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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에 의문을 가졌던 이유

[취재파일]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에 의문을 가졌던 이유
●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은 저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책이자, 동명의 영화 제목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젊은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2명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누군가 불법 침입한 사건을 취재하다 미국 정치사에도, 저널리즘의 역사에도 길이 남은 세기의 특종을 취재, 보도한 이야기를 다뤘다. 탄핵 직전까지 몰린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면서 사건은 해피 엔딩이 될 수 있었다. 책은 1974년 출간됐고 영화는 1976년에 나왔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은 두 기자가 취재하면서 사건 당사자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서 착안한 듯하다.

40년도 더 지난 사건을 다룬 창작물을 서두에 굳이 언급한 이유는, 이번 공정위 취재의 몇몇 순간에 아주 조금이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다.

● 공정위 과징금의 '공정公正'을 묻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해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며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공정거래법을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관이다.(공정거래법 1조 법의 목적) 1981년 지금의 기획재정부와 유사한 당시 경제기획원 산하에 만들어졌다가 1994년 독립했고 1996년 위원장이 장관급으로 격상하고 위원 수를 늘리면서 현재 9명 체제가 완성됐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공정위의 대표적인 기업 제재수단인 과징금에 주목, 현행 과징금 부과 체계가 마련된 2004년~ 2018년 위원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회의에서 의결된 사건 438건의 의결서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공정위가 위반행위에 따라 처음 산정한 기본과징금에서 최종 부과과징금까지 14년간 9조 6천억 원, 평균 53.1%를 할인해줬다는 사실, 그리고 3차례 조정 과정 중에 마지막 3차 조정에서 46.7%인 7조 5천억 원을 몰아서 깎아줬던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또 2004년 이후 공정위원장 8명 중에 가장 감경률이 높았던 노대래 전 위원장(61.1%)과 가장 낮은 김상조 현 위원장(17.7%)의 차이가 무려 40%를 넘는다는 것 또한 밝혀냈다.(이상의 내용은 공정이란 무엇인가 기사 4편에 담겨 있다.)
심영구 취재파일용
이번 취재파일에는 네 번째 기사 '모두가 '공정위'의 사람들'에서 간단히 정리한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써보려고 한다.

● 부위원장·상임위원·비상임위원 면면을 살펴봤더니...

합의제 준사법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의 핵심 의결기구는 위원장 이하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이다. 위원장과 부위원장, 상임위원 3명, 비상임위원 4명으로 이뤄져 있다. 위원장은 장관급, 부위원장은 차관급으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위원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자질과 도덕성 검증을 받아야 한다. 다른 위원들은 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 혹은 위촉한다. 위원장을 비롯해 모든 위원은 다음 중 어느 하나 이상의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 1) 2급 이상 공무원, 2) 15년 이상 판사 검사 또는 변호사 직 3) 법률 경제 경영, 소비자 관련 학문 전공하고 대학이나 공인연구기관에 15년 이상 근무했으며 부교수 이상 직 4) 기업경영 및 소비자보호활동에 15년 이상 종사. 이상의 내용은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나와 있다.

[마부작침]은 역대 위원장과 부위원장, 상임위원, 비상임위원의 면면을 살펴봤다. 1981년 이래 위원장은 19명, 부위원장은 1993년 처음 만들어져 19대까지 왔으나 중임, 연임이 있어 15명이다. 다른 위원들은 1996년부터 9명 체제가 된 만큼 그때 이후로 살펴보니 현직까지 상임위원 32명, 비상임위원 28명이었다.
[마부작침] 공정위
역대 부위원장,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분석 보기 -> http://bit.ly/2EBgdZX

먼저 살펴본 건 공무원 출신과 민간 출신이 얼마나 되는 지다. 공정거래법에 나와 있듯 위원의 자격 요건 4가지 중 하나라도 갖추면 임명이 가능하다. 어느 쪽이 더 유능하거나 적합하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상호 보완할 수 있도록 적당 비율로 섞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역대 위원장 19명 중에는 고시 출신 공무원이 14명, 민간인 학자나 교수 출신이 5명이다. 1981년 출범 당시엔 경제기획원 차관이 공정위원장을 겸임했고 이후로도 계속 공무원 출신이 위원장을 맡았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첫 공정위원장으로 임명된 강철규 12대 위원장이 첫 민간 출신이다. 강 전 위원장은 대표적인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연합의 대표를 지냈다. 강철규 위원장부터 권오승, 백용호, 정호열까지 4명 연속 민간 학자로 임명됐다가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16대부터는 다시 관료 출신으로 3명 연속 임명됐다. 김동수, 노대래, 정재찬 위원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또다시 민간 출신, '재벌 저격수'로 불렸던 김상조 현 위원장이 임명됐다. 어느 쪽이 더 나았다고 할 순 없다. 공무원 일색, 혹은 민간 일색보다는 적당히 섞여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원론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부위원장은 전원 공무원 출신이었다. 1996년 이후 상임위원 32명 중에는 단 1명을 제외하고 전원 공무원 출신이었다.(그 유일한 '1명'은 BBK 사건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 변호인을 지내고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냈던 장용석 전 위원이다. 상임위원 취임 당시에도 'BBK 보은인사'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장 전 위원은 3년 상임위원 임기를 마친 뒤 변호사로 돌아가 기업의 공정위 관련 사건 9건을 맡아 변호했다.) 비상임위원 28명은 전원 민간 출신이었다. 부위원장과 상임위원 4명은 공무원 출신, 비상임위원 4명은 민간 출신으로 나름 균형을 맞췄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부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들은 공정위 업무를 전업으로 하고 비상임위원들은 본업이 있으면서 겸직하는 것이다 보니 아무래도 업무에 집중하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해당 업무를 이전부터 해왔던 공무원 출신이라면 민간 출신과 더욱 차이가 날 가능성이 크다. 같은 위원으로서 표결을 하게 되면 같은 1표를 행사한다고는 하지만 무게가 다르기 십상이다. 이런 문제를 감안해 지난 8월 발표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에서는 비상임위원 4명을 직능단체 추천을 받아 전부 상임위원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 퇴직후 상당수 대기업·로펌으로

