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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제 비관적으로 보면 안 돼"…공허한 훈계

[취재파일] "경제 비관적으로 보면 안 돼"…공허한 훈계
고용 소득 성장률 등 부정적인 경제지표가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성적표가 기대보다 낙제점인 걸로 드러나자 급기야 경제지표는 정치적인 쟁점이 됐습니다. 잘하려고 했는데 지난 10년 동안 워낙 엉망이어서 이렇게 됐다는 전 정권 탓에다, '통계가 맞나 틀리나' 해석 싸움까지 가세했습니다. 각자 원하는 기준을 택하고, 비교 시점을 정해 통계를 달리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내가 맞다 네가 맞다 다투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경기 부진 상황이 '누구 탓'이냐 하는 걸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지금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일반 서민들에게 이런 논쟁이 무의미해 보이는 이유도 침체된 경제 상황을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자리가 사라진 일용직들은 당장 먹고 살기 힘들다, 집값 오르는 거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청년들은 취직하기 더 어려워진다, 서민들은 과연 내 집 마련은 꿈일까, 모두 매일의 삶에서 악화된 경기지표를 체감합니다.
고용쇼크 6개월

어제(28일) 한국은행은 '소비자심리지수(CCSI)'를 발표했습니다. 거시지표, 실물지표에 비해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 경제 상황에선 상당히 중요하고 유의미한 지표입니다.

요약하면 소비자심리지수가 1년 5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는데, 지수가 기준치인 100을 넘지 못했다는 겁니다. 7월 CCSI는 99.2로 한 달 전보다 1.8포인트 떨어졌는데, 지수가 100 아래로 떨어진 건 지난해 3월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100이 기준점이란 건 그 아래로 가면 경기를 비관하는 소비자가 낙관하는 소비자보다 많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즉 경기 부진이 계속 이어지면서 앞으로 한국 경제가 어떨 것으로 보느냐는 데 대해 '비관론'으로 돌아선 소비자들이 더 많아진 것입니다.

한국은행은 이 지표에 영향을 미친 요소로 취업자 증가폭, 폭염으로 인한 생활물가 고공행진,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외식물가 상승과 같은 대내적인 요소와 미중 무역 갈등 터키발 악재로 동요한 금융시장 등 대외적인 요인을 동시에 꼽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이 심리지수가 왜 중요할까요. 소비자심리지수 악화는 실제 소비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습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과거 조사한걸 보면 이 지표는 실제 소비보다 1분기 정도(3개월) 선행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 흔히들 하죠.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속도는 경기가 하강 국면에 있을 때 더 빠른 경향이 있습니다. 기대심리보다는 부정적인 비관, 박탈감이 더 빠르게 퍼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경제적으로 합리적 선택만을 하는 게 아닙니다. 불안감에 따른 사재기, 군중심리 등의 사례에서 보듯 행동경제학자들은 정부가 효과 있는 경제정책을 펼치려면 인간의 심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심리'를 사람들의 그저 마음가짐, 기분쯤으로 여긴다면 심리지표를 소홀히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경제는 수요 공급으로 결정되는데, 변덕스런 심리적 지표를 상수로 취급할 수 없고, 부수적인 거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경제의 수요 공급 개념은 어떤 경제 상황, 환경, 거래조건 하에서 얼마만큼 사겠다, 팔겠다 하는 사전적 계획입니다. 그 계획들이 거래조건별로 하나씩 찍는 점이 곡선이 되고, 수요 공급 곡선이 서로 만나는 접점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거죠.

경기가 살아나고 있을 때는 더 많이 만들어 공급하고 더 많이 사들이려고 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엔 소비자는 지출을 줄여야겠다 생각해 수요를 줄이고, 자연히 공급자도 안 팔릴 것을 생각하니 생산을 줄입니다. 그런 사전적 대비가 행동으로 이어지면 실제로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게 됩니다. 심리는 시간을 두고 실물에 반드시 영향을 줍니다. 기업이 투자 계획을 짤 때도 향후 전망을 좋게 본다면 더 투자하고, 더 고용하고, 경영상 의사 결정도 확장적으로 잡게 됩니다.

심리지수가 실물지표와 얼마나 연관돼 있느냐는 위에서 언급한 7월 CCSI 부동산 지표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전체지표가 100이하로 떨어지는 비관적 전망 속에도 부문별 심리지수 중 주택가격 전망 CSI는 109로 역대 최대인 11포인트가 뛴 겁니다. 최근의 비정상적인 서울 집값 과열 현상이 고스란히 반영돼있습니다.
김동연 (사진=연합뉴스)

그럼 과연 정부는 현재 경제주체들의 심리지표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쉽게도 충분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내년 예산안 계획을 밝히면서 김동연 부총리는 "최근 고용과 분배지표가 좋지 않다고 해서 우리 경제 자체를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김 부총리는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생각을 국민과 기업, 시장이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제 주체의 심리는 '가져야 한다' '비관하는 건 옳지 않다'라는 충고와 지적으로 바뀔 수 없습니다. 마음이 그런데 왜 마음가짐을 그렇게 갖느냐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거죠. 경제주체들이 현 경제상황을 놓고 각각의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가 형성되는 겁니다. 경제상황을 좋게 만들고, 그래서 심리가 우호적으로 바뀌길 기대해야지, "좋은 마음을 가져라" "나쁜 생각 갖는 건 옳지 않다"는 훈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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