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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법 촬영물' 피해자, 당연히 남성도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향한 몇 가지 오해

하루에 수십여 개의 불법 촬영물을 시청합니다. 가혹한 성범죄 영상이기도, 피해 당사자는 아직도 모르고 있을 몰래카메라 영상이기도 합니다. 영상을 보고 소리도 듣습니다. 포르노 사이트를 비롯한 불법 촬영물 공유 플랫폼을 '찾아다니는' 일이 일상입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소속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불법 촬영물을 삭제하는 '삭제지원팀' 직원들의 이야기입니다. 센터는 지난 4월 30일 문을 열었는데, 반년 만에 (10월 말 기준) 2만 건의 영상을 삭제했습니다. 매달 평균 3천개 넘는 영상을 지웠다는 건데, 이 삭제 업무를 맡은 실무 직원은 고작 8명입니다.
[취재파일] '불법 촬영물' 범죄 피해자, 당연히 남성도 있습니다
지난 11일 이들을 인터뷰한 영상이 SBS8뉴스와 비디오머그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삭제지원팀을 이끌고 있는 박성혜 팀장을 인터뷰하며 삭제지원팀이 하는 일은 무엇이고, 지난 7개월 동안 삭제 지원 업무를 하며 느꼈던 대한민국 불법 촬영물 범죄의 현실을 들어봤습니다.

● 오해 1. 여성의 불법 촬영물만 삭제해주나요?

인터뷰 영상이 공개된 후 수백여 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중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반응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댓글입니다.

"왜 이런 불법 촬영물 삭제지원은 여성만? 남성도 풀리는 경우가 있는데.
여성만 피해자고 가해자는 남성이라는 프레임" (신**)


"남자 피해자들꺼는 왜 안 지워주냐" (L****)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오해'입니다. 남성의 불법 촬영물 피해도 지원 대상입니다. 인터뷰에서도 남성 피해자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센터에 따르면 불법 촬영물 사건의 피해자 10명 중 1명이 남성입니다. 박성혜 삭제지원팀장은 "10월 말 기준으로 접수된 전체 피해 사건 중 여성이 89%, 남성이 11%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의 피해 양상에 차이점은 있다고 했습니다.

"불법 영상물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남성보단 여성에 더 집중돼있습니다. 여성을 보기 위해 불법영상물을 소비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뜻입니다. 접수된 사건 중에, (남성이) 자신이 셀프 촬영한 영상이 유포됐다고 신고한 영상이 있었는데, 저희가 찾아보니 유포된 곳이 한 곳이었어요. 저희가 지난 반년 동안 지운 2만 건 영상 중 한 명의 영상이 2천 곳에 유포된 경우가 있었는데 여성분이었습니다."

피해 지원에 성별 차이를 두진 않으나, 접수되는 불법영상물 피해자 다수가 여성이고, 남성의 영상에 비해 여성의 영상이 유포나 확산의 속도가 빠르고 범위도 넓다는 이야기입니다.
[취재파일] '불법 촬영물' 범죄 피해자, 당연히 남성도 있습니다
● 오해 2: 불법촬영물 피해를 지원하는 곳을 왜 '여성가족부'가 운영하죠?

이런 댓글도 있었습니다.

"굳이 '여성'을 붙인 꼬라지봐라. 저거 자체도 역차별임" (프*)
"이름부터 차별적이네…왜 굳이 여성이라는 말이 필요하나? (포**)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소속이고,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인 점에 비판적 의문을 제기한 댓글로 보여집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업이지만 업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경찰청과 공조로 이뤄집니다. 불법 촬영물 피해자가 전화 및 온라인 게시판으로 피해 사실을 접수하면 우선 센터에 소속된 상담 직원들이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상담을 합니다.

삭제 지원 업무가 시작되면 영상물이 유포된 인터넷 주소 등을 기반으로 삭제 지원 인력들이 해당 영상물이 유포된 사이트를 모니터링해 피해 사례를 수집합니다. 그리고 해당 사이트 관리자에게 삭제를 요청합니다. 이와 함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신청도 합니다. 신청을 받은 방심위는 심의를 거쳐 차단 조치 등의 시정 요구를 진행합니다. 피해자가 수사를 원할 경우 채증 자료를 만들어 경찰에 인계하는 것도 센터의 역할입니다.