두 번째로 살펴본 건 퇴직 후 행로이다. 현재 공정위의 전·현직 고위 간부 12명이 무더기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대부분의 혐의는 기업에 공정위 퇴직자를 채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업무방해)이다. (단, 지철호 현 부위원장은 상임위원 퇴직 후 공직자윤리위 심사 없이 취업해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공직자들은 업체와의 유착관계를 차단하고 퇴직 전 근무했던 기관에 영향력 행사를 방지하기 위해 퇴직 후 3년간, 퇴직 전 5년 간 소속부서와 업무관련성이 밀접한 기관에는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대상은 재산등록의무자였던 4급 이상 공직자로 제한기관은 규모가 큰 기업, 법무법인, 세무법인 등이다.

역대 부위원장 중 이강우, 김병일 등 6명은 퇴임 후 대기업 계열사 사외이사를 맡았다. 이남기, 김선옥 등 7명은 퇴임 후 로펌 고문이나 부설기관 위원장을 맡았고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다. 서동원 전 부위원장은 상임위원(2003~2006)을 거쳐 부위원장(2008~2009)을 지냈는데 그 사이와 부위원장 퇴임 후에 각각 김앤장 고문을 지냈다. 부위원장 15명 중 퇴임 후 기업, 로펌에 가지 않았던 건 전윤철, 윤영대, 정재찬, 김학현, 신영선, 지철호 6명뿐이다. 정재찬은 직전 위원장, 김학현, 신영선은 직전 부위원장, 지철호는 현 부위원장이다. 최근 퇴직했거나 현직 외에는 대부분이 공정위 업무와 이해관계가 큰 대기업과 로펌에 몸 담았다.

9명 위원 체제 이후인 1996년부터 지금까지 공정위 상임위원을 지낸 32명 중에 9명은 부위원장을, 이중 2명은 부위원장을 거쳐 위원장까지 역임했다. 부위원장, 위원장을 맡지 않았던 상임위원들은 역시 퇴임 후 로펌과 기업에 자리를 잡았다. 11명은 화우, 태평양, 광장, 김앤장 등 고문을 맡았고 9명은 현대중공업, KT&G, 롯데 등의 사외이사가 됐다.(중복 포함) 10명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중에 7명은 지난 1월 퇴임한 김석호, 김성하 전 위원, 직전 사무처장과 현 사무처장인 신동권, 채규하 전 위원, 3명은 현직인 곽세붕, 장덕진, 박재규 상임위원이다.

● 공정위는 '공정'할 수 있나

이상을 종합해 보면 현재 시점에서 역대 부위원장과 1996년 이후 상임위원 40명 중 55%는 퇴직 후 대기업과 로펌 행을 택했다. 대기업과 로펌이 어떤 의도로 공정위 전임 부위원장과 상임위원을 데려갔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퇴직 후 3년간 업무관련성이 밀접한 기관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대기업과 로펌 행 위원들의 비율은 시간이 지나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들을 모두 잘못이라 할 수 없다. 불법도 아니다. 그러나 과연 공정위 위원으로써 기업의 위반행위를 심판할 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기사 4편에 적었듯 위반 기업의 대리인을 맡은 주요 변호사들(14년간 50인 이상 피심인 대리한 변호사) 중 72%는 공정위 출신이거나 공정위의 각종 자문 업무를 해왔다. [마부작침]이 접촉한 전직 건설업체 직원은 "내가 다니던 회사에 공정위 전담 직원만 4~5명 있었고 공정위에서 스카웃해왔다. 그들은 거의 공정위에 살면서 공정위와 제재에 대한 조율도 많이 한다. 기업들은 다 그런 부서를 가지고 있고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증언했다.

대한민국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평등권'을 규정하고 있다. 누군가 특별히 더 평등하다면 그건 평등한 게 아니다. 공정이란 것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더 '공정'하다면 그건 공정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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