿌리는 아시아 흑곰이다. 우리나라 고유종인 우수리종이 아니다. 환경부는 2004년부터 멸종위기 1급인 반달곰 복원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반도에 살았던 우수리아종이 복원대상이다. 따라서 사육 곰은 강제로 중성화 수술을 해 번식을 할 수도 없고, 복원대상과 같은 종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물론 오래도록 사람 손에 길들여져 살았기 때문에 자연환경에 적응할 수도 사실상 없는 상태기도 하다.

녹색연합은 정부가 사육 곰 540마리에 대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창에 가둔 채 죽을 날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환경부도 더디기는 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했다. 농가에서 구출한 곰 세 마리가 살아갈 청주 동물원과 전주 동물원에 보호시설 개선용으로 각각 1억 원씩 2억 원을 지원했다. 한 걸음 더 나가 농가폐업을 지원하는 방안도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곰을 도축해 사육을 그만 둘 경우 일정 금액의 돈을 지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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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멸종된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기 위해 지리산에 2004년부터 39마리를 방사했고, 야생에서 태어난 개체도 38마리나 된다. 지난 5월 기준 지리산에 살고 있는 반달곰은 56마리로 파악하고 있다. 당초 목표했던 개체수를 달성했지만 야생 적응에 실패해 회수되거나 올무 등 밀렵도구에 피해를 입는 곰도 있기 때문에 유전자 다양성 확보를 위해 당분간 방사를 계속한다고 한다. 지리산을 벗어난 덕유산과 속리산,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서식지 확대작업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복원대상인 우수리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육 곰은 도축시켜야 할 대상인가? 애초 수입해 사육한 부모 곰 아래서 아무 영문도 모르고 태어나 웅담 채취용으로 철창 속에서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하는 새끼 곰들의 운명에 눈감고 있어서는 안 된다.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좁은 철창에서 꺼내 보호시설에서 살도록 해줘야 한다. 사육 곰은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사육 곰도 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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