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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납세거부 주장?…"가짜뉴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따라 국가적 차원에서의 무장해제와 평화주의, 납세거부, 종교 우월까지 연계하여 주장하고 있다.'

지난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 씨의 병역거부 사건 판결문에 등장하는 문구입니다. 종교나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는 정당한 병역 거부 사유라는 다수 의견에 맞서 조희대·박상옥 대법관이 반대 의견의 보충 의견에서 밝힌 대목입니다.

판결문에 등장한 이 문구 때문인지, '양심적 병역거부' 논쟁은 '양심적 납세 거부도 가능한 것인가'라는 논쟁으로 비화됐습니다. 한 검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병역 거부를 넘어 납세 거부·무장해제까지 주장한다면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날 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승헌 씨
● "'납세거부 주장'은 가짜 뉴스"

하지만, 오승헌 씨 변호인은 '납세거부 주장'은 "가짜 뉴스에 가깝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조희대·박상옥 두 대법관은 오 씨가 납세거부 등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충 의견에 밝혔지만, 오 씨는 하급심은 물론 대법원 심리에서도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오 씨 대리인인 오두진 변호사는 "피고인 측은 사건 변론 과정에서 납세거부는 주장한 적이 없다"며, "왜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고 판결문에 썼는지 모르겠다"고 밝혔습니다. 오 변호사는 "납세 거부 주장은 가짜 뉴스에 가깝다"며,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대부분은 성실한 납세자"라고 덧붙였습니다.

오 변호사의 이런 주장은 두 대법관의 보충 의견에서도 확인됩니다. 두 대법관은 '피고인은 항소이유서와 공판 변론 등을 통해 세상의 권위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것이어서 세속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는 것도 그로 인한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있다'고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동기가 뭐였든, 오 씨가 납세 거부를 주장한 게 아니라는 걸 두 대법관도 인정한 겁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납세 거부는 교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측의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교리엔 '우리(여호와의 증인 신도)는 법을 준수하고, 세금을 납부하며,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기꺼이 협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납세 거부와는 상반되는 내용입니다. 또, '정권을 전복하려는 그 어떤 시도에도 가담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는데, '무장해제' 주장과는 결이 다른 내용입니다. 조희대·박상옥 대법관이 어떤 이유로 오승헌 씨가 '납세거부'와 '무장해제'를 주장한다고 판단했는지 의문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 선고 (사진=연합뉴스)
● "'양심적 병역거부' 우리가 붙인 이름 아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슈가 될 때마다 항상 뒤따르는 논란은 '양심'이 뭐냐는 겁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의 '양심'은 통상적으로 쓰이는 '양심'과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 오랫동안 있어 왔지만, '양심'이 '선량함'으로 일상에서 워낙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일 겁니다. '군대를 갔다 왔다면 비양심적인 거냐'는 반박이 즉자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법을 다루는 판사라고 다르지는 않은 듯합니다. 지난 8월 대구지법 제2형사부는 1심에서 병역거부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병역 거부 사유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젊은이라면 누구라도 국방의 의무로 군대에 가는 것이 현실인데, 그들이 양심이 없어서 소중한 목숨과 젊음을 바쳐 군대에 가는 것이 아니고, 일반 국민들과의 형평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판결문에 썼습니다. 법을 다루는 판사도 '양심'을 '선량함'이란 일상의 용어와 혼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니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와 관련해 병역 거부자들이 '양심'이라는 용어를 독점한 것이냐, 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냐는 반발도 터져 나옵니다. 그런데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명칭은 그들이 스스로 붙인 것은 아닙니다. 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우리가 붙인 명칭이 아니다"며, '양심적'이라는 용어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이 일고 있으니 차라리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표현은 우리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에 대응되는 말로, 영미권의 'conscientious objection(양심적 거부)'를 번역한 용어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오랫동안 사용돼 왔지만, 불필요한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되고도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데 실패한 것인 만큼, '종교에 따른 병역 거부' 등으로 용어 변경을 검토할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 선고 (사진=연합뉴스)
● 향후 터프하게 진행될 수사…'양심적 병역거부' 위장 가능할까

대법원 판결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역 입대를 피하기 위한 가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입니다. 하지만, 현역 입대를 피하더라도 현역 복무보다 더 긴 기간 동안 대체복무를 해야 한다는 구조적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넘어야 할 벽은 또 있습니다. 향후 철저해질 검찰 수사입니다.

지금껏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제대로 수사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니 철저히 수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 거부를 위한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맞는지를 수사할 실익이 없었습니다. 병역 거부자가 '종교나 신념'을 이유로 병역 거부를 주장하든 말든, '입영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집니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병역 거부 사유로 인정하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여야 한다는 걸 전제했습니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사람이 자신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임을 증명하면, 검찰은 이를 반박하는 방식으로 '진짜'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당연한 이야기 같은 이 말은 향후 검찰 조사가 철저해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사람은 '종교 활동 증명 내역'이나 '가족과 지인 진술' 등을 통해서 자신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임을 주장하면, 기존에 없었거나 약했던 수사 기관의 추궁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제 수사권을 이용한 수집한 증거를 내밀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참칭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박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법원이 입증 책임을 1차적으로 당사자에게 지웠지만, 악용 가능성을 막을 책임을 검찰에 지웠기 때문에 향후 수사는 한층 터프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했다가 '마음'이 다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진짜'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도 쉽지 않을 이 과정을 '가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견딜 수 있을까요? 수사 끝에 '가짜'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드러나 징역 1년 6개월 보다 엄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까지 감수하고 말이죠. (현행 병역법은 정당하지 않은 사유로 현역병 입역을 거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참칭했다가 적발될 경우 기존의 징역 1년 6개월의 정찰제 판결보다 엄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역병 입영을 피할 수만 있다면 검찰 수사쯤이야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충분히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수사를 받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추궁하고, 생각지도 않은 증거를 들이밀며 내가 하는 말을 반박하는데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상대의 의심을 지우기 위해 내 삶을 증명해야 했다. 그 공간, 그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과거 검찰 조사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람의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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