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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짜 야근'은 어떻게 우리 기업문화가 됐나?

'근로시간 단축' 법개정 후 남은 숙제 ① '포괄임금제'

[취재파일] '공짜 야근'은 어떻게 우리 기업문화가 됐나?
지난 1일 전자상거래업체 '위메프'를 찾았습니다. 6월 1일 자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개정된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따라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이 업체에선 당일 오전 팀장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내 설명회가 열렸습니다.

사측은 포괄임금제 폐지로 직원들의 근태 관리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설명했는데, 핵심은 '초과 근로 시간을 최소화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초과 근로는 직원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임금제 아래에선 기업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자에게 연장근로수당·야간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 등 시간외근로수당을 실제 일한 시간에 비례해 정산해 지급하는 대신, 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사전 합의된 일정액의 시간외근로수당을 매월 지급하거나 기본임금에 제수당을 포함해 지급하는 임금 산정 방식입니다.

근로기준법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임금체계이지만, 국내에선 1970년대부터 법원 판례로 인정돼 왔습니다. 감시·단속적 근로자, 즉 감시적 업무를 주로 수행하거나 근로를 간헐적으로 제공하는 경우에 한해 그것도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인정한다는 것이 판례의 취지였지만,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일반 사무직을 대상으로도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직원의 근태를 관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는데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아무리 야근을 많이 해도 추가 비용이 들지 않으니 상당히 유리한 임금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기업들이 너도나도 포괄임금제를 도입하면서, 우리나라처럼 야근이 잦은 기업 문화에선 '공짜 야근'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해온 겁니다.

부작용이 심각해지자 대법원은 2010년 판례를 통해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포괄임금제 방식의 임금지급계약 체결을 허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지만, 이후에도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상용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의 52.8%가 이 포괄임금제를 도입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편법적인 포괄임금제 적용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근로시간 단축도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이어졌고, 고용노동부도 "포괄임금제가 관행적으로 오남용되는 사례가 많다"며 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달부터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가 시행되는 것에 맞춰 포괄임금제 관련 지침을 마련해 발표하겠다는 건데,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사실상 폐지하는 수준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포괄임금제 아래서 '공짜 야근'에 시달려온 수많은 직장인들의 마음이 들뜰 만한 소식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취재진이 거리 인터뷰를 통해 만나본 직장인들 사이에선 낙관만큼 비관적인 반응도 많았습니다. 공짜 야근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우려와 불신이 팽배한 겁니다.

기업도 걱정이 많습니다. 특히 문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생산성이 낮은 기업들입니다. 최근 모 법무법인에서 진행한 근로시간 단축 관련 설명회에 다녀왔다는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기존 직원들이 그동안 초과 근무했던 시간만큼 일을 나눠 할 신입직원들을 더 채용하면 된다는 게 정부의 논리인데, 사실 그런 여력이 없는 회사들이 많다"며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포괄임금제를 편법 적용해온 대다수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 시행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정부와 다른 기업들의 눈치를 보며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포괄임금제를 옥죄자 일부에선 대안으로 포괄임금제와 닮은꼴인 '재량근로제'를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재량근로제는 노사합의를 전제로 근로시간 배분을 근로자 스스로가 재량껏 결정하여 근무하는 유연근로제의 한 형태입니다. 출장이나 사업장 밖에서의 근로 등과 같이 근로자가 얼마나 일했는지 사용자가 알기 어려운 경우를 위한 임금 산정 방식이지만, 공짜 야근을 시키기 위한 꼼수로 활용된다면 현재의 포괄임금제와 같은 부작용을 낳을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

고용노동부는 포괄임금제 개선을 위한 정부 지침을 당초 이달 안으로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조금 늦어질 수도 있다'며 말을 흐리는 모양새입니다. 사람들의 불신이 높고 현장이 혼란스러울수록 정부 지침은 선명하고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법은 바뀌어도 현실은 그대로라는 냉소가 쌓이기 전에 적기에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공짜 야근 문화를 조장해 온 포괄임금제의 잘못된 관행을 이번에는 제대로 끊고 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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