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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 ① - '감옥서의 묘지'가 어딘가?

[취재파일]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 ① - '감옥서의 묘지'가 어딘가?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뤼순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국권이 회복된 조국에 묻어달라'는 안 의사의 유언은 안타깝게도 108년이 지나도록 받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2008년 뤼순감옥 뒷편 일대에서 유해발굴 조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 상태로 10년의 세월만 더 흘렀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어디에 묻혀 있는 걸까요? 지난주 안 의사 탄생 139주년을 맞아 뤼순감옥을 찾아가 안 의사의 마지막 흔적을 하나하나 되짚어봤습니다.
뤼순 감옥 박물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108주기 추모식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한 안 의사는 11월 3일 뤼순감옥에 수감됐습니다. 안 의사가 내린 뤼순역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안 의사는 순국 날까지 144일을 뤼순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수감 전부터 안 의사는 일제의 특별 경계 대상이었죠. 일제의 사형집행명령서엔 안 의사를 독방에 구금하고, 간수를 늘려 감시를 강화하라는 지시가 담겨 있습니다. 법원에 출정할 때는 압송마차를 따로 준비해 외부에 노출되는 걸 차단했습니다. 심지어 안 의사에 대한 사형을 확정한 뒤 예정했던 사형집행일도 연기했습니다. 순종 황제의 생일인 3월 25일 사형을 집행할 경우 민족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만큼 일제는 안 의사의 죽음이 항일 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걸 두려워했다는 얘기입니다.
뤼순 감옥 전경
사형집행일인 3월 26일 상황은 비교적 상세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형집행에 참여했던 통역관 소노키 스에키가 남긴 '사형시말보고서'가 그것입니다. 오전 10시 안 의사는 '동양평화 만세' 삼창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하고 2~3분간의 묵도만 올렸습니다. 10시 4분, 안 의사의 목에 올가미가 걸어졌고, 10시 15분 검시관이 절명을 확인했습니다. 10시 20분 안 의사의 시신은 침관에 안치돼 감옥 내 교회실로 운구됐습니다. 실제 뤼순감옥 사형실에서 교회실까지 가는 길을 걸어보니 불과 몇 분 거리였습니다. 교회실에선 안중근 의거 동지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를 불러 한국식 특별예배를 진행했고, 당일 오후 1시에 시신을 감옥서의 묘지에 매장했다고 소노키 보고서는 적고 있습니다.
뤼순 감옥 전경 사진 (1910년 당시)
소노키 보고서를 살펴보면 의아한 점이 생깁니다. 사형 집행될 때까지 과정은 상당히 자세하게 적혀 있지만, 정작 유해를 매장하는 과정은 생략됐습니다. 즉 유해가 교회실까지 옮겨질 때까지는 분 단위로 기록했지만, 교회실 특별예배 이후 과정은 아무런 기술도 없이 '감옥서의 묘지에 매장했다'는 결과만 남아 있습니다. 적어도 특별 예배가 끝난 뒤 매장을 끝냈다는 오후 1시까지, 약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이 생략된 셈입니다. 예배가 끝난 뒤 매장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건데, 개인적으론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느낌입니다. 유해를 운구하는 준비 과정이 오래 걸린 걸까요? 매장지까지 거리가 다소 먼 거리였을까요? 매장지에 도착한 뒤 매립하는 시간이 많이 걸린 걸까요?

분명한 건 일제가 일부러 이 부분을 누락했을 거란 의심이 강하게 듭니다. 일제는 애초부터 안 의사의 유해를 가족들에게 넘기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감옥법까지 어겨가며 안 의사 시신을 외부로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억지를 부렸던 거죠. 행여 안 의사의 유해가 항일 운동의 성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안 의사의 시신 매장 과정도 의도적으로 상술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결국 소노끼 보고서에서 남은 유해발굴 단서는 '감옥서의 묘지'만 남았습니다. 소노키 보고서 외에 안 의사의 사형집행 소식을 전한 당시 일본 매체들은 안 의사의 매장지를 '공동묘지', 뤼순감옥묘지', '감옥공동묘지'라고 표현했습니다. 결국 안 의사 유해발굴의 핵심은 '(뤼순)감옥(서) (공동)묘지'가 어디냐는 걸 찾는 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안 의사 유해 매장지 관련해선 도쿄 매장설, 이토 히로부미 무덤 옆 매장설, 하얼빈 공원 매장설, 수장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안 의사 유해발굴 과정 중단이 만들어낸 말 그대로 '썰'에 불과하다는 게 유해 발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각각의 설을 뒷받침할 만한 최소한의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섭니다. 때문에 일제가 남긴 문서에 근거한 뤼순감옥 공동묘지 매장, 당시 명칭으론 '관동도독부 감옥서 공동묘지'에 유해 발굴 조사를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100년이 지난 시간 동안 뤼순감옥 주변에도 묘지로 쓰였던 장소가 몇 군데가 있었고, 안중근 의사 유해 지점을 정확히 특정할 사료가 부족한 점이 안 의사의 유언을 받들지 못하고 있는 후손들을 애타게 하고 있습니다.

[취재파일 -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
▶ ① - '감옥서의 묘지'가 어딘가?
▶ ② - 주목해야 할 '둥산포' 묘지
▶ ③ - 최후 형무소장 '타고지로'의 악행
▶ ④ - "안중근 의사는 침관에 누워 계신다"
▶ ⑤ - "어렵고 힘들다"는 건 국민도 다 압니다
▶ ⑥ - 안중근 기념관은 돌아오는데…
▶ ⑦ - 사라진 안 의사 가족의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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