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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상고법원이 뭐길래?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작성 2018.06.07 10:46 수정 2018.06.08 16:5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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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상고법원이 뭐길래?
이게 다 상고법원 때문이다. 사법부의 고유 권한인 판사 인사권을 청와대에 넘겨주려 하고(‘BH 민주적 정당성 부여방안‘), ’창조경제‘에 기여하겠다고 박근혜 정부에 꼬리 흔들고(’VIP 보고서‘), 판사 재산을 뒷조사(’차성안 판사 재산관계 특이사항 검토‘)까지 한 것은 모두 상고법원 때문이었다. 상고법원이 대체 뭐 길래 대법원은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훼손하고 낯 뜨겁기까지 한 이런 일을 했던 걸까.

대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임기가 반환점을 돈 2014년 9월, 대법원 청사에서 공청회를 열고 상고법원 도입 추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1심 재판에 불복해 2심 재판을 신청하는 것을 ‘항소’, 3심 재판을 신청하는 것은 ‘상고’라고 하는데, 상고법원은 그 이름처럼 상고심을 전담하는 법원을 말한다. 대법원 말고 3심 재판을 맡을 법원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기존에 대법원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걸까. 그것은 2014년 12월, 홍일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원조직법 일부개정안’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대법원은 홍일표 의원 등을 통한 ‘의원입법’으로 상고법원을 도입하려 했던 만큼, 해당 개정안은 대법원의 의사로 볼 수 있다.

● '일반 사건'은 상고법원, '중요 사건'은 대법원…'중요'의 기준은 대법원이 정한다

<법원조직법 일부 개정안>

제14조의2 (사건심사)

① 대법원은 (중략) 대법원이 심판할 사건과 상고법원이 심판할 사건을 정한다. (후략)
② 대법원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건은 대법원이 심판할 사건으로 정한다.
1.법령 해석의 통일에 관련되는 사항을 포함하는 사건
2.공적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
3.그 밖에 제1호 또는 제2호에 준하는 사건으로 대법원이 심판하는 것이 상당한 사건


정리하면 이렇다. 대법원은 공적 이익이 중대한 사건 등 일부 중요한 사건 만 다루고, 나머지 사건은 상고법원에서 심리를 진행한다. 해당 사건이 중요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대법원이다.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누구는 대법원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상고법원에서 최종 재판을 받게 되는 셈이다. 법 앞에서의 평등,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재판 받을 권리가 훼손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법원조직법 일부개정안과 함께 발의된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에 따르면, 특별항고 등을 통해 상고법원에 있던 사건이 다시 대법원으로 갈 수도 있다. 상고법원 판사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 결정을 할 경우에도 사건은 대법원이 다시 가져간다. 사실상 ‘1심→2심→상고법원→대법원’의 4심제로 운영될 수도 있는 셈이다.

● '위헌적 요소' 있지만 다른 대안에는 눈 감은 대법원

이렇게 위헌적 요소가 있는 상고법원을 밀어붙인 이유로 대법원은 대법관의 업무 과중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2014년 기준 상고사건이 37,615건, 대법관 1인당 처리해야 할 사건이 3천 건을 넘어 면밀한 사건 심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994년 9월부터 도입된 심리불속행 제도, 즉 대법원이 심리를 진행하지 않고 상고가 기각되는 것까지 포함하면 실제로 심리를 진행하는 상고사건 숫자는 절반수준으로 줄어들지만, 그래도 사건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대법관의 1인당 업무 부담 해소는 상고법원 설치가 유일한 해법은 아니었다. 한 때 도입했던 ‘상고허가제’(1981~1990)의 재도입이나 대법관 수 증원을 통해서도 풀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또, 1심과 2심을 강화해 상고 사건 자체를 줄이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었다. 상고 사건의 증가는 애초 사건 자체의 증가에도 기인하겠지만, 1심과 2심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 국민들의 ‘사법불신’에도 터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대법원은 오직 상고법원 도입만을 해답으로 봤다. 상고법원 도입의 강력한 대안으로 제시된 대법관 수 증원은 ‘위험’하거나 ‘허구’(‘VIP 보고서)라고 생각했다. 일부 의원들의 “사건이 너무 많다”는 대법원의 볼멘소리를 받아들여 대법관 수를 늘리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대법원의 선택은 오로지 ’상고법원‘이었다.

