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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정전협정'부터 '악의 축','정상회담'까지…반전 거듭한 북미, 갈등 청산할까?

[리포트+] '정전협정'부터 '악의 축','정상회담'까지…반전 거듭한 북미, 갈등 청산할까?
[리포트+] '정전협정'부터 '악의 축','정상회담'까지…반전 거듭한 북미, 갈등 청산할까?
'세기의 담판'으로 주목받는 북미 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제(10일) 회담 장소인 싱가포르에 도착했습니다. 양국은 오늘(11일) 오전 싱가포르 리츠칼튼 호텔에서 실무회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오늘 회담은 정상 합의문에 담을 구체적인 문구를 막판 조율하는 과정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오늘 회담 결과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각각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 같은 반대급부의 최종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미국과 북한 양국 간 접촉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지만, 북미 정상이 회담장에서 마주하는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요.  오늘 리포트+에서는 북미 만남의 역사를 짚어봤습니다.

■ 1953년 정전협정으로 시작된 양국의 만남…핵 문제로 깊어진 갈등

미국과 북한의 회담은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서 시작됐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당시 클라크 UN군 총사령관과 김일성 북한군 최고사령관, 펑더화이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의 서명으로 중단됐습니다. 당시에는 협정 당사자들 간에 악수나 기념촬영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한국전쟁 직후부터 핵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1956년 6월에는 소련과 연합 핵 연구소와 관련된 협정을 체결했고 소련에서 개최되는 학술회의에 과학자를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1974년 5월 북한은 국제원자력협력기구(IAEA)에 가입하며 핵개발을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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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기가 마무리되면서 미국과 북한은 핵 문제를 두고 마찰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1991년 12월 '남북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드러내는 듯했지만,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1차 북핵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이 상황을 돌파한 것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었습니다. 1994년 6월 민간인 신분으로 방북한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을 만나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같은 해 10월, 북한이 핵을 동결하고 NPT에 복귀하는 대가로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 및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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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첫 북미 외교장관회담 개최…대화 이어간 클린턴 행정부

제네바 합의의 이행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경수로 건설 등 미국의 약속 이행이 늦어지자, 1998년 8월 북한은 이를 빌미로 중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1호를 발사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이었습니다. 1999년 5월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을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하며 대화를 이어가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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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대화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7월 방콕에서 첫 북미 외교장관회담이 열렸고 같은 해 10월 10일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2주 뒤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답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처음 언급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조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 北 '악의 축'으로 선언한 부시 행정부…65년간 반전 거듭한 북미 관계

2000년 11월 조지 부시가 당선되자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평양 방문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의 기조는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이라고 선언했습니다. 2002년 제네바 합의는 사실상 파기됐고 북한이 2003년 1월 NPT 탈퇴를 발표하면서 2차 북핵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악화되자, 2003년 중국은 중재에 나서며 6자(한국·북한·미국·중국·러시아·일본) 회담을 제안했습니다. 2005년까지 이어진 회담에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IAEA와 NPT로 복귀한다는 내용의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지만, 합의 1년여 만에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단행했습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섰지만, 북한의 도발은 이어졌고 국제 사회의 제재도 강화됐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집권 이후인 2012년 북미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 간의 협의를 거쳐 북한의 핵 동결과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을 골자로 하는 '2.29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2개월도 지나지 않아 북한이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하면서 이 합의도 파기 수순을 밟았습니다.

지난해 9월에는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북미 관계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 분위기까지 얼어붙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원유 공급을 감축하는 내용이 담긴 UN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이처럼 꽁꽁 얼었던 분위기는 올해 초 급변했습니다.

지난 1월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25개월 만에 남북 고위급회담이 개최되고, 이어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고위 인사들이 참여하면서 남북 및 북미 대화는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위원장(Chairman)'이라고 호칭했습니다. 지난해 '꼬마 로켓맨'이라고 조롱했던 것을 떠올리면 큰 변화입니다.
[리포트+] '정전협정'부터 '악의 축','정상회담'까지…반전 거듭한 북미, 갈등 청산할까?
65년간 반전의 반전을 거듭했던 북미 관계. 6.12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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