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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자님, 복직 안내서가 왔습니다"

일하다 다쳤다고 해고된 '쿠팡맨'…기사 나간 뒤 3주 만에 복직

[취재파일] "기자님, 복직 안내서가 왔습니다"
● 쿠팡맨 복직하다

"
기자님, 복직안내서가 왔습니다."

찌는 듯 더운 여름, 길을 잘못 들어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있던 순간, 사이다보다 시원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얼마 전 부산까지 내려가 인터뷰했던 전직 '쿠팡맨' 이 모 씨였습니다. 부당해고 돼 회사와 어려운 투쟁을 하고 있었던 그의 복직이 뉴스 리포트가 나간 지 3주 만에 이뤄졌습니다. 일주일 전쯤, 회사가 항소를 포기했다고 했을 때도 반신반의했는데, 그가 보내준 복직 안내서에 '8월 1일부터 출근하라'는 문구를 보자 가슴이 뛰었습니다.
쿠팡 복직안내서
회사는 이씨가 일하다 다쳐 치료를 받고 있는 와중에 제일 낮은 평가 점수를 준 뒤 계약을 만료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결정을 했는데도, 이에 불복해 행정 소송까지 진행했습니다. 1심에서 패소하자, 끝까지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고 싶다며 항소를 제기했고, 2심이 곧 시작되려는 상황이었습니다.

● "어머니는 아직도 회사에 고마워하십니다"

이씨가 다쳤던 건, 비 오는 날 맨발로 차량 짐칸에 올라갔다가 빗물에 미끄러졌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고객들이 깔끔해서 좋아한다' '차량이 더러워진다'며, 쿠팡맨들에게 매번 신발을 벗고 차량 짐칸에 올라가게 했습니다. 사고 뒤엔 이 정책을 없애면서도, 정작 이씨에겐 계약 연장을 해 줄 수 없다고 나왔습니다.
업무중 다친 쿠팡맨 직원 해고
이씨는 인터뷰 중간에 웃으면서 다른 에피소드도 털어놓습니다.  "신발을 벗고 짐을 꺼내왔는데 신발을 개가 물어간 적도 있었어요." 동네 여기저기를 찾아다녀도 끝내 신발은 찾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회사에 변상을 요구하지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함께 사는 어머니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십니다. 산재 처리를 해 진료비를 받았는데, 어머니는 산재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주변 이웃들에게 "회사 사장님이 정말 좋은 분이시다" "치료도 무료로 해주셨다"며 고마워하신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회사에서 해고한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빨리 복직을 하고 싶어 했던 이씨의 바람이 이제서야 이뤄진 겁니다.

● 힘이 된 동료들

기사가 나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취재 후 일주일이 넘어서도 리포트가 나가지 못했습니다. 다른 현안에 밀려 쿠팡맨 기사가 계속 늦춰졌던 겁니다.  "혹시 오늘은 예정대로 나올 수 있나요?" 매번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미안하고 조급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씨가 궁금해 하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리포트가 나오기 1시간 전 쯤 "뉴스 같이 보려고 오늘 휴무인 동료들이랑 조그만 맥줏집에 모였다"고 전해왔습니다. 이 동료들은 이씨가 1심에서 승소했을 때도 바로 복직 될 줄 알고, 축하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부당하게 실직한 동료를 위해 기꺼이 쉬는 날 시간을 내어,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는 따뜻한 동료들이 있었기에 이씨가 회사와의 기나긴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 끝나지 않은 문제들

이씨는 8월 1일, 오늘부터 다시 출근을 합니다. 하지만 아직 남은 문제는 있습니다. 오늘 다시 사무실에 출근한 이씨는 아직 업무를 맡지 못한 채, 회사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회사에선 하루나 이틀 뒤 업무지시를 하겠다고 했는데, 다시 택배 업무를 맡길 지 미지숩니다.

계약직 문제도 있습니다. 복직안내서에는 계약직인지 정규직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습니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다가 해고됐으니, 추정하건데 계약직 직원으로 다시 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쿠팡맨들은 처음엔 계약직으로 들어와 몇 번의 재계약을 거쳐 일부가 정규직이 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 정규직이 되지 못해 회사를 떠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씨 역시 계약직으로 일하다 계약이 만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씨는 산재를 당하기 전, 쿠팡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평가에서 대부분 최상위급 점수를 받아왔습니다. 아마 그때처럼 이씨는 다시 성실히 일할 것입니다. 정규직 전환 여부가 결정될 때, 회사가 그를 다른 편견 없이 오직 능력으로만 평가해 판단해주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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