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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MB 재판 ⑮ - 꼬리로 몸통을 흔든다

MB재판 쟁점 정리

[취재파일] MB 재판 ⑮ - 꼬리로 몸통을 흔든다
아시안게임 이전에 '인맥축구' 논란에 휩싸였던 황의조 선수는 이제는 '갓의조'라고 불립니다. 탁월한 공 결정력과 몸놀림을 본 축구팬들은 '저 선수가 왜 이전에는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않았었냐'고 의구심을 가질 정도죠. 황 선수가 인맥축구 논란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 했다면 당연히 기량을 뽐낼 기회도 가지지 못 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갓'이라고 부르는 축구팬 중 상당수는 아직 황의조 선수의 존재도 몰랐을 수 있을 겁니다.

재판으로 치면 국가대표 선발은 '증거 능력 인정'으로, 기량은 '증명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가 있다고 하더라고 국가대표에 선발이 되지 않으면 국가대항전에서 기량을 보여줄 수 없듯이, 재판에서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으면 증명력을 평가받을 수조차 없습니다.

물론, 증거 능력이 있다고 무조건 증명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 축구에서 엄청난 기량을 가졌다며 국가대표에 선발됐지만, 막상 경기를 뛴 후에는 국내용이었다고 혹평을 받는 선수가 있는 것처럼 증거 능력은 있지만 증명력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아무리 증명력이 뛰어난 증거가 있다고 해도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초'로까지 불렸던 '안종범 수첩'의 증거 능력 유무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영포빌딩 (사진=연합뉴스)
● MB 측, "영포빌딩 압수수색은 위법"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재판 쟁점 변론에서도 증거 능력 유무를 놓고 검찰과 이 전 대통령 측의 공방이 오갔습니다. 대상은 영포빌딩에서 발견된 3402건의 문건. 검찰은 영포빌딩을 3차례에 걸쳐 압수수색했는데, 이 전 대통령 측은 압수수색이 적법하게 진행되지 않아 검찰이 압수한 문건들은 증거 능력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1차 압수수색은 영장에 기재된 장소를 넘어선 압수수색이라 위법하고, 2차 압수수색은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무관한 기록들을 압수수색해서 위법, 3차 압수수색은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이 없는 가운데 진행돼 위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3차례에 걸친 검찰의 압수수색이 모두 위법하다는 것으로 3402개 문건은 증거 능력이 없다는 취지입니다.

특히, 2차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삼성의 다스 미국 소송비 대납과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 비자금 횡령 혐의에 대한 자료를 압수하라며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는데, 검찰은 당시 압수수색을 진행한 수사관의 판단에 따라 혐의와 무관한 자료까지 압수해 갔다"며, "그것 은 형사소송법의 영장주의를 없애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병모 사무국장이 참여하지 않은 3차 압수수색은 "완벽하게 위법하다"고도 덧붙입니다.

● 검찰 "모두 다 적법한 압수수색"

검찰의 입장은 정반대입니다. 검찰은 1차 압수수색 당시 "한 사무실에서 피고인의 개인 서신 등 다스 관련 청와대 문건을 발견했지만, 이병모 국장이 다스 임차 사무실이 아니라며 압수를 반대해 압수하지 않았다"며, "적법성 시비 차단을 위해 추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한 만큼 1차 압수수색은 적법하다"고 주장합니다.

2차 압수수색은 다스의 미국 소송과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 등에게 업무를 담당하게 하거나 횡령 혐의와 관련된 자료 확보를 위해 영장이 발부됐습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압수해 간 문건 중 일부는 영장에 기재된 혐의를 벗어나 불법이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횡령 등 범행의 동기를 입증하기 위한 자료들이기 때문에 적법한 압수였다고 주장합니다. 혐의 입증을 위해 압수수색의 대상물을 폭넓게 볼 수 있다는 겁니다.

3차 압수수색은 2차 압수수색 때 적법하게 압수해 간 자료들을 좀 더 세밀하게 분류하고 증거 능력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미 압수된 자료들에 대해 추가 압수수색이 발부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2차 압수수색 당시) 적법하게 압수된 자료들에 대해서 추가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돼 집행된 것은 적법한 것"이라는 겁니다.
영포빌딩, 다스
● 압수수색 위법성 놓고 공방을 벌인 이유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신 분들 계실 겁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이라는 혐의가 아닌 해당 기록물 압수수색의 적법성을 두고 검찰과 이 전 대통령 측이 주된 공방을 벌인 모습 말입니다. 해당 혐의에 대해 이 전 대통령 측은 당시 청와대 담당자의 실수였다고 간단히 대응할 뿐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검찰은 유출된 문건이 수천 건이고, 내밀한 자료도 많은 데 이 전 대통령 승인 없이 이행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맞서지만 말이죠.

이 전 대통령 측이 압수수색의 적법성을 공격하는 건 압수된 자료들의 증거 능력을 부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영포빌딩에서 압수된 자료들 중에는 다스 실소유주 의혹, 삼성의 다스 미국 소송비 대납 혐의 등과 같이 이 전 대통령의 주요 혐의를 입증하는 듯 한 자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압수수색이 적법하게 집행되지 않아 해당 문건들의 증거 능력이 부정된다면, 이 전 대통령 측 입장에서는 뇌물, 횡령 등 주요 혐의를 방어하기가 한결 수월해 집니다. 꼬리로 몸통을 흔들겠다는 겁니다.

이 전 대통령 측이 압수수색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증거 능력을 부정하려고 하는 대표적인 문건이 'PPP 기획안'과 'VIP 보고사항' 문건입니다.

이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위한 계획안으로 알려진 'PPP(Post Presidency Plan) 기획안'은 검찰이 김백준 전 기획관 등이 작성해 이 전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는 문건입니다. 이 문건에는 이상은 다스 회장의 보유 지분을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에게 넘겨주는 방안 등이 담겨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가 아니라면 계획할 수 없는 문건으로, 다스는 이상은 회장 소유라는 이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부정하는 주요 증거물입니다.

김석한 변호사가 김백준 전 기획관을 통해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VIP 보고사항' 문건에는 다스의 미국 소송비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문건에는 다스의 미국 소송비로 연간 수십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백만 달러가 드는데, 그 돈은 삼성전자가 내기로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에이킨 검프의 다스 미국 소송 대리는 무료 변론으로 알았다는 이 전 대통령 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지난 6일 결심 공판에서 16개 혐의 전부를 부정하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직접 최후 진술에서 "부당하게 돈을 챙긴 적도 없고, 공직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탐한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런 증거 없이 가정을 근거로 죄를 만들고, 다른 일과 연관 지어 비리로 엮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검찰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 전 대통령의 주장을 재판부는 어떻게 판단할지, 결과는 다음 달 5일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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