즉 불법 촬영물 피해자가 사건을 접수하는 창구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지만 이후 업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경찰청 등과 공조가 필수라는 의미입니다. 이 '공조 지원'은 남성, 여성 모두를 대상으로 합니다. 불법촬영물 피해에 성별이 없듯이, 피해 지원 대상에도 성별이 없단 뜻이겠죠.
[취재파일] '불법 촬영물' 범죄 피해자, 당연히 남성도 있습니다
● 오해 3: 촬영에 동의했으면 문제없는 것 아닌가요?

많지는 않았지만 이런 의문을 제기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본인이 촬영에 동의한 영상은 불법 촬영물이 아니지 않나요?' (S*****)
'좋아서 찍어놓고…나중에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X도 많음' (g***)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규정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정의는 '동의 없이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유포하거나 이를 빌미로 협박하는 행위,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입니다.

자, 그럼 '동의를 구하고'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은 괜찮은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적 관계 안에서 서로 동의 하에 촬영을 했다 하더라도 이 영상을 '유포'하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촬영에 동의한 것이지 유포에 동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리고 촬영에 동의한 영상을 빌미로 '유포하겠다'며 협박을 하고, 불안을 조장하는 괴롭힘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도 디지털 성범죄에 포함이 됩니다.

박성혜 삭제지원팀장은 "센터를 찾는 피해자의 100%가 유포 불안 증세를 갖고 있다. 이미 (불법 촬영물이) 유포가 돼서 불안을 겪는 경우도 많지만, 유포가 되기 전 협박을 받으면서 불안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체 피해자의 1/4 정도(이미 유포가 된 경우)가 삭제 지원 대상이 되고 나머지 3/4(유포 협박을 받거나 유포 불안을 겪는 경우)는 심리상담, 지지상담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포 불안' 피해자는 성폭력 처벌법이나 성폭력 보호법에 의한 '피해자'로 규정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취재파일] '불법 촬영물' 범죄 피해자, 당연히 남성도 있습니다
● 찍고, 올리고, 퍼뜨리고…이 모든 행위가 '범죄'입니다

"불법촬영물을 최초로 유포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수사에 들어가면 압수수색 등을 통해 발견이 될 수 있어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런데 재유포자는 찾기가 매우 어려워요. 왜냐하면 그냥 아이디만 있잖아요. 저희가 모니터링을 할 때도, 이 사람이 처음 올린 사람인지 누군가의 것을 다운 받아서 다시 올린 사람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어요." (박성혜 삭제지원팀장)

피해자들은 자신이 등장하는 불법 촬영물이 어느 곳에 얼마나 퍼져있는지를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나 민간 디지털 삭제 업체를 찾게 됩니다. 하지만 유포된 영상을 찾고, 각 플랫폼(웹하드 P2P 사이트 등)의 요구 조건에 맞춰 삭제 '요청'을 하고, 실제 삭제가 됐는지 일일히 확인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에 비해 영상이 확산되는 시간은 너무나 빠릅니다.

"성적 촬영물을 소비한다는 게 마치 그냥 영화 파일 하나 다운로드 받는 것처럼 느껴지죠. 나는 한 번 다운 받았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런 한 번 한 번이 모여서 삽시간에 수백, 수천 건이 됩니다. 지운다고 지우지만 누군가 다운 받아서 외장하드에 갖고 있다가 몇 달 후에, 몇 년 후에 다시 올릴지도 모르죠. 피해자는 그런 불안에 떨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거예요." (박성혜 삭제지원팀장)

센터에 접수된 피해 사례 중엔 한 명의 영상이 2천 곳(URL)까지 퍼진 경우도, 집주인이 설치해놓은 몰래카메라에 모든 일상이 찍혀 유포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올해 안에 불법촬영물 유포행위 처벌 강화 법안 등 디지털 성범죄 근절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최근 발표했습니다.

물론 규제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불법 촬영물을 찍고 올리고 퍼뜨리는 모든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스스로 이를 소비하지 않는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모두 언제라도 불법촬영물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https://www.women1366.kr/stopds/
02-735-8994 (전화 상담 : 평일 10:00~1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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