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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폭염, 실내에서 생활하는 젊고 건강한 사람은 괜찮을까?

[취재파일] 폭염, 실내에서 생활하는 젊고 건강한 사람은 괜찮을까?
기록적인 폭염에 일사병과 열사병, 열탈진, 열실신, 열경련 같은 온열질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부터 8월 6일까지 온열질환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은 사람은 모두 3천 438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42명은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지난해(2017년) 여름 전체 환자 1천 574명보다 이미 2.2배나 많고 질병관리본부가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운영을 시작한 2011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온열질환자를 연령별로 보면 50대가 698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60대가 541명, 70대 467명 등 50대 이상이 총 2천160명으로 전체의 62.8%나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10대는 103명, 20대는 288명으로 상대적으로 적다. 또 직업이 없는 사람이 755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기능원이 334명, 농림어업 종사자가 278명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에 관리자는 16명, 전문가는 36명, 사무종사는 61명으로 상대적으로 적다. 온열질환자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취약계층, 그리고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활동하는 사람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폭염 속 교실에서 공부 중인 수험생들(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주로 실내에서 생활하는 젊고 건강한 사람은 폭염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일까?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이 젊고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폭염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Laurent et al., 2018). 주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했던 지금까지의 연구와 다른 것이다. 연구팀은 미국 동부 보스턴 지역의 대학 기숙사에 살고 있는 20세 전후 건강한 학생 44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44명 가운데 24명은 1990년대 지은 중앙 냉방식 에어컨 시설이 있는 6층짜리 기숙사에 살고 나머지 20명은 1930~1950년대 지은 에어컨 시설이 없는 저층 기숙사에 사는 경우였다.
 
연구팀은 학생들이 살고 있는 기숙사 방의 온도와 이산화탄소 농도, 습도, 소음을 측정하기 위한 기구를 설치했다. 또 학생들의 활동과 잠자는 패턴 등을 추적하기 위해 몸에 장치를 부착했다. 실험은 폭염이 심했던 2016년 7월 9일~20일까지 12일 동안 연속적으로 이뤄졌는데 처음 5일은 폭염이 없던 날이고 이어 5일은 낮 최고 기온이 35℃ 안팎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이어졌다. 마지막 2일은 기온이 다시 뚝 떨어진 날이었다.
 
연구팀은 학생들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자의 색을 빨리 인식하는 것(Stroop color-word-test)과 2자리 숫자의 덧셈과 뺄셈 등 간단한 산수 문제를 푸는 등 2가지 인지능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실험 기간 동안 에어컨 시설이 있는 기숙사의 실내 평균기온은 21.4℃(17.5~25℃), 에어컨이 없는 기숙사의 실내 평균기온은 26.3℃(19.6~30.4℃) 였다.
 
실험 결과 폭염 기간 동안 에어컨이 없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인지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에어컨이 없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경우 글자의 색깔을 정확하게 인식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에어컨이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에 비해 13.4%나 길어졌고 간단한 덧셈이나 뺄셈을 하는 데도 13.3%나 시간이 더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에어컨이 없는 기숙사에 사는 경우 과제를 처리하는 양도 글자 색깔 인식의 경우 9.9%, 덧셈과 뺄셈의 경우 6.3%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에 노출될 경우 외부 자극에 대해 빠르게 반응하지도 못하고 정확성도 떨어지고 일을 처리하는 양도 감소한 것이다. 나이가 많거나 취약계층뿐 아니라 주로 실내에서 생활하는 젊고 건강한 사람도 폭염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것은 에어컨이 없는 기숙사에 사는 학생과 에어컨이 있는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의 인지 능력 차이는 폭염이 진행될수록 커졌고 특히 폭염이 막 지나고 외부 기온이 떨어지는 마지막 이틀 동안에 두 그룹의 인지 능력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 시기는 기온이 떨어지면서 외부 공기는 선선해지지만 건물은 폭염 때 뜨겁게 달궈진 열기를 그대로 갖고 있는 기간이다. 외부 기온은 떨어졌지만 실내 온도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시기로 건물이 폭염을 지속시키는 기간에 해당된다.
 
연구팀은 폭염이 지난 뒤 외부 기온이 떨어지면서 폭염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실내에서는 폭염이 계속 이어지는 기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추운 지역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짓기 때문에 여름철 폭염이 지난 뒤 실내 폭염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강조하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질 때 에어컨 없이 지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에어컨 사용이 반드시 폭염에 대응하는 100점짜리 정답일 수는 없다. 에어컨 사용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전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또다시 지구온난화와 폭염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가 아닌 친환경 에너지 개발과 함께 건물 옥상에 나무를 심거나 외벽이나 옥상에는 햇볕을 반사하는 페인트를 칠하는 등 건물의 구조나 외형, 색깔까지도 일상화되는 기록적인 폭염에 대응할 수 있는 형태로의 전환이 시급한 상황이 됐다.
 
<참고문헌>
 
* Jose Guillermo Cedeño Laurent, Augusta Williams, Youssef Oulhote, Antonella Zanobetti, Joseph G. Allen, John D. Spengler. Reduced cognitive function during a heat wave among residents of non-air-conditioned buildings: An observational study of young adults in the summer of 2016. PLOS Medicine, 2018; 15 (7): e1002605 DOI: 10.1371/journal.pmed.100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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