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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판사 사찰'과 '재판 거래' 의혹의 본질은 같다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작성 2018.06.07 13:06 수정 2018.07.06 09:2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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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판사 사찰과 재판 거래 의혹의 본질은 같다
지난달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특별조사단(이하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의혹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기도 한다.

●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다?…무엇이 '블랙리스트'인가?

‘판사 블랙리스트는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새롭지는 않다. 지난 1월, 추가조사위 발표 때도 같은 이야기는 나왔다. ([취재파일]‘판사 블랙리스트’, 그리고 그보다 더한 것도 있었다) 시작은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는 의혹이었다.

이 의혹은 앞선 추가조사위와 최근 특별조사단의 조사에 의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최근 조사 결과에서는 사실의 심각성이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판사 개인의 성향 파악을 넘어 재산 관계까지 뒷조사한 문건이 발견된 것이다. 이런 문건의 결과가 ‘판사 블랙리스트’가 아니면 무엇일까. ‘블랙리스트’라는 제목의 문건이 발견되어야 만 ‘블랙리스트는 있었다’고 할텐가.

● '인사상 불이익을 준 자료는 없었다'…그러니 '블랙리스트'는 없다?

특별조사단의 조사를 거치면서 ‘블랙리스트’의 개념은 ‘사찰’의 존재를 전제로 ‘인사상 불이익’이라는 조건까지 추가됐다.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측의 주장은 아니다.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다. 이런 개념을 촉발시킨 사람은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었다. 안 처장은 조사보고서 발표 이후 언론에 “뒷조사 사실은 확인했지만, 대상에 대해 인사상 불이익을 준 것을 확인하지 못 해 ‘블랙리스트’의 개념에 맞는지는 모르겠다”는 취지로 이야기 했다. 이후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준 것이 없으니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판사 사찰문건 추가 발견‘인사상 불이익’이 있어야만 ‘블랙리스트’는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설사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인사상 불이익’을 어떻게 개념화 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연수 누락 등의 확증적 자료가 있어야만 인사상 불이익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요주의 대상이라고 이름이 오른 사람에게 인사 평가를 낮게 주거나 여러 다른 미시적인 방법으로 법관 내의 거리낌을 증가시켜 지치게 만드는 것도 인사상 불이익이다. 이것은 사찰 대상자를 상대로 조사하지 않으면 확인이 불가능한데, 당사자 조사를 하지 않은 특별조사단이 어떻게 인사상 불이익은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 '판사 블랙리스트' 조사하다 다른 것들만 잔뜩 나왔다?

‘판사 블랙리스트’를 조사하다가 다른 것들만 잔뜩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른 것은  ‘재판 거래’를 하려한 의혹이 제기된 문건 및 사법권의 독립을 대법원이 스스로 훼손한 것으로 의심되는 문건 등을 이르는 듯하다. 하나하나 낯 뜨겁고, 충격적인 문건들이다.

판사 사찰 문건과 다른 문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상고법원’이다. 상고법원 도입에 판대하는 판사들, 상고법원 도입이라는 사법 행정권에 도전할 수 있는 판사 그룹을 대법원은 사찰했고,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된 문건 등도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코드 맞추기를 하기 위해 작성된 정황이 있는 것들이다. ‘상고법원’을 중심으로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과 ‘재판 거래’ 의혹 문건들은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만큼, 서로 다르다고 보기는 힘들다.

● '판사 사찰'과 '재판 거래' 의혹은 본질은 '통제'다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과 ‘재판 거래’ 의혹 문건이 가리키는 본질은 동일하다. 사찰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제’다. 사람에 대한 통제, 상황에 대한 통제를 위해서다. 사찰 대상을 사찰 주체의 뜻대로 변화시켜 사람을 통제하거나, 그게 불가능하면 사찰 대상이 특정한 상황에 포함되지 않도록 해서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 즉,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재판 거래’ 의혹 문건 등은 독립된 법관의 양심에 따라 이뤄져야 할 재판이 법원행정처, 나아가 대법원장에 의해 ‘통제’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문건이다. 아직 통제가 이뤄졌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재판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재판 결과를 사전에 기획하려한 듯 한 문건이나 박근혜 정부의 국정 철학과 궤를 같이하는 판결들을 해 왔다는 내용의 문건들이 작성되기는 힘들었을테다. ‘통제’라는 관점에서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과 ‘재판 거래’ 의혹 문건 사이에 뭐가 더 심각한지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 특별조사단을 위한 변명…'이견'은 있었다

‘범죄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형사 고발 등 조치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는 취지의 특별조사단 보고서 내용이 비판을 받고 있다. 숱한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문건 등을 인용하고도 범죄 혐의점은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결론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SBS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특별조사단 내에서 이견은 있었다. 일부 위원들은 특정 사안과 관련해서는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별조사단이 형사 조치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수사의 필요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검찰에 이미 여러 고발장이 접수되어 있는 만큼 수사는 어차피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범죄 혐의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보고서에 명시한 특별조사단의 행태가 모두 용인될 수는 없다. 추가로 공개된 문건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특조단의 결론이 위원 전원의 일치된 의견인지, 아니면 이견이 있었던 것인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문제다. 이견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