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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남북 軍 '육해공 적대금지' 의견일치…北 유연성 발휘해야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8.09.15 15:36 수정 2018.09.17 19:3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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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남북 軍 육해공 적대금지 의견일치…北 유연성 발휘해야

그제(13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서울안보대화 기조연설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습니다. "남북 간에 전쟁위험요소를 근본적으로 해소해 나가기 위해 지상, 해상, 공중에서의 상호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문제와 함께,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와 안전한 어로활동 보장을 위한 서해 평화수역 설치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 실장이 기조연설을 할 때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는 남북 군사당국 간 실무접촉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정상회담의 군사 분야 합의안을 도출하기 위한 막판 협상이었습니다. 정 의장의 언급은 남북 군당국이 육해공 적대행위 금지 방안을 상세하게 협의하고 있다는 확인이었습니다.

군사 실무접촉은 17시간 만인 어제(14일) 새벽 3시에 끝났습니다. 국방부는 "남북 군사당국은 (정상회담) 합의서에 포함될 다양한 사안에 대해 상호 입장을 확인하고 관련 문안을 조율했다"고 건조하게 회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리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이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개소식에서 묵직한 말을 내뱉었습니다. "어젯밤에도 북남 군사회담 그거 해가지고 좋은 합의도 이룩했고, 만나면 다 좋은 합의들이 이룩됩니다."

정의용 실장이 "지상, 해상, 공중 적대행위 금지를 구체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했고 남북 군사 실무접촉이 끝나니 리선권 위원장이 "좋은 합의가 이뤄졌다"과 화답한 겁니다. 육상 즉 비무장지대 DMZ의 평화지대화, 해상 즉 서해 북방한계선 NLL의 평화수역화, 공중 즉 전방 비행금지 구역 확대를 위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 'NLL DMZ 사격금지·비행금지' 의견 접근

북한은 지난 6월 열린 장성급 회담에서 공세적 제안을 꺼내 들었습니다. NLL 남북으로 각각 20km와 군사분계선 MDL 남북으로 각각 40km 안쪽에서 사격 금지, 그리고 MDL 남북으로 각각 60km 안쪽에서 비행 금지입니다. 등거리(等距離), 등면적(等面積)에 대해 사격과 비행을 금지하자는 제안이니 일견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속뜻은 전혀 다릅니다. NLL 남북 20km 안쪽을 사격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면 서북도서의 해병대는 사실상 무장해제됩니다. 북측은 NLL 이북 육지의 지상 전력을 살짝만 뒤로 물리면 그만입니다.

MDL 비행 금지는 공중 감시정찰자산이 대상인데 북한은 그런 자산이 빈약해 사실상 남측에게만 적용됩니다. MDL 주변 사격 금지는 남북의 화력을 철수하자는 뜻입니다. 북측 장사정포는 뒤로 그 정도 빠져 앉아도 MDL에서 가까운 서울 타격이 가능하지만 남측 자주포와 다연장로켓은 MDL에서 140km 떨어진 평양은 물론 북측 장사정포에 대한 공격도 어려워집니다.

6월 장성급 회담에서 우리측 대표단은 북측 제안에 난색을 표했습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북한식 사격 금지, 비행 금지는 북한이 안 될 줄 알면서도 매번 꺼내드는 레퍼토리"라며 "그때마다 응수하는 우리측 방식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새벽까지 17시간 동안 마라톤 실무협상을 통해 불가능할 줄 알았던 사격 금지와 비행 금지 방안에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NLL 평화수역화를 위해 완충지대를 형성할 계획"이라며 "우선 NLL에 일정한 지역을 정한 뒤 사격을 금지하는 데 합의를 봤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MDL 주변 비행 금지와 사격 금지도 이견이 상당히 해소됐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제안을 그대로 받았을 리는 만무한데 지상, 해상, 공중의 어느 선에서 조율됐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군은 "추가적으로 논의할 게 좀 더 남았다"는 입장입니다.
군사회담 전체회의● 관건은 北의 유연성

그동안 군사회담은 정상회담의 계륵(鷄肋)과도 같았습니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에 관여했던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군사회담은 정상회담 성과들이 다 정리된 뒤에 하는 게 낫다"며 "군사회담만 하면 남북이 멱살을 잡는 통에 정상회담 성과들조차 지키기 아슬아슬했다"고 말했습니다. 적대행위 금지 이슈 하나하나가 제로 섬(zero-sum) 게임 같아서 서로 양보해야 하는데 양측 모두 안보가 걸린 사안이라 꿈쩍도 안했던 겁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다릅니다. 비핵화와 함께 군사분야 합의가 주(主)가 될 전망입니다. 외교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해 남북 경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제 제재와 상관없이 남북 합의로 이행할 수 있는 군사적 긴장완화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부각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군사회담의 역할이 큽니다.

남북 군사당국은 정상회담 전날까지도 통신선을 이용해 협상을 이어갑니다. 디테일들을 조율하고 정리해서 평양 정상회담으로 넘긴다는 계획입니다. 남북 정상의 평양 공동선언이 발표될 때까지 평양에서도 막판 초치기 협상은 계속됩니다. 지상, 해상, 공중 적대행위 금지를 위한 기준선들이 합리적으로 그어지지 않으면 군사 분야가 정상회담 성과를 흔드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등거리, 등면적 군축이라는 기존 주장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등질(等質)적 군축을 받아들여야 상호 군사적 신뢰를 높이고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의미 있는 성과가 도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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