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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계속되는 '카톡방 성희롱'…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취재파일] 계속되는 '카톡방 성희롱'…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사방이 하얗게 칠해진 넓은 공간 속 여러 남성에 둘러싸여 있는 한 여성이 보입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입니다. 도망치려 발버둥 치지만 땅에서 발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아무리 악을 써봐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여성은 이곳에서 벗어나려 악을 쓰다 다리에 쥐가 날 때쯤에야 눈을 뜹니다.

20살 여대생 A 씨가 최근 지속적으로 꾼다는 악몽입니다. 악몽의 시작은, 지난해 11월, A 씨가 남자친구의 노트북을 빌려 쓴 날로 돌아갑니다. 우연히 보게 된 남자친구의 페이스북 메시지 창에 자신을 성적 대상화하는 대화들이 가득했던 겁니다. 이같은 대화가 한두 차례에 그치지 않았을 거라고 판단한 A 씨는 남자친구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도 요구했습니다. 지난 2년간 남자친구가 자신의 동아리 친구들과 나눈 대화엔 자신의 사진들이 버젓이 올라있었고, 이에 대한 성적인 대화는 물론 자신의 몸매에 대한 평가, 성관계에 대한 묘사까지 있었습니다.

[A 씨/'카톡방 성희롱' 피해자]
그걸 보고 머리가 하얘지면서 빙빙 돌면서 숨이 안 쉬어졌어요. 제 셀카를 친구들에게 보내고…알아듣기 어려운 용어들도 많았어요. 보면서 '이게 무슨 말이냐'고 친구한테 물어본 적도 있거든요. 알고 난 뒤엔 더 충격이었어요. 내용이 너무 많아서 읽다가 너무 힘들어서 아직도 다 못 읽었어요.


A 씨는 대학교 내 인권단체를 통해 문제를 공론화했고 가해자들은 각 대학 징계위원회에 회부됐습니다.

● "왜 나를 사람으로 안 봐줄까"…정신적 피해 호소하는 피해자들

대학생 B 씨 또한 지난 2015년 말 가해자들이 있던 동아리 단체 카톡방에서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합니다. A 씨의 성희롱 피해 건과 같은 가해자들입니다. 남학생 10여 명 정도가 있던 카톡 대화방에서 가해자들은 B 씨의 사진을 공유하며 성적 대상화하는 등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했다는 겁니다.

올 여름, 사건 당시 해당 카톡방에 참여했던 다른 남학생이 "부끄럽고 또 잘못됐다고 생각해 내부 고발한다"며 피해 여학생에게 대화 내용을 모두 보내왔습니다. B 씨는 이들이 자신에 대해 나눈 대화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 나갔습니다.

[B 씨/'카톡방 성희롱' 피해자]
수위가 심했다는 건 전부터 들었거든요. 막상 대화 내용을 직접 읽으니까 되게 화나더라고요. 거기서 제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대해지니까. '왜 나를 이렇게 사람으로 안 봐줄까' 그게 되게 억울하고 화났던 것 같아요. 혼자 침대에 틀어박혀서 10시간 동안 있기도 하고 그랬는데 한참 동안 화도 나고 많이 우울했었죠.


● '상위 0.1%' 가해자들…"의대생에 3개월 정학은 가혹" 반발

단체 카톡 대화방과 1:1 대화방에서 피해 여학생들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가해자들은 모두 같은 동아리 소속입니다. 가해자들이 활동한 동아리는 한 유명 인터넷 입시 커뮤니티 내부 동아리로, 수능 및 모의고사 성적 '상위 0.1%'만이 가입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주요 과목의 표준 점수 합산점이 전국 석차 상위 0.1% 안에 들었다는 사실을 성적표 제출을 통해 증명해야만 가입이 가능합니다. 상위권 학생들끼리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겠다고 만난 곳에서, 일부 학생들에 의해 '카톡방 성희롱'이 이뤄진 겁니다.

A 씨의 사건이 공론화되고 여러 명의 가해자들 가운데 의·치대생 2명은 이미 학교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각각 1개월과 3개월의 정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3개월 정학 처분을 받은 A 씨의 전 남자친구는 "카카오톡 내용은 유출된 것이 아니라 A 씨가 강제로 가져간 것"이라며 징계 무효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B 씨/'카톡방 성희롱' 피해자]
이 동아리엔 소위 말하는 '상위권 대학교' 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거든요. 저에 대해 성적 대상화를 하고, 이들의 이야기에 'ㅋㅋㅋ'하며 웃던 학생들 중에선 훗날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는 애들도 있을 거잖아요. 이들이 한 일에 대해 드러내고 제대로 처벌받게 하고 싶어요.

