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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원정화 사건 떠올리는 中의 타이완 여간첩 보도

2008년 8월 검찰청에 출입할 당시의 기억입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기자실에 수원지방검찰청 고위 간부가 방문했습니다. 평소 출입기자들과 친분이 깊은 이 고위 간부는 수원지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서 발표하겠다며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러 온 것입니다. 수사결과 발표를 관할 검찰청이 아닌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다는 건 그만큼 사건을 크게 홍보하겠다는 얘기겠죠? '무슨 사건이기에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일까?' 싶어 관심도가 커지기도 했고, 대검찰청 허락까지 받았다는 이 고위 간부의 의지(?)에 결국 수원지검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수사 결과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미녀 여간첩 원정화 사건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북한판 '마타하리', 성 미끼로 수집한 군사기밀, 영화 '쉬리'의 현실판… 당시 수사팀은 관심을 끌 수 있는 이런 자극적인 표현을 원정화 사건에 갖다 붙였습니다. 검찰·경찰·군·국정원이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해 3년을 내사했다고 소개했습니다. 결국 원 씨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군 장교로부터 군사기밀과 탈북자 정보를 빼내 넘긴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그런데 원 씨가 넘겼다는 정보라는 게 70장 가량의 군인들 명함, 자신과 하나원 동기인 탈북자 6명의 신상 정보, 국정원 위치 정도로 밝혀졌습니다. 북한판 마타하리의 성과물(?) 치고는 무안할 지경이죠? 이후 수사 과정에 강압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고, 당시 광우병 촛불시위로 골머리를 앓던 정부가 사건을 지나치게 부풀린 공작이었다는 얘기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정성엽 월드리포트
갑자기 10년 전 원정화 사건을 소환한 이유는 최근 중국에서 스토리 구조가 흡사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타이완 출신의 여간첩, 연하의 포섭남, 그리고 기밀 빼돌리기…중국 관영 CCTV는 메인 뉴스와 시사 고발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요소를 버무려놓은 듯한 이런 영화같은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2011년 18살 때 교환 학생으로 타이완에 간 샤오저(가명)는 연상녀 쉬자잉을 만납니다. 친분을 쌓은 두 사람은 여행을 함께 다니고 잠자리까지 하는 사이로 발전합니다. 그러던 중 쉬자잉은 샤오저에게 정부 기밀을 요구했고, 샤오저는 국가중점실험에 참여하면서 접하게 된 국방 기밀을 쉬자잉에게 전달했다는 겁니다.

보도에서 중국 당국은 작전명 '2018 벼락 프로젝트'라는 단속을 통해 100여 건에 달하는 타이완 간첩 사건을 적발했다고 밝혔습니다. 타이완내 스파이 조직이 중국 유학생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뇌물을 주거나 성적으로 유혹해 기밀 정보를 요구한다는 겁니다. 여간첩 쉬자잉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한 건입니다. 역시 타이완 군사정보국 소속인 천샤오쯔는 타이완내 여러 대학을 돌며 많은 중국 유학생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기밀을 빼돌렸고, 린자푸는 기금회 활동을 핑계로 중국 유학생들에게 접근했다고 방송은 전하고 있습니다. 
[월드리포트] 원정화 사건 떠올리는 中의 타이완 여간첩 보도/수정
CCTV는 쉬자잉의 실명과 사진까지 모두 공개했고, 다른 중국 매체들도 일제히 관련 보도를 뒤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매체들은 타이완에서 정치학이나 국방 관련 공부를 하는 중국 대학생들에게 타이완 정보기관의 포섭 공작을 특히 조심하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타이완 국방부 대변인은 "보도 내용이 근거가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또 "중국측에 장단을 맞춰주지 않겠다"며 더 이상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4년에도 똑같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괜히 맞대응했다가 일을 더 키우는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론 타이완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 태도로 미뤄봤을 때, 아예 존재조차 없는 날조된 사건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 유학생들한테서 빼낼 수 있는 국가 기밀이라는 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의심스럽긴 합니다.
정성엽 월드리포트
'하나의 중국' 원칙에 호응하지 않는 타이완의 차이잉원 정부가 들어선 뒤 타이완을 향한 중국의 압박은 여러 형태로 진행 중입니다. 최근 들어 그 방법도 다양해지고, 강도도 더 높여가는 분위기입니다. 타이완 미녀 여간첩 보도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국제 사회엔 타이완의 비도덕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중국 내부적으론 엄혹한 정치적 분위기와 무관하게 비교적 자유로운 인적 교류 분위기를 다잡는 효과를 기대하는 건 아닐까요? 목적과 의도를 갖고 사건을 부풀리는 공안 사건의 기본 공식에 충실한 모습이 이번 타이완 여간첩 보도에서 원정화 사건을 떠올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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