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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노인의 지혜가 2살 어린이 살렸다

● 일본, 2살 어린이 실종 사건
실종됐던 후지모토 요시키 군 (2살)
노인의 경험과 감각이 어린 생명을 구했다. 일본 야마구치 현에서 실종됐던 2살 어린이를 구해낸 78살 자원봉사자가 화제가 되고 있다.

올해 2살인 후지모토 요시키 군이 행방불명된 것은 지난 12일 오전 10시쯤. 일본 야마구치현 스오오시마쵸에 있는 할아버지(66살) 집 부근에서였다. 스오오시마는 섬이고 요시키 군 할아버지의 집은 바닷가에서 4백 미터쯤 떨어진 시골 마을에 있다. 12일 아침 할아버지와 3살 난 형과 함께 바닷가로 향하던 요시키 군은 100미터쯤 가다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혼자서 발길을 되돌렸다. 그리고 요시키 군은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사라졌다.

가족들이 곧바로 실종신고를 냈고 경찰관 등 연인원 550명이 동원돼 주변을 이틀 동안 샅샅이 뒤졌지만 요시키 군을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 미호 씨는 마을 방송을 통해 이틀 동안 요시키 군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요시키 군이 실종된 날은 만 2살이 되는 생일. 가족들은 사흘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요시키 군의 할아버지 집 주변은 바닷가에서 야산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 금세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요시키 군의 행적을 찾지 못하자 가족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 78살의 자원봉사자
자원봉사자 오바타 씨 (78살, 일본 오이타현 거주)
규슈 오이타현 출신 오바타 하루오 씨(78살)는 요시키 군 실종 뉴스를 보고 14일 스오오시마쵸로 건너왔다. 바다를 건너 마주 보는 지역이지만 차를 타면 3백 킬로미터를 돌아와야 하는 거리다. 요시키 군이 실종된 지 나흘째로 접어드는 15일 새벽. 오바타 씨는 실종 장소 주변을 돌아보러 새벽길을 나섰다. 오바타 씨는 나무에 덮인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요시키 군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요시키 군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에서 56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오바타 씨는 다시 한번 목이 터져라 요시키 군의 이름을 불렀다. 바로 그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할아버지, 여기 여기"기어들어가는 아이의 목소리가 숲 속 오솔길 아래 개울 쪽에서 희미하게 들렸다. 오바타 씨가 작은 목소리를 찾아 덤불을 헤치고 물가로 내려가자 요시키 군이 기운 없는 얼굴로 물가에 앉아 있었다. 오바타 씨가 요시키 군을 데리고 마을로 돌아오면서 일본 전국이 들썩였다.

● 스토리 하나 , 2살 꼬마의 기적적인 생환
실종 어린이 발견 현장
요시키 군이 무사히 돌아온 것은 두 가지 스토리를 갖고 있다.

먼저 갓 만 2살이 된 어린아이가 혼자 숲 속에서 68시간을 버틴 것이다.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우선 요시키 군이 발견된 곳이 물이 흐르는 골짜기였다. 일본 전문가들은 요시키 군 또래의 어린아이들은 하루에 물 1.3리터를 마셔야 하고 물만 있어도 일주일 가량 생존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요시키 군이 길을 잃고 주저앉았던 곳은 천만다행으로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이었다. 두 번째는 기온이었다. 요시키 군이 실종된 사흘 동안 스오오시마쵸의 낮 최고기온은 33도, 최저기온은 24도 정도로 일정했다. 세 번째는 숲 속이라는 점. 나무들이 해를 가려줘 요시키 군이 탈진하지 않도록 도와줬다. 네 번째는 전문가들도 쉽게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 요시키 군의 움직임이었다. 유아들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데 요시키 군의 이동거리는 예상보다 훨씬 짧았다. 거의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상승효과를 일으켜 요시키 군이 큰 탈 없이 발견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 스토리 둘, 78살 자원봉사자
재해 현장 자원봉사 활동에 참가 중인  오바타 씨.
또 하나의 스토리는 발견자인 오바타 씨다. 올해 만으로 78살. 노인이다. 고향 오이타현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다 65살 때 은퇴하고 그 뒤로 쭉 일본 전국의 재해현장을 돌아다니는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고향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찾아준 자원봉사자들을 보고 자신도 사회에 자원봉사활동을 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재해가 발생하면 일본 전국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 자원봉사를 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쓰나미가 덮친 현장에서 희생자들이 남긴 유품을 찾아주는 일을 했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현장에서도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지난달 히로시마 일대에 폭우가 쏟아지자 복구현장으로 가서 삽을 들었다. 자주색 작업복 뒤에 '오이타현에서 온 자원봉사자입니다.'라고 쓴 천을 붙이고 다녀 방송사 카메라에도 여러 번 찍혔다. 어린이가 실종됐다는 뉴스가 나올 때 현장으로 쫓아가 수색활동을 도운 전력이 몇 번 있다. 오바타 씨는 야마구치현에서 어린아이가 실종됐고 수색활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요시키 군을 극적으로 찾아내 부모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 노인의 지혜가 열쇠
요시키 군 발견 순간을 설명하는 오바타 할아버지
노인 자원봉사 전문가 오바타 씨는 어떻게 몇 백 명이 못 찾은 요시키 군을 바로 찾아냈을까? 오바타 씨가 자원봉사자 활동을 통해 스스로 체득한 노하우에 열쇠가 있었다. 오바타 씨는 어떻게 요시키 군을 찾을 수 있었느냐고 묻는 기자들의 인터뷰에 이렇게 답했다. "몇 번 수색활동에 자원봉사로 참여하다 보니 아주 어린아이들의 행동에 공통점이 있었다. 지대가 높은 위쪽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오솔길을 따라 고지대 쪽으로 올라가 본 거다." 또 물을 찾아 움직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냇물이 흐르는 물가를 향해 이름을 불렀다.

어른들은 길을 잃으면 방향을 우선적으로 따지지만 아이들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위쪽으로 이동한다는 자신만의 경험치로 오바타 씨는 귀중한 생명을 구했다. 인명구조활동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여러 번의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보고 들은 지식을 자신의 지혜로 저장해 둔 결과다. 실제로 일본의 재해현장에는 오바타 씨처럼 나이 지긋한 자원봉사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업에서 물러났어도 육체적으로 건강하니 삽을 드는 일도 마다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노인이지만 그들은 스스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오바타 씨처럼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가진 노령의 자원봉사자들은 봉사활동 효율도 아주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요시키 군을 구한 뒤 울먹이는 오바타 할아버지
오바타 씨는 요시키 군을 가족들 품에 돌려준 뒤 눈물을 글썽이며 인터뷰를 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귀중한 생명이다. 그런 생명을 도울 수 있어서 너무 가슴이 벅차다." 자신이 아주 보람 있는 일을 해냈다는 의기양양한 표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수풀을 헤치면서 오물이 묻은 옷과 시커먼 손톱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저 어린 요시키 군의 안부를 걱정하는 평범하지만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할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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