카톡방 성희롱, 카톡
B 씨는 "가해자들에 대해 어떠한 민·형사상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면서도, 동시에 "그래봤자 이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나 할까 걱정된다"며 두려움을 나타냈습니다.

● "남자친구 잘 챙겨주라"는 경찰까지…계속 되는 '외로운 싸움'

다시 A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A 씨가 지난해 11월 성희롱 피해를 당한 뒤, 스스로 나서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까지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갓 대학에 들어온 20살 A 씨가 부모님 도움도 없이 혼자 법적 대응을 하기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A 씨는 대학교 내 설치된 인권 보호단체나 학생회 등 여러 기구들의 도움을 받는 게 낫다고 판단했고, 여러 단체들을 찾아다니며 매번 피해 상황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야 했습니다.

여기에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협박해오는 남자친구를 떨쳐내는 것 또한 A 씨에겐 쉽지 않은 과제였습니다. 실제로 A 씨의 남자친구는 지난 겨울, 유서를 써놓고 한강에 뛰어들겠다고 해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두려움에 떨던 A 씨에게 경찰은 "남자친구가 많이 힘든 것 같으니, 옆에서 잘 챙겨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A 씨/ '카톡방 성희롱' 피해자]
경찰이 그냥 남자친구 많이 힘든 것 같으니까, 옆에서 잘 챙겨주라고. 따로 이렇게 불러서... (유서를) 받아서 보고 엄청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남자친구가 언제든지 죽어버릴 거라고, 자기가 연락이 안 되면 진짜 죽을 수도 있는 거라고 맨날 그런 얘기를 했어요.


남자친구의 유서를 받아든 A 씨는 이들의 카톡방에서 있었던 일을 공론화하는 데 대해 본인이 지나치게 예민한 건지, 불필요한 과민반응을 해 한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건 아닌지 수없이 고민해야 했습니다. 자초지종도 모른 채 '사랑싸움' 취급하는 경찰 앞에서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한 대학 내 인권 단체를 통해 문제를 공론화한 뒤에도 A 씨는 가해자들의 징계위원회에 직접 참석을 하면서, 이들의 행동에 걸맞는 수준의 처벌이 내려지도록 하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카톡방 성희롱'

단체 대화방은 물론, 1:1 대화방이라 할지라도, 카카오톡과 같은 SNS 메시지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대화 내용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경로든 가해자들끼리 공유한 피해자의 사진과 이에 대한 음담패설이 유출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는 겁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의 성적인 말과 행동에 불쾌감과 굴욕감을 느껴도, 이들을 '성희롱'으로 처벌할 수 있는 관련 법률은 없습니다. 현재 법률로는 '특정 단체 내에서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관련성이 있어야만' 형사 처벌이 가능합니다. A 씨와 B 씨 같은 피해자들의 경우 성희롱 관련 법률이 아닌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가해자들을 고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서승희/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사실 성폭력이라는 개념에는 특별히 다른 어떤 정의가 있는 게 아닙니다. 성폭력, 즉 성과 관련된 폭력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사건의 피해자도 분명 폭력의 피해자로서 고통을 호소하고 계시고, 이 폭력의 과정에서 명백히 성과 관련된 이슈가 나왔기 때문에 이는 성폭력이 되는 겁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성폭력을 매개하는 공간이 카카오톡 같은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으로 넓혀졌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도 어떤 법적 처분이 나올지 확신할 수 없지만, 이것이 범죄화되지 않은 폭력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A 씨는 인터뷰 도중 결국 눈물을 보였습니다. 가해자인 전 남자친구의 정학 기간이 끝나면 다시 그를 학교에서 마주해야 합니다. 더 무서운 건 우연이라도 환자가 되어 의사가 된 그를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만에 하나 제가 걔네가 의사로 일하는 병원을 찾게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거기다 걔네가 사회에 나갔을 때 또 다른 피해자들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병원 내 성희롱이나 성추행 관련 기사도 종종 나오잖아요."

끊이지 않는 SNS 성희롱과 관련해, 카카오톡 등 SNS 메신저와 게임 채팅방에서의 성희롱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의 법안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중입니다. 그런 와중에 A 씨의 악몽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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