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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미연합훈련 중단…미국의 반발과 한국의 침묵

[취재파일] 한미연합훈련 중단…미국의 반발과 한국의 침묵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이제 기정사실이 됐습니다. 발표 시기만 남았을 뿐입니다. 한미연합훈련의 중대성에 비해 훈련 중단으로 가는 길이 너무 간단합니다.

미국에서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올 초까지만 해도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은커녕 축소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터라 지금의 중단 반대 여론이 놀랄 일도 아닙니다.

사실 놀라운 건 국내의 분위기입니다. 반대는커녕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절차적 정당성이 시대의 사명처럼 떠받들어지는 시기에 연합훈련을 '무단' 중단하는 데 대한 동맹의 절차적 정당성을 따지는 이도 없습니다.

한미연합훈련은 한 두 번 거를 수는 있지만 1~2년 이상 중단되면 한미연합전력은 치명적으로 손상됩니다. 한미연합훈련이라는 동맹의 중차대한 사안을 동맹국과 논의하지 않고 동맹이 공통의 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북한과 먼저 중단 합의를 본 모양새입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동맹의 근간인 신뢰가 흔들리는 일입니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이 진심으로 비핵화를 하고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가 찾아온다면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비핵화에 실패하면 뒷감당 안 됩니다. 이왕지사 북미가 합의를 봤고 청와대도 사실상 북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니 되돌릴 수는 없지만 대안 마련을 위해서라도 한미연합훈련 중단이 갖는 의미를 새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 한미연합훈련 중단 방침에 깜짝 놀란 美

트럼프는 지난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한미연합훈련 중단 방침을 밝혔습니다. 트럼프의 기자회견을 실시간 중계하던 미국 CNN 뉴스 특보에서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대북 대비태세가 우려된다"고 즉각 반응했습니다. 조셉 윤은 비록 낙마하기는 했지만 트럼프 정부의 주한 미국 대사 유력 후보였던 인물입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연합훈련을 멈춘다면 미군의 전쟁 억지력을 떨어뜨려 국가 안보를 훼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굳건한 한미 동맹을 끊으려는 북한의 숙원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취재파일] 한미연합훈련 중단…미국의 반발과 한국의 침묵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트럼프가 쌍중단 제안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비판했습니다. 쌍중단은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한미는 연합훈련을 각각 중단해서 품 안들이고 중국의 평안을 꾀하자는 중국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트럼프의 반대편인 민주당 의원들도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상원 외교위 소속인 크리스 쿤스 의원은 "한미연합훈련은 미군과 한국군의 준비태세와 훈련, 통합에 기여해 온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라며 "북한의 비핵화 시간표도 없이 연합훈련을 취소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미국 곳곳에서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우려하는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하다못해 보수 야당에서조차 별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지방선거 참패로 제 코가 석 자라고 하지만 중대한 안보 사안입니다. 권력 잃은 정치인에게 국가 안보는 딴 세상 얘기인가 봅니다.

● 한미연합훈련은 가장 강력한 대북 억제책

매년 8월에 하는 을지 프리덤 가디언, 매년 3월에 하는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은 한미연합전력의 전쟁 연습입니다. 북한이 공격하면 방어한 뒤 반격하는 시나리오를 연습하는 겁니다. 한미연합 작전계획 5027을 직접 가동해서 한미 양국 군이 손발을 맞추는 절차입니다. 이런 훈련을 거듭해야 'fight tonight'이 가능합니다. 즉 한미연합훈련을 안 하면 외부 세력 침략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의 장교들은 보직이 1~2년마다 바뀝니다. 근무지도 따라서 자주 바뀝니다. 훈련이 1~2년 이상 중단된 뒤 전쟁이 발발하면 손발 맞춰 본 두 나라 장교들은 이미 임지를 따라 뿔뿔이 흩어져 있을 겁니다. 미군 장교들이 낯 모르는 한국 장교들과 낯선 환경에서 전투를 하게 되면 전투력은 급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단 기간이 길어질수록 한미 장교들 간 단절은 고착화됩니다. 전시 임무 수행능력은 약해집니다.

반면 북한 장교들은 한 자리에 참 오래도록 앉아 있습니다. 지난 14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장성급 회담의 수석대표로 나온 안익산 중장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14년 전인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 회담 때도 북측 대표였습니다.

또 개전 초기 전투기 공격 계획 같은 경우 한미 공군 전투기들이 자주 합을 맞춰봐야 실전에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한미연합훈련을 안 하면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공격 지점에 대한 숙달, 연합 작전 대상과의 소통이라는 핵심적 자산 없이 전투에 돌입해야 합니다.

한미연합훈련은 가장 강력한 대북 억제책입니다. 중단 카드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중단하더라도 한국의 독자적인 작전계획 수립 같은 대책이 함께 세워져야 합니다. 군은 새 정부 들어 전작권 전환 속도를 높이고 있는데 대북 전략이 '공세적'에서 '방어적'으로 급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이 평화를 꿈꾸는 것 같습니다. 안될 일입니다. 군은 완전한 평화 속에서도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북한이 무장해제한다 해도 그 넘어 중국과 러시아가, 남쪽에는 일본이 도사리고 있는 데가 바로 이곳 동북아시아입니다.

● 가벼운 한미 동맹

트럼프에게는 동맹은 참 가볍습니다.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동맹 강대국들을 불편하게 하더니 그제(15일)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훈련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나의 제안이고, 그런 돈의 절약은 미국인에게 좋은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푼돈인 훈련 비용 때문에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한다는 믿기지 않은 논리를 폈습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김정은 위원장이 먼저 제안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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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입장에서는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연합훈련 중단 논의를 한미 동맹의 공통의 적인 북한과 먼저 했다는 겁니다. 주한미군뿐 아니라 한미연합훈련도 동맹의 문제이고, 둘 다 미국의 무거운 안보 공약입니다. 주요 안보 공약의 철회를 동맹국 한국이 아니라 동맹의 적인 북한과 우선 협의했다는 건 동맹의 절차와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입니다. 지금이 데탕트이기는 하지만 북한은 엄연한 적입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를 비롯한 미국 고위 관료들이 요즘 들어 '굳건한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계속 주둔'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모들은 애를 쓰지만 보스의 '동맹 경시' 행동과 말이 가려지지는 않습니다. 또 한미연합훈련도 안 할 건데 주한미군까지 빼면 한미 동맹은 공중 분해되는 터라 미 고위관료들의 뒷수습 발언은 동맹을 유지한다는 전제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입니다.

한미 동맹 없이 자주적으로 살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동북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군사 초강대국 미국에게 안보를 어느 정도 의지하는 건 현실적이고 실리적입니다. 그런데 요즘 동맹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기 위해 미국 몫인 대북 제재 완화가 아니라 한국 몫인 동맹의 희생만을 미끼로 던지고 있는 건 아닌지, 북한 비핵화에 실패했을 때 동맹 이완의 폐해는 어떻게 복구할지 누군가는 고민하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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