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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V] "죽이지는 않았다"던 범인의 최후…'사라진 약혼자' 김명철 씨 실종사건

※ SBS 뉴스의 새 스토리텔링 영상 컨텐츠 '보이스V'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와 특별한 콜라보레이션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첫 순서는 많은 시간이 흐르고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지난 사건들을 되짚어보는 '그것이 알고싶다 X 보이스V - 미제 사건(Cold Case)' 시리즈입니다.

■ 8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못한 약혼자…묻혀진 그날의 진실

한없이 다정했던 연인.

걱정 한번 끼치지 않았던 듬직한 아들.

185cm의 큰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김명철 씨는 기업체 연수 강사로 일하던 32살의 밝은 청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넉 달 뒤 결혼을 약속했던 김명철 씨. 그러나 비극은 기별 없이 찾아왔습니다. 상견례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예비신랑 김명철 씨는 홀연히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라진 약혼자' 김명철 씨 실종사건.

8년 전 그날, 김명철 씨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난 2010년 6월 12일 우리나라와 그리스의 월드컵 축구 본선 경기가 있던 날 같이 축구 경기를 보며 응원하기로 했던 남자친구 김명철 씨를 기다리던 박현주 씨(가명)는 밤 11시가 돼서야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명철 씨의 번호가 분명했지만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며 뜬금없이 이별을 통보하는 명철 씨의 문자 내용. 그리고 명철 씨의 전화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여자였습니다.

[당시 걸려온 전화 : "명철 씨 여자친구 때문에 힘든 거 몰랐어? 그 문자 못 봤어? 나 명철 씨랑 잠수탈 거니까 더는 연락하지마."]

아들의 연락을 기다리던 명철 씨의 어머니도 비슷한 시기에 이상한 문자를 받았습니다. 전화번호는 맞는데 띄어쓰기가 엉망인 이상한 말투. 내용은 더 이상했습니다. 돈 문제로 당분간 집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날 그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잊을 수 없는 용의자의 이름

취재진은 사라지기 전 명철 씨의 마지막 행적을 쫓았습니다. 그리고 추적 과정에서 마주한 누군가의 이름.

조 상 필(가명).

명철 씨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약혼녀 현주 씨의 지인 조상필이었습니다. 조상필은 기업 연수 업체에 다니던 명철 씨에게 큰 단체의 연수를 따올 수 있는 사업권을 줄 사람을 소개해주겠다며 같이 만나자고 제안했습니다.

조상필을 만나러 가기 전 명철 씨는 약혼녀 현주 씨를 만나 사용 한도가 큰 신용카드를 빌려 갔습니다. 조상필과 함께 만날 사람에게 접대를 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유였습니다. 약속 장소는 가까웠지만 명철 씨는 조상필의 요구대로 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반 뒤인 오후 5시 38분 명철 씨는 현주 씨에게 전화를 걸어 카드 비밀번호를 물어봤고 현금 100만 원을 인출하는 모습이 은행 CCTV에 포착됐습니다. 그것이 명철 씨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이튿날까지도 명철 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현주 씨는 명철 씨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조상필을 찾아갔습니다. 조상필은 명철 씨와 만난 지 한 시간 만에 헤어졌다며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명철 씨가 끌고 나온 차를 담보로 2천5백만 원을 빌려 갔고 함께 만났던 연수 사업권 브로커 최 실장에게서 선수금과 선불금 명목으로 3천만 원까지 받아갔다는 겁니다.

경찰은 처음에 명철 씨의 실종을 자발적인 가출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지인들은 명철 씨가 큰돈을 빌려 가출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학자금 대출이 명철 씨가 가진 빚의 전부였고 명철 씨 번호로 왔던 문자 내용과 달리 약혼녀 현주 씨와 돈 문제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 거짓 또 거짓…하나씩 드러나는 범죄의 흔적들

이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조상필이 소개해준다고 했던 연수 계약 건부터 문제였습니다.

조상필은 명철 씨가 선수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는데 첫 만남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계약하는 경우는 없다는 게 명철 씨 동료들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취재진의 추적 결과 연수를 의뢰했다는 단체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조현기 / 당시 성남 예총 사무국장 : "각 시마다 하나씩 단체가 있기 때문에 두 개 이상의 단체가 하나로 뭉쳐진 단체는 없습니다."]

명철 씨가 도장을 찍었다는 차용증서는 조상필에 대한 의심을 증폭시켰습니다. 내용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은데 명철 씨의 인감과 지문만 여러 번 찍혀 있던 백지 문서.

약혼녀와 가족에게 보낸 문자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소 명철 씨가 보내던 문자와 달리 띄어쓰기가 전혀 안 돼 있었고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와 비교해봐도 완전히 다른 사람의 말투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사건은 명철 씨의 휴대전화 추적 결과가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실종 이튿날 새벽 명철 씨 휴대전화의 최종 발신 위치는 빈 인테리어 가게 근처로 확인됐습니다.

마지막 약속 장소와 멀지 않은 거리의 이 가게는 명철 씨를 만나기 전 조상필이 급하게 구한 장소였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 : "저기에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봐야 하나요?"]
[김진원 / 당시 성남소방서 상황요원 : "그렇죠. 그 당시에는 만약에 이 지점에 있었을 확률이 굉장히 높은 거죠."]

