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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군 최고 의료기관 '국군수도병원'의 부끄러운 민낯

[취재파일] 군 최고 의료기관 '국군수도병원'의 부끄러운 민낯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총상을 입고 귀순한 북한 병사. 북한군 목함지뢰 도발로 발목 부상을 입은 하재현 하사.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총상 입은 석해균 선장. 이 세 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군 병원(국군수도병원)이 아닌 민간병원에서 치료받고 목숨을 구했다는 점입니다.

북한 병사 귀순 당시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환자 상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가장 적합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기게 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군 최고 병원인 수도병원은 이런 위중한 환자를 진료할 능력이 없다.'라는 것을 국방부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군내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수도병원 패싱' 현상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닙니다. 군에서 발생한 중증 환자 상당수는 수도병원이 아닌 민간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군의관 출신 한 대학병원 의료원장은 "미국은 대통령도 해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심각하면 바로 민간병원으로 보낸다. 코미디 같은 일이다."라고 일갈하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국방부의 진단은 '단기 군의관'이었습니다. 군내 의사 중 95%를 차지하는 단기 군의관의 실력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전문계약직 의사 채용'이었습니다. 실력이 뛰어난 민간의사를 채용해 군 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입니다. 2008년 도입된 이 '민간의사 채용' 제도는 군 의료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하고 있을까요?
군 병원 진단 전달 안해 병사 사망
●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한 '민간의사 제도'

SBS 탐사보도팀은 국회와 전직 군의관들을 통해 수도병원에 대한 각종 자료와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수도병원에서 근무 중인 민간 의사는 36명으로, 평균 연봉은 1억 4천만 원(고위공무원 신분)에 달했습니다. 단기 군의관의 5배에 달합니다. 산술적으로, 매년 이들에게 지급되는 군 예산도 50억 원에 이릅니다.

하지만, 진료 기여도는 연봉과 비례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환자가 많은 수도병원 주요 4개 과의 진료 건수를 확인해봤습니다. 그 결과, 민간 의사들의 진료 건수는 현역 군의관들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현역 군의관 대비 민간의사 진료 건수: 정형외과 39%, 신경외과 44%, 순환기내과 52%, 응급의학과 42%) 심지어 일부 민간 의사들의 진료 건수는 하루 평균 1건 미만이었습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민간 의사들의 '비용 편익(진료수익/봉급)'은 단기 군의관의 1/6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 "간부식당을 '노인정'이라고 불러요."

이 문제에 대해 전직 수도병원 군의관들은 '노령화'가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나이가 많아 열심히 하지 않는 혹은 열심히 하기 어려운 민간 의사가 많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탐사보도팀이 수도병원 민간의사 36명을 분석한 결과,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60~70대 비율이 25%에 달했습니다. 가장 숙련도가 높은 40대는 19%에 불과했습니다. 앞서 2012년 이미 국회 예산정책처도 "은퇴가 임박한 60대가 25%를 차지해 제도 취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는데 아직 개선되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로 수도병원에서 근무했던 전직 군의관들은 "수도병원의 민간의사 중 일부는 '나는 전공의 없으면 환자 못 본다. 내가 교수하다가 왔는데, 난 전임의 없으면 혼자 환자 못 본다.' 이러면서 환자를 보지 않는다. 민간 의사들이 더 환자를 민간 병원으로 많이 보낸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또 다른 전직 수도병원 군의관(현 의대 교수)은 "국방일보 같은 데서는 마치 민간 의사가 다 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이미 10년 전부터 손 놓은 분들이, 그런 분들이 군 병원에 가면 열심히 하겠나. 더 안 한다. 밑에 다 내리겠다는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할아버지 선생님은 걸음도 제대로 못 걸었다. 진료실에 절뚝거리면서 서 있다. 간부식당을 '노인정'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현역 군의관이 복강경 수술하겠다고 하니, 그분은 '외과의사는 배를 째야지 무슨 복강경이냐?' 이렇게 얘기했다. 참다못한 군의관이 대들기도 했다. 나이 들어 은퇴하신 분들에게 수도병원은 편하고 돈 많이 주는 말 그대로 '천국'이다."라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전직 의무사령관은 "군 병원 중 예산 대비 효율을 따졌을 때 가장 경쟁력 없는 곳이 수도병원이다. 현재 의료시스템은 각 분야 전문가가 힘을 모아 만들어 가는 것인데, 은퇴한 교수 모신다고 발전이 되겠는가? 그렇게 돈 들이고 인력 투자했는데, 그래서 환자 만족도가 올라갔는가? 수도병원을 대학병원처럼 만드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단언하건대, 우리나라에서 그런 꿈은 통하지 않는다. 현실을 빨리 직시해야 한다. 그 돈으로 전방 의무중대를 강화해서 의료 오지에서 고생하는 장병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라고 직언하기도 했습니다.

