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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 뒤 벌어지는 '택배 전쟁'…우리는 타인의 노동에 얼마를 지불할 수 있나?

[취재파일] ♥ 뒤 벌어지는 '택배 전쟁'…우리는 타인의 노동에 얼마를 지불할 수 있나?
★★, ♥_♥. 택배 송장에 찍힌 귀여운 문자 너머로 벌어지고 있는 '택배 전쟁' 보도가 나간 지 3일이 지났습니다. 별표나 하트가 찍힌 택배 배송이 지연되기 시작한 지는 벌써 3주가 넘어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장에선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때 사회부 기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지만, CJ 택배를 둘러싸고 벌어진 지금의 갈등은 쉽사리 해결되기엔 너무도 복잡하고 첨예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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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시간 노동 시대라지만 택배 기사는 '초장시간 노동'

올 초에도 몇 차례 보도해 드렸습니다만, 택배연대노조와 CJ대한통운, CJ 택배 대리점 간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갈등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근 빈발하는 배송지연 사태의 중심엔 택배 기사들의 '초장시간 노동' 문제가 있습니다.

▶ [8뉴스 리포트] "하루 14시간, 오전엔 무급 노동"…쉴 틈 없는 택배기사 (2018.05.09)

택배 기사들은 출근하자마자 물건을 배달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대다수 택배 기사들은 하루 일과를 '물품 분류 작업'을 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물품 분류 작업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택배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분류해야 할 물량이 엄청나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1년 시장규모 6천억 원이던 택배 시장은 지난해 5조 원으로 8배가량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최근을 봐도, 2017년 택배 물량은 전년 대비 13.3%, 매출은 전년 대비 9.9% 늘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엔 두세 시간이면 충분했던 분류작업 시간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났고,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의 경우 분류작업에 걸리는 시간이 기사 1인당 7시간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오전과 낮시간을 대부분 분류작업에 보낸 뒤, 택배 기사들의 배송은 오후부터 시작됩니다. 이렇게 배송을 마치면 8시, 9시가 넘기 일쑤. 택배가 주로 저녁에 배달되는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겁니다.

지난 2016년 'CJ대한통운 택배기사 권리찾기 전국모임'이 CJ대한통운 택배 기사 3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75%가 주 70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했고, 주 90시간 넘게 일한다고 답한 택배 기사도 전체의 17.6%에 달했습니다. 택배기사들의 평균 근무시간은 76.88시간이었습니다. 응답 택배 기사의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28분. OECD 통계의 한국인 평균 수면시간인 7시간 41분보다도 2시간 넘게 적은 수칩니다.

무거운 짐을 쉴 새 없이 나르는 택배기사들의 노동 형태를 감안하면 가히 살인적인 수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때문에 택배기사들은 분류작업을 하는 인력을 별도로 고용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돈이라도 더 달라고 꾸준히 요구해왔습니다. 지난해 설립필증을 발급받은 택배연대노조도 이 분류작업과 관련한 투쟁을 집중 전개해왔고, 이 오랜 갈등이 지금의 ★과 ♥의 파국으로 이른 겁니다.
자하 주차장 택배 대란
● 노조 설립 허용됐지만 사업자도 대리점도 "교섭 대상 아니다"

주 52시간 노동시대가 열렸지만,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불법이 아닙니다. 대다수 택배 기사들은 택배 사업자 (CJ대한통운, 한진 택배 등)와 근로 계약을 맺지 않고, 택배 사업자와 계약을 맺은 대리점과 용역계약을 맺습니다. 때문에 법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분류되고,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실질적으로는 사업자의 지휘, 감독을 받기 때문에 '무늬만 사장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노동자도, 사장님도 아닌 이들을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기사들의 근로자성을 일부 인정해 노조 설립을 허용했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는데, 이로써 최초의 전국 단위 특수고용직 노조인 '택배연대노조'가 출범하게 됐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여전히 근로기준법의 보호는 받을 수 없지만, 노조법상 권리를 통해 단체 협약을 체결하거나 단체 행동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다릅니다. 택배연대노조가 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CJ대한통운 등 택배사업자들은 "택배 기사가 계약을 체결한 대리점과 교섭하라"는 입장이고, 대리점 측도 "택배 사업자와 교섭하라"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택배 사업자 측에서 택배 노조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제기한 행정소송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택배기사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국회 차원의 법적 논의도 충분치 않아,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운신 폭도 좁습니다. 극한의 노동 환경에 대한 방패로 '노조할 권리'를 부여받았지만 허울뿐인 상황. 당국의 중재도 마땅치 않은 현실이 계속되면서 택배 기사들은 생계를 내려놓고 투쟁의 길로 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택배기사, 오전에는 무급노동
● 시장은 성장, 단가는 하락…우리는 '타인의 노동'에 얼마를 지불할 수 있나?

CJ대한통운 등 택배 사업자들과 택배 대리점들도 할 말이 많다고 하소연합니다. 택배 사업이 우리나라에 도입될 때부터 택배 분류 작업은 기사들의 업무였고, 건당 수수료에 이 대가를 포함해서 산정해왔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이 일방적으로 분류작업 거부를 선언하면서 사업자들은 물품 배송에 막대한 차질을 빚고, 대리점주들은 계약 해지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측도 대리점도 택배 기사들의 분류 작업 시간이 늘어난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사업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복잡하지만 결국은 '돈 문제'입니다. 분류작업 인력을 더 고용하거나, 분류 작업에 따르는 대가를 지급해 문제의 실마리를 풀려면 회사가 돈을 더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한 번쯤 들여다봐야 할 통계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지난해 국내 택배 시장은 물량 기준 13.3%, 매출 기준 9.9%의 급성장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택배 평균 단가는 오히려 3% 하락해 2천248원까지 내려갔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택배 단가는 업계 1위 야마토 운수의 경우 건당 6천원 정도. 경제 수준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가 '택배 노동'에 지불하는 비용은 굉장히 싼 편입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택배사업자가 단가 인하를 통한 노동자 쥐어짜기로 성장의 과실을 따 먹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반면 사측은 '값싼 배송료'가 시장의 표준이 된 상황에서 업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며 파생된 결과라고 항변합니다.

여기서 택배 사업자와 대리점, 택배노동자 간 전쟁 너머에 있는 '소비자'가 등장합니다. 원룸에 혼자 살면서 퇴근 이후 바닥에 누워 핸드폰으로 즉석밥이니 음료수니 세제니 하는 것들을 주문해 받아보는 저 또한 이 전쟁 너머에 있는 '소비자'에 해당할 겁니다. 집 앞까지 물건을 편안히 받아보는 데 제가 지불하는 2천500원도 안 되는 이 비용. 과연 적정한 것일까요? '시장 원리로 형성된 가격인데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그 시장의 균형점 아래에 한계 상태로 쥐여 짜이고 있는 누군가의 노동이 있다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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