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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67 : '너는 무엇이냐' 되물어라…김영민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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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질문은 집어 쳐 주시죠'라는 시선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복잡다단해 보이는 사건과 사고, 희로애락이 범적이 된 인생사의 각 단면에서 시달리노라면 좀처럼 자신을 돌아보기 어렵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던 옛 선현의 말처럼 성찰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들으면 아는 것 같은데 실천하긴 쉽지 않죠. 존재에 대한 돌직구 질문을 던짐으로써 성찰의 중요성을 일깨웠던 그 글 '추석이란 무엇인가'의 주인공! 칼럼계의 아이돌, 혹은 칼럼 몰아보기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오늘의 책입니다.

책에는 김 교수가 어딘가에 기고한, 혹은 고정 필진으로 썼던 글 50여 편과 인터뷰 2편이 실려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몰아서 볼 수 있습니다. 탁월하고 참신한 비유, 곳곳에서 느껴지는 유머와 해학, 때론 허무한 듯 관조하는 듯 리듬감 있는 글쓰기를 선보입니다.

"뱃살에 대해 생각한다. 상반신과 하반신에 걸쳐 있는 이 무책임한 비무장지대를 묵상한다. 아, 뱃살은 평생 긴장해본 적이 없구나, 지배층이로구나, 늘 여유롭구나, 지방층이로구나, 천진난만하구나, 진짜 혁명을 겪지 않았구나, 부드러운 옷 아래 숨어 있었구나, 이데올로기적이구나, 맛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한사코 음식을 더 달라고 해서 먹었구나, 많은 것을 착복했구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이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

"직선제의 단점은 공화국의 상태에 대해 너무 직선적으로만 알려준다는 것이다. 정말 이곳은 밀가루, 물, 소금, 그리고 열정으로만 이루어진 나라가 아닐까. 이곳에서 치즈는 가장 외로운 식재료다. 수십 년의 현대사가 반죽된 뜨겁고 짠 밀가루 반죽. 불행한 자신에 대해 마침내 자의식을 갖게 된 밀가루 반죽. 치즈가 빠진 거대한 고르곤, 졸라."

"사람은 두 번씩 죽는다.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온다. 그리고 자신의 장기가 더 이상 삶에 협조하기를 거부할 때 육체적 죽음이 온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수명은 전례 없이 연장되고 있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 상태다."


저는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서 이 무덤덤한 듯 날렵하고 경쾌한 글에 감탄하여 10월에 썼던 저희 팀 기사,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할인 문제점 등을 짚었던 그 기사의 제목을 '공정이란 무엇인가'로 붙이고 흐뭇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눈으로 읽기 좋은 글과 소리 내 읽기 좋은 글이 있습니다. 전자는 낭독해보면 툭툭 끊기거나 꼬이기 십상인데 그러면 이게 잘 쓴 글 맞나 하는 의심도 듭니다. 김영민 교수의 글은 단연 후자입니다. 김 교수가 지루하지 않게 잘 짜 놓은 가락에 몸을 맡기고 스스로도 낭독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절로 묻게 될 것입니다. 낭독이란 무엇인가.

*출판사 어크로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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