● '상고법원'만을 위해 달린 양승태 대법원…도대체 왜?

대법관 수 증원에 대법원이 반대한 공식적인 이유는 ‘전원합의체’ 때문이었다. 대법관 숫자가 늘어나면 대법관 전원이 참여해 사건을 심리하는 전원합의체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이런 우려가 진정한 우려가 되려면 대법관의 다양성이 담보됐어야 한다. 사회 각계의 다양한 목소리와 시각을 반영할 수 있는 대법관들이 열띤 논쟁을 벌여야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합의체로서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원합의체’ 충실화를 위해 오히려 대법관 숫자를 줄이더라도 ‘10대 0’,‘ 9대 0’ 판결만 나온다면 전원합의체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2015년 국회 법사위 위원 중엔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조건으로 상고법원 도입에 조건부 찬성 입장을 보인 의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은 2015년 8월 6일 보수적 인사인 이기택 당시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을 대법관 후보로 제청하며 조건부 찬성 의원들에 응답했다. 이후 조건부 찬성 입장을 보인 의원이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쪽으로 돌아섰음은 당연지사다. 최근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문건을 보면 양승태 대법원은 ‘대법관 다양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대법관 구성이 다양해지면 위험해 진다며, 보수 색채 강화만을 해답으로 봤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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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양승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에 올인했던 것은 비단 대법관의 업무 과중 때문만은 아닌 듯해 보인다. 오히려 20여 명 안팎의 판사들로 꾸려질 상고법원 도입을 통해 인사 적체를 해소하려 했던 게 아니었는지, 또 상고법원의 설치로 최고법원으로서의 대법원의 위상을 강화하려 했던 게 아니었느냐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대법관 사이의 직급인 상고법원 판사에 ‘양승태 라인’을 심어 퇴임 이후에서도 권위를 누리려고 했던 것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그게 뭐라고,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훼손하는 방안까지 모색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 그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전투적으로 움직였을까?

양 전 원장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등 고위 법관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평판사나 지방법원 부장판사급인 당시 행정처 심의관이나 총괄심의관 등은 사법부 독립성을 훼손할 수도 있는 일들을 왜 그렇게 했던 것일까. 흡사 앞만 보고 달려가는 기마병처럼 말이다.

일각에서는 조직의 논리, 양 전 원장 시절의 법원행정처 분위기를 주된 이유로 꼽는다. 어느 때보다 위계 서열이 강하고, 권위적이었던 당시 행정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위에서 시키는 일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조직의 수장인 대법원장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체화하는 조직 논리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데 비단 그것 때문만이었을까.

2011년 법관 이원화 제도 도입 이후, 장기적으로 고등법원 부장승진 제도의 폐지는 예고되어 있었다. 양 전 원장은 고법판사 중에서 고법 부장을 선발해 이원화에 균열을 내어왔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선택받은 자들만 근무할 수 있다는 법원행정처에 근무했지만, 2015년 당시 행정처 심의관이나 총괄심의관들은 고법 부장으로 승진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상고법원이 도입되면, 그리고 그 과정에 자신이 기여했다면 어떤 기대를 하게 될까. 고법 부장보다 높은 지위인 상고법원 판사에 자신이 기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까. 사법부의 독립을 판사 스스로 훼손한다는 자괴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승진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는 않았을까. 아무리 당시의 권위적인 조직 분위기, 판사도 생활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보상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지금 드러나고 있는 문건들의 작성 경위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보기 : [취재파일]욕망의 대법원, 낯뜨거운 상고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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