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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46 : '오늘 뭐 먹지?'…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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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가 여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내가 태어난 순간 세상은 무시무시한 열기로 들끓고 있었을 것이고 내 몸은 그 뜨거운 열기를 내장 깊숙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내 정신은 늘 그렇게 한여름 땡볕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싶었지만, 그러나 불행히도 내 몸은 그 욕망을 따라주지 못했다. 내 몸은 늘 허약하고 비겁하고 차가웠다. 그래서 나는 내 입안의 작은 동굴 안에서라도 그 열기를 아낌없이 발산하고 싶었던 것이다."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작가의 음식 산문집 [오늘 뭐 먹지?]를 읽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아쉬우니까 환절기까지 작가가 즐기는 음식과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스스로 여름에 태어나 매운 걸 즐기게 됐다는 설명이 그럴싸합니다. 가장 뜨거웠던 복날에 태어난 저도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하게 합니다. '오늘 뭐 먹지?'라는 제목에는 사실 생략된 말이 있었으며 그걸 첨가한 문장에 생기가 돌고 윤기가 흐르고 훅 치고 들어오는 힘이 느껴진다는 수다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 걸 보면 저도 어느 정도는 술꾼인가 봅니다.
 
"술꾼이 딱 그렇다.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많아도 맛없는 안주는 없다. 음식 뒤에 '안주' 자만 붙으면 못 먹을 게 없다. 내 입맛을 키운 건 팔 할이 소주였다. 어릴 때 입이 짧았던 나는 술을 마시며 입맛을 무럭무럭 키워왔는데,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돼지비계나 막창이 극강의 안주로 거듭나는 데는 차고 쌉쌀한 소주 한잔이면 충분했다."
 
"이제 나는 물냉면이라면 환장하는 사람이 되었고, '해장에는 냉면'이라는 오래전 선배의 말을 백번 이해하게 되었고, 물냉면 전문점에서 비빔냉면을 시키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비틀게 되었다."
 
"내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혼자 순댓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켜 먹는 나이 든 여자를 향해 쏟아지는 다종 다기한 시선들이다... 자기들은 해도 되지만 여자들이 하면 뭔가 수상쩍다는 그 불평등의 시선은 어쩌면 '여자들이 이 맛과 이 재미를 알면 큰일인데' 하는 귀여운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에게 메롱이라도 한 기분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요절도 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반세기 가깝게 입맛을 키우고 넓혀온 타고난 미각의 소유자니까."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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