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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51 : 한 조각 꼬부라지는 여유를…피천득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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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많았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 <인연>

대개 들어봤고 몇 편은 읽어봤을 법한 그 '국민 수필', 고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인연]을 읽습니다.

피천득 선생은 1910년 5월에 태어나 2007년 5월에 별세했습니다. '오월'이라는 제목의 수필과 '창밖은 오월인데'라는 시를 남기기도 해 '5월의 작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8월이긴 하지만 폭염과는 꽤 거리가 멀었던 5월이 그립습니다. 나무로 된 화병에 어디서 꺾어온 듯한 나뭇가지가 꽂혀 있고 하얀 초와 금속으로 된 그릇이 놓인 책 표지는 소박하고 정갈하니 꼭 선생의 책상이요, 수필이요, 삶 같습니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오월>

"이름 쓴 까만 운동화, 깨끗하게 씻어 논 파란 고무신, 흙이 약간 묻은 탄탄히 삼은 짚신,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 - <나의 사랑하는 생활>

"주사가 아닌 나는 피 선생 하면 된다. 어떤 피 선생이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설사 있더라도 키 작은 피 선생이라 하면 그만이다. 이는 김가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 <피가지변>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돈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돈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찌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은전 한 닢>

"덕수궁 박물관에는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수필>


*출판사 민음사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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