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초기만 하더라도 분기탱천하고 놀라는 일이 잦았다. 우리 사회가 '님'자까지 붙여가며 식자(識者)로 대우하던 판사들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내가 쓴 기사 내가 읽으면서도 '이게 말이 되나?' 몇 번씩 주춤했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 판사들이라고 다르겠니?" 말을 얹는 사람을 만날 때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받아쳤다. 헌법이 보장한 '법관독립'이 견제받지 않은 채 재판을 거래하고 동료 판사들 뒷조사나 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믿었다.
하지만, 옮기기에도 조심스러웠던 추문들은 '법원행정처 대외비/내부' 보고서가 공개되고, 검찰에 피의자로 다녀간 판사들이 하나 둘 늘어나자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매일같이 새롭게 드러나는 양승태 사법부의 실상과 은폐를 목적으로 한 법원의 거짓말에 익숙해지면서부턴 더 이상 감정노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다고 기사를 써야 하나' 가늠조차 되지 않아 답답한 적은 더러 있었지만.
● 터무니없는 거짓말 "업무 상 판사들의 동향이나 성향 파악할 필요 없어"
가끔씩 이탄희 판사가 증언한 '판사 뒷조사 문건(법원행정처 작성)'의 진위를 두고 여론에 떠밀리듯 구성됐던 법원 내 진상조사단의 보고서(2017.4.18)를 다시 읽는다. 이 보고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곱씹을 대목이 늘어난다.
● '판사 뒷조사 문건' 확인하다 청와대에 판결 '사전보고' 정황 발견
들추다 만 듯 언급된 이 '원세훈 항소심 - BH' 문건 등을 이유로 법원은 또 한번 부실 조사를 비판하는 안팎의 여론에 직면하고 결국, 세 번째 법원 자체 조사기구(특별조사단, 3차조사)가 출범된다. 이후 특별조사단이 내놓은 결과 보고서(2018.5.25)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본격적으로 '재판거래'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만든 건, 역설적이게도, 주요 국면마다 거짓으로 위기를 외면하려 했던 법관들, 그 자신이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