그날의 진실을 말해줄 중요한 목격자도 등장했습니다. 근처 음식점 주인은 술에 취한 것으로 보이는 한 남자를 두 사람이 부축해 빈 인테리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그 중 한 명이 조상필이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브로커 최 실장으로 알려진 사람의 거짓 신원도 드러났습니다. 기업 연수 사업권을 명철 씨에게 소개해주겠다던 브로커 최 실장의 정체는 야식집 배달원으로 일하던 최대상(가명). 배달원을 브로커라고 속인 사람은 바로 조상필이었습니다.

■ 빈 인테리어 가게에서 쓴 89톤의 물…그는 무엇을 씻어내려 했을까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연수 계약과 브로커. 정체가 탄로 난 '가짜 브로커' 최대상이 자백을 시작하면서 조상필은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습니다. 최대상은 명철 씨를 만나기 전 조상필과 함께 병원 세 곳을 돌며 수면제를 처방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리고 사건 당일 조상필의 부탁대로 명철 씨가 마실 술에 수면제를 탔다고 자백했습니다. 명철 씨가 수면제가 든 술을 마셨고 10분 만에 정신을 잃었다고 최대상은 진술했습니다.

조상필은 명철 씨를 빈 인테리어 가게로 데려온 건 맞지만 술이 깬 명철 씨가 스스로 가게 밖으로 나갔다며 끝내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추가로 발견된 결정적인 증거는 조상필을 살인 용의자로 지목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빈 인테리어 가게 안을 수사한 결과 명철 씨의 모발과 혈흔이 발견된 겁니다.

명철 씨가 조상필의 계획 범죄에 휘말려 숨졌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 궁지에 몰린 조상필은 명철 씨가 약혼녀인 현주 씨와 자신의 사이를 의심했고 이 과정에서 명철 씨와 몸싸움을 벌인 거라고 또 한 번 말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박정호 / 당시 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경위 : "여기에 머리카락이 있는 것은 어떤 싸움 행위 때문에 부딪힌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가게 벽면 아래쪽에서 발견된 혈흔은 공기 중에서 혈액 방울이 퍼져 나가 만들어진 이른바 '비산 혈흔'으로 누군가 누워 있거나 몸을 낮춘 상태에서 피가 빠르게 튄 형태라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명철 씨의 혈흔이 남아 있는 텅 빈 인테리어 가게에서 사용된 엄청난 양의 물. 사건이 발생한 6월 한 달 동안 사용된 물의 무게는 무려 89톤.

평소보다 40톤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지름 1.5cm짜리 수도꼭지를 무려 88시간 동안 계속 틀어야 하는 양입니다. 물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인테리어 가게 아래 댄스 교습소에까지 물이 샐 정도였습니다.

조상필은 빈 인테리어 가게에서 대체 무엇을 씻어내려 했던 걸까요?

■ 폐기물 처리장에서 머물렀던 용의자…그러나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실종 직후 명철 씨의 전화번호로 왔던 문자들. 조사결과 약혼녀 현주 씨와 어머니가 받은 명철 씨의 문자는 모두 조상필이 계획한 거짓 문자로 드러났습니다. 명철 씨의 어머니에게 온 장문의 문자는 조상필이 꾸며낸 내용이었고 현주 씨에게 전화를 걸었던 여자는 조상필이 고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족과 약혼녀가 애타는 마음으로 명철 씨의 연락을 기다리던 실종 다음 날 조상필의 차량은 탄천의 한 폐기물 처리장 근처에서 30분 정도 머물렀습니다. 대형 폐기물과 음식물 쓰레기, 불법 투기물이 처리되는 곳이었습니다. 30분 뒤 떠난 조상필의 차량이 그 다음 향한 곳은 한강 둔치. 경찰이 일대를 수색했지만 발견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김명철 씨 실종 사건의 핵심 용의자였던 조상필은 끝내 살인죄를 면했습니다. 명철 씨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살인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감금과 폭행 혐의가 인정돼 불과 7년 형만 선고 받았던 조상필. 7년간 복역하고 만기 출소했다면 지금쯤 버젓이 밖을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르지만 조상필은 결국 그러지 못했습니다.

김명철 씨 실종 사건이 '그것이 알고 싶다'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지 6개월 뒤 조상필은 2년 전에 일어난 한 사망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화장실에서 알몸으로 쓰러진 채 일산화탄소 질식으로 숨진 28살 박병준 씨.

단순 사고사로 묻힐 뻔했던 사망 사건의 실체는 보험금을 노린 끔찍한 살인극으로 드러났습니다. 월수입 100만 원의 음식점 배달원 박병준 씨가 사망할 경우 17억 원이라는 거액의 보험금을 타게 될 사람은 바로 조상필과 그의 쌍둥이 형이었습니다.

경찰 조사결과 드러나는 술에 탄 수면제와 백지 차용증. 김명철 씨 실종 사건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던 이 사건으로 조상필은 1심 법원에서 무기징역의 중형을 선고 받았고 첫 보도 이후 2년이 지난 2013년 5월 결국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됐습니다.

■ 법의 판결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

자신을 옥죄는 증거가 나올 때마다 말을 바꾸던 조상필은 끝내 한 가지 주장만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조상필 :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거듭된 거짓말로 빠져나가려던 조상필. 보험 살인극마저 사고사로 묻혔다면 조상필은 지금쯤 김명철 씨 실종사건의 대가는 치르지 않은 채 세상을 활보하고 다녔을지도 모릅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결혼을 앞두고 사라진 김명철 씨는 아직도 사랑하는 이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은 조상필의 무기징역 형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게 아닐 겁니다.

(구성 : 장아람)
[보이스V] '사라진 약혼자' 김명철 씨 실종사건…죽이지는 않았다던 범인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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