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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집값 걱정 없는 '신의 직장', 그 후…

[취재파일] 집값 걱정 없는 '신의 직장', 그 후…
지난주 서울 마포의 한 부동산을 찾아갔습니다. 부동산과 인접한 곳에 있는 30㎡ 크기 오피스텔 한 곳의 전세 시세는 4억. 지난해보다 1억 원 더 올랐습니다. 사실 이곳은 한국은행이 임차해 운영하고 있는 사택 중 한 곳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행은 2억 9천만 원에 이 집을 전세 계약했습니다. 그때보다 1억 원 이상 더 높게 현재 시세를 평가한 한국감정원의 자료를 보고, 실제로 당시 한은이 계약을 그 금액에 한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려던 차였습니다. 부동산 중개인은 1억 오른 게 맞다고 했습니다.

취재를 통해 규명하려던 당초 의혹과는 떨어진 결론이었지만, 대한민국 주거 환경의 현실이 이렇다는 '팩트'만큼은 묵직했습니다. 지난해 3억 원 보증금으로 저 오피스텔에 살 수 있었다면, 올해는 1억 원 더 여윳돈이 있어야 합니다.

'신의 직장' 금융 공공기관들의 남다른 혜택은 물론 한두 번 나온 얘기가 아닙니다. 좋은 복지는 다른 기업들이 본받을만하고, 그런 혜택들을 통해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면 공익에도 나쁘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다만 국민들이 알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른바 '부동산 책임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공공기관 근로자들의 '주거 환경' 말입니다.

▶ "보증금 무이자 3억 지원"…집값 걱정 없는 한은 직원

한국은행이 운영하고 있는 공관과 사택은 전국에 212곳입니다. '공관'은 총재, 지역본부장 및 국외사무소장 등 고위직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경기도에 한 곳, 비수도권엔 14곳이 있습니다. (이주열 총재는 현재 공관을 이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은이 직접 소유한 사택은 전국에 38곳. 이밖에 직원에게 전세보증금 차원으로 지원해주는 '임차사택'은 159곳입니다. 최대 9년까지 거주할 수 있습니다.

전체 내역을 분석해보니, 임차사택의 80% 이상이 서울과 경기도에 몰려있습니다. 연차가 낮은 직원들을 위한 복지혜택이기 때문에 통상 10년 차 이하인 4급 이하 직원들이 대상입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은행 4급 평균 보수는 1억 원을 조금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은행
한국은행은 방송 리포트 이후 배포한 해명자료에서 사택을 지원받는 직원들이 5급 이하가 다수라고 밝혔지만, 한은이 스스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임차사택을 이용하는 직원 157명 가운데 74명이 4급 직원입니다. 앞서 언급한 자료에 근거해 말하자면 한은 임차 사택 복지 수혜자 절반이 평균 1억 원의 보수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서울 및 수도권에선 최대 3억 원, 비수도권에선 2억 2천5백만 원까지 보증금을 지원받습니다. 각각 보증금이 3억 원, 2억 2천5백만 원 한도 내인 주택만 전세 계약을 맺을 수 있단 겁니다. 경우에 따라 10만 원~30만 원의 사용료를 내는 곳도 있고, 아예 사용료 없이 무상으로 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강남, 송파, 서초 등 이른바 '강남 3구'에 위치한 곳도 여러 곳입니다. 임차 이후 집값이 올라, 매매가가 18억 원을 훌쩍 넘어선 곳도 있습니다. 조정식 의원실과 함께 혜택을 어떻게 계량화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한국감정원에 의뢰해 해당 주택 주변 시세 월세 보증금 평균값을 기준으로 실거래가, 전월세 전환 비율 등을 따져 월세를 전부 추출했습니다.

무상 이용을 제외한 한은 사택 사용료는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 유통수익률에 따라 정해집니다. 임차보증금에 통안증권 유통수익률(1.9%)을 곱하고, 주택을 사용한 연차를 3으로 나눈 값을 곱해 요율을 정합니다. 가령 3년을 살았으면 1, 6년을 살았으면 2, 9년을 살았다면 3이 곱해지는 셈입니다.

그 결과, 감정원에 의뢰한 월세 시세와 비교를 해봤더니 유료 사용 직원들이 납부하는 사용료가 해당 주택 월세 시세의 평균 13%에 그쳤습니다. 이 정도라면 파격적 혜택이라 할 만합니다.

문제는 이런 혜택에 따르는 충분한 내부통제 유인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신청 자격 자체는 까다로운 편입니다. 본인뿐 아니라 동거인이 모두 무주택자임이 입증돼야 하고, 전용면적 85제곱미터 초과 주택을 처분한 다음 날부터 신청하는 날까지 만 2년이 지나야 합니다.

몇 가지 우선적으로 신청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조건들이 있지만 대부분 신청 자격만 만족하면 사내 경쟁 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선지 임차 계약 만료 전에 집을 비워, 사람이 살지 않는 공실인 곳도 서울에 두 곳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임차주택 이용 중엔 계약 만료 시점 전까지 특별한 감시, 감독이 없습니다.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당연히 퇴거해야 하지만, 감사원 등의 사정 기관이 작정하고 감시하지 않는 한 다주택 여부를 알 길이 없는 겁니다. 한은은 "자체적으로 신고하게 돼 있고, 최근 감사에서 지적받은 일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지난 9·13 대책의 핵심은 '다주택자 규제'였습니다. 주택 기보유자에겐 대출을 제한하겠다는 게 금융 당국의 핵심 의제였죠. 은행은 전세 대출자의 주택 보유 현황을 해마다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책임이 강화됐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이자도 내지 않고 보증금 혜택을 받고 있는 한국은행 직원들에겐 '자체 신고'만을 하게 돼 있는 겁니다. 물론 직원들의 선의를 무턱대고 의심할 순 없겠지만, 도덕적 해이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명백히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는 지점입니다.

지원하는 보증금 액수로 따지면 한국은행이 금융공공기관 가운데 높은 편에 속합니다만, 다른 곳도 이런 혜택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은 관계자 역시 여러 차례 "한국은행이 다른 곳보다 그렇게 두드러질 정도로 혜택이 큰 편인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일례로 은행을 감시하고, 사실상 '대출 규제' 키를 잡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자사 직원들에게 최대 2억 7천만 원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용료가 없었으나 감사원 지적 후 일정 액수의 사용료를 납부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은 '눈치보기', 세금폭탄 맞나
보도 이후 시청자 분들의 다양한 반응을 접했습니다. '짐작은 했지만 금융 공공기관의 혜택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부터, '노력한 자에게 충분히 따를 수 있는 보상'이라는 의견을 피력해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기사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좋은 복지는 권장돼야 합니다. 직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좋은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기조를 그릇되었다 비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서민 생존에 직결될 만큼 그 심각성이 부각된 '부동산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임 있는 기관들이 그 위기감을 공유하지 못하는 구조에 놓여있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이것은 비단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번 토요일(20일)은 이렇듯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금융 공기업 필기시험이 있는 날입니다. 많은 수험생들이 동시에 치러지는 10개가 넘는 공기업 입사 시험 가운데 어디를 가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A매치 데이'라고도 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을 수험생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그렇지만, 바늘 취업문을 뚫지 않고도, 집 걱정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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