(※ 이에 대해 수도병원 측은 일부 민간 의사들 진료 건수가 현역 군의관들보다 적은 건 사실이지만, 이들 중 일부는 병원 경영이나 어려운 수술을 맡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 ' 총체적 난국'에 빠진 수도병원

모든 문제는 결국 '사람'으로 귀결합니다.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국방부가 야심 차게 도입한 '민간 의사' 제도가 이처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수도병원 내 다른 분야는 잘 운영되고 있을까요? 저희는 국회 국방위 김중로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수도병원 감사보고서 등을 확보해 분석해봤습니다. 거기에도 수도병원의 부끄러운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1) 지휘관의 비편제 직위 운영
현 수도병원장인 유근영 원장(서울대 의대 예방의학 교수)은 지난 2016년 5월부터 지금까지 수도병원을 이끌고 있습니다. (※ 지난 4월,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연임됐습니다.) 국방부 소속 기관은 편제에 따라 인력을 운영하게 돼 있는데, 유 원장은 편제에도 없는 전속 부관(대외협력장교, 중위)을 운영하다가 국방부 감사에 적발됐습니다. 당시 부관의 업무는 병원장 일정관리와 차량 선탑, 차실 운영, 사적심부름 등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유 원장은 국방부의 시정 명령도 무시하고 계속 부관을 운영하다 '시정조치 미이행'으로 또다시 감사에 적발됐습니다.
(※ 이에 대해 수도병원 측은 대외협력장교 업무 성격상 대외업무 동행이 잦아 부관으로 오인된 소지가 있지만, 2차례 감사에 적발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는 부관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2) 부적절한 관용차량 운행
국방부 규정상 관용차량의 사적인 용도 사용은 금지돼 있습니다. 공식적인 부대 활동 등을 제외한 공휴일과 일과 후에는 사용할 수 없으며 야간에도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지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유 원장은 2016년 관용차량을 휴무일에 4번(900여 km 운행)과 휴가 출발 복귀 시 사용했습니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공관(단독주택)을 영내에 제공했음에도 관용 차량을 이용해 서울에서 출퇴근했고, 일과 후 야근 복귀가 잦아(21시 이후 복귀 97회, 22시 이후 복귀 45회) 운전병이 병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본권 보장이 미흡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 이에 대해 수도병원 측은 휴무일 관용차 사용 4회 중 3회는 의무사령관 주관 공식 부대행사였고, 나머지 1회는 병원 공식행사·워크숍 참석으로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군인
3) 잦은 개인 외부활동
병원장의 잦은 개인 외부활동도 논란이 됐습니다. 정식 보고 없이 학회 참석·해외 여행 등 외부 개인 활동 진행했다는 것인데, 감찰 조사 결과를 보면 2016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총 99회에 걸쳐 공무 24회, 개인목적 74회를 다녀온 것으로 돼 있습니다. 개인목적은 지인 방문 24회, 학회 17회, 행사참석 34회였습니다. 특히, 유 원장은 지난해 8월 발생한 5포병여단 K9 자주포 폭발사고 당시에도 일본 학회 참석을 이유로 복귀하지 않아 구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육군본부 감찰실은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육군 소장 출신인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국방위)은 "지휘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회가 아니라 더한 것도, 그 무엇도 병사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 없다. 병원장과 진료부장이 공석이라 간호부장이 병원장 직무 대리였다는 것은 군 최고 병원인 수도병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라며, 국정감사 등을 통해 책임을 묻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이에 대해 수도병원 측은 일정표에 반영한 공식 일정으로 학회, 유관기관 방문 등 군 의무발전 역량강화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일환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4) 영관급 간부, 자기 부인 내부직원으로 채용
심지어 한 영관급 간부(수도병원 과장)는 자기 부인을 병원 내부직원으로 고용했다가 적발되기도 했습니다(공무원 행동강령 제5조 사적 이해관계의 신고 등 위반). 넉달 동안 혈세 수백만 원이 부당지급 된 것입니다.
(※ 이에 대해 수도병원 측은 당시 해당 영관 장교가 가족을 고용한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당사자를 보직 해임하고 의무사령부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군 의료체계 불법 처방 지시
● 나라 지키는 장병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 때까지…

언론인 출신 작가 앤터니 서머스는 저서 '오만한 권력: 리처드 닉슨의 비밀세계'에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기분 변화가 무척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닉슨 대통령은 미리 국방부 장관에게 은밀한 비밀명령을 내려뒀다는 것입니다. "내가 탄핵받으면 해병대를 출동시킬지 모른다. 만일 그러면, 국방장관 당신이 그 명령을 막으시오." 심리치료를 받고 있던 닉슨은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었고, 또 그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까지도 마련해둔 것입니다.

묻고 싶었습니다. '군 최고 의료 기관인 수도병원은 과연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예방할 적절한 조처를 하고 있는가?' 또, '그것을 관리감독 해야 할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도 제 역할을 충실히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 수도병원은 '군 책임운영기관'으로 내·외부에서 적격자를 공개 채용하고, 조직·인사·재정상의 자율권을 가집니다.)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이 나올 때까지, 나라 지키는 젊은이들이 군에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 취재과정에서 국회 국방위 김중로·이철희 의원, 전직 의무사령관들을 포함한 전·현직 군의관, 의과대학 교수 등 20여 명의